뒤에서 따라가는 사람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10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


당신이 늘 앞장서서 뛰어가는 사람이라면

난 말없이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다.


당신이 정상에 먼저 올라 나머지 발자국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난 뒤에 서서 느린 사람의 등을 미는 사람이다.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다니는 일도

등 뒤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도

당신에게도 동시에 나에게도 보람된 일이겠지만.


당신과 내가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가 각자 가야 할 지점이 다르면서도

그 다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해라는 강이 만들어질는지도.


뒤에서 미는 일, 그러니까 비축한 힘을 한꺼번에 쓰는 일,

내 힘을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탁하는 일,

누군가를 끝까지 믿어주는 일,

그런 건 그저 잠시 보폭을 줄이는 일일 테니까.


힘을 빼는 일은 어쩌면 더해지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남긴 온기 덕분에

어느새 얼굴이 벌겋게 데워지기도 하니까

그러다 보면 힘이 채워지기도 하는 일이니까.


조금은 품이 더 드는 일일지라도

당신과 내가 만드는 중력의 차이가

당신과 나의 사회적 거리를 만들기도 할 테니까.


당신이 만든 형식에 의지하는 게 어쩌면

당신을 향한 나의 변함없음을 보여주려는 걸지도.

그래서 내가 늘 뒤에 서려는 이유일지도.


한때 자주 산에 가곤 했다. 강제적이기도 했고 자발적이기도 했지만, 틈만 나면 버릇처럼 산에 올랐다.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내리막길로 주저앉았을 때, 더욱 심하게 산을 찾았다. 존재하지도 않은 정답을 찾겠다는 사람처럼, 의지하고 싶어 산에 몸을 묻으려 했다.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 그런 날은 더 산이 나를 불렀다.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어서였을까. 현실에선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높은 산에 오르면 그런 열등감을 구름 속에 감춰두고 싶었다.


실컷 땀을 흘리고 온몸이 푹 젖어야 제대로 사는 것 같았다. 운동할 때 흘리는 억지 땀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댈 곳이 점차 사라지는데, 산은 따뜻하게 모든 걸 품어줬으니까. 산은 내 안에 쌓인 얼울함 같은 것들을 땀으로 배출하게 도와줬으니까. 울컥한 것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같이 오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늘 앞서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어느 순간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면 그 사람은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마치 산을 혼자 품으려는 사람처럼, 씩씩대며 혼자 올랐다. 그의 구부러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영영 그를 쫓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건 비겁한 사람의 태도라고 들었지만, 난 하염없이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처럼 오르기만 했으니 어느 순간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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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난 누군가를 추월하거나 앞서는 것을 포기했다. 뒤를 비로소 돌아보았다고 해야 할까? 하염없이 앞서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일이나, 누군가를 추월하려고 죽을힘을 쓰는 일이나, 모두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는 사실. 그게 나의 모든 고통의 주원인이라는 사실을 그 깊은 숲속의 컴컴한 산골짜기 끝이나, 하찮은 돌덩어리를 밟고 넘어서거나 나무로 만든 발판을 딛고 넘어서는 순간에 깨달았다는 것이다. 고통을 겪어야 기쁨이 존재한다는 상대적인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걸, 가파른 절벽 끝 커다란 바윗덩어리 끝에 앉은 순간, 등에 흐르는 땀처럼 서서히 의식 속에 결론이 스며들었다는 것.


그때는 몰랐다. 안식이 찾아왔으나 그 깊음을 표현할 줄 몰랐으니까.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단지 허물어져가는 노을빛을 멍하게 바라보는 일이나 어둠의 사위를 축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기념식의 전부였으니까.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정상의 막막함을 감상하면서도 나는 오르는 걸 멈추지 못할 것 같다. 다만 누군가의 습관처럼 혼자 멋대로 예측하거나, 더 높은 자리에서 우월을 뽐내진 않겠다. 오르는 것이 내 운명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멈춰서 내가 걸어온 모든 궤적을 그려보거나, 내 삶의 권위를 일부러 실종시키는 일을 저지르는 것도 좋겠다.


힘들어서 걸음을 멈추는 게 아니라 내 힘을 나눠주는 사람. 당신이 소유한 모든 날의 등을 응원하는 사람. 앞으로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뒤로도 걸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밟고 지나간 모든 시간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나는 뒤로 처지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앞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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