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감각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6

익숙한 감각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맑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며 걸었다. 그렇게 한 곳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정도로 걸어본 지도 오래간만이었다. 걸어가면서 때로 걷는다는 감각 자체까지 벗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으니, 감각이 그토록 원하던 기준에 도달했을까. 감각이란 무엇일까. 내가 인식하는 세상, 만지고 듣고 보고 맛보는 것들, 이를테면 파란 하늘, 불투명한 그림자, 지하철 5번 출입구,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손잡이, 전자책, 그리고 깨어있는 분명한 의식.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규명할 수 있는 의식을 포괄하고 있다. 의식의 기반엔 영혼이 큰 틀을 차지한다. 영혼은 그러니까 내 몸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내 생활의 범주, 즉 행동반경을 지배한다. 몸은 영혼에게 예속된 노예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차라리 영혼을 붙들고 늘어지며 지령을 받으려 한다. 영혼은 자신의 본분, 즉 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만, 때로 그 사실을 망각하는 편이다. 몸은 쾌락과 향락, 사치, 욕망 따위을 자손 대대로 세속 한다.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버리며, 몸과 자신이 불가분의 관계, 끊을 수 없는 동지 관계라는 것을 생산해내며.


고대 철학자들은 지혜를 얻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 지혜란 영혼과 몸의 분리다. 영혼과 몸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사건을 죽음이라 생각했고 죽음을 맞이라는 것이야말로 참된 선이니 그것을 기꺼이 또한 즐겁게 받아들이려 했다. 그 세계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독주를 마시고 생을 마친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그의 동료들에게 남긴 메시지, 그것은 최종적으로 지혜를 인식한 상태,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무지를 인정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무지, 무의 세계라는 단어 끝엔 언제나 영혼의 독립이라는 문장이 따라다닌다. 지혜로운 인물들, 철학을 하는 인물들이 꿈꿔야 할 궁극의 경지는 바로 영혼의 독립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괴롭히던, 향락과 욕망의 중심이었던 육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었기에 죽음을 오히려 반겼다. 완벽하게 몸으로부터 차단된 상태, 영혼이 몸에게 독립된 상태야말로 무의 상태로 돌입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런 메시지를 읽으면서도 아니 단 1%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으니 여전히 지혜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난 평범하고 나약하고 게으르며 때로 무력증에 침잠하는 인물밖에 못되니, 어찌 죽음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고 영혼의 분리를 꿈꿀 수 있으랴. 그러니까 그런 세계로 도달하는 사람은, 내 사유의 범주 안에 속할 수 없으니, 이렇게 짧은 글로써 부러움을 표현하거나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일에 목말라하며, 쾌락과 고통 사이를 오고 가는 인물로 적절하게 살아가려 한다. 직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그 밖의 일들에서 나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수행하지만, 육체가 지배하는 고통과 피곤에 쓰러지고, 그리고 가끔 영혼이 활달해지는 상태를 반길 뿐이다. 이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때로 몸밖의 일들을 도모하려고 한다. 그런 일들은 잠을 물리치는 일이 대부분이니, 어쩌면 나는 지혜를 구하려고 본능적으로 애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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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어쨌든 시작됐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가을은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그 계절의 도입부는 역시 몸이 먼저 열었다. 파란 하늘로 시선이 나도 모르게 고정된 것처럼, 몸은 영혼의 명령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그 순간 몸은 영혼에게 저항하려고 했던 걸지도, 진정한 감옥은 자신이 아닌 영혼에게 씌워졌다고 반항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밝고 화창한 날, 어떤 규칙에 따라 노동은 성실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누군가를 만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현재의 내가 고민에 빠져도 노동은 유지된다. 이야기를 몇 시간 나눠도 인생의 해답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아무리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에 깊숙이 개입해도 결론은 그저 덜 추상적인 것들로 변신할 뿐이다. 덜 추상적인 것들, 분명하지 않은 미래의 형상, 나아지는 것들,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는 일조차 내 미래를 어떻게 다듬을지 예측학 수 없으니, 조각칼로 계속 형상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손을 대면 댈수록 날카로움만 돋아날 뿐, 어떤 모양도 특별한 군집 형태로 갖춰지지 않게 되니, 나는 그 모양이 대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담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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