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서 제발 나가 줄래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4

내 집에서 제발 나가 줄래


며칠 전, 옷장을 정리했다. 철이 한참 지나 색이 바래서도, 취향이 돌변한 이유도 아니었지만, 바지 몇 장은 마땅히 버려져야 했다.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몸에 걸쳐보는 행사를 가져보며 넓어진 공간을 인식했다. 내 부피가 줄어든 것인지, 바지가 늘어난 것인지 명확하게 재단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둘 중의 하나가 쓸모 없어진 것은 사실이 아닌가. 나를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니 바지가 대신 버려지는 운명을 맞아야 했으리라.


다이어트에 돌입하면 살과 전쟁을 치른다. 누군가 죽고 사는 싸움은 아닌데, 어느 한쪽은 사라지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다이어트에 성공한다면 한때 내 몸에 속했을 세포 조각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내 것이 아니다,라는 전제는 나와 상관 없어진다는 이야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 결국 다이어트는 삶과 죽음이라는 시소를 사이로 왔다 갔다를 경험하는 일이 아닌가.


다이어트에 극적으로 성공하여 나는 마치 마지막 승전고를 울린 아테나의 병사처럼 당당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완벽하게 소진해버린 것 같았다. 나의 분신도 어쩌면 아테네 병사처럼 버려져야 하는 걸까. 하지만 싸움은 생각보다 극적이지도 단기간에 끝나버릴 기미도 없었으니, 계속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 하나가 끝나면 더 강한 상대와 결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 다이어트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 숫자를 확인하지만, 줄어든 숫자만큼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만큼의 숫자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절제와 인내를 감당해야 할 것이 뻔했으므로. 그러니까, 공세를 취하면서도 방어하는, 약간의 빈틈을 내어주면서도 때로는 역을 찌르는 균형감을 언제일지 모를 순간까지 유지해야 했으므로, 마음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헌 옷 수거함에 용도가 사라진 바지 몇 개를 덩어리로 뭉쳐놓고 다시 강하게 밀어 넣었다. 마음 한구석이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빈 공간을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헌 옷 수거함이 꿀꺽 바지를 삼켰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며 절대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하니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의 나를 미래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덜어낸 몸집에 감격스러워하면서도 다시 새롭게 붙은 몸집에 내 마음이 굳어버릴지도. 그러한 과정을 앞으로 얼마나 반복해야 할지, 예측하기 곤란하면서도 결국 인생이란 동일한 구간을 반복하게 된다는 원리라는 걸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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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에게는 ‘유지’라는 숙제가 남았다. 유지, 버팀, 지탱, 깐깐하고 질기고 절대적으로 보존해야만 하는 어떤 대상 또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연속적으로 그려졌다. 어쩌면 나는 저 헌 옷 수거함 속에 버려진 나의 과거를 통째로 드러내는 역사를 바보처럼 반복하게 될지도. 그리하여 그렇게 환원될 수밖에 없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다, 갑자기 각성하게 될지도. 각성, 반성, 성찰 이런 단어는 새로운 다짐을 양산하고 감격적인 미래를 다시 그리게 될지도. 결국 모든 건 순환한다. 떨어져 나가 버린 나의 기억과 세포들도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될지도.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문장을 생각하고 나는 앞으로도 반복해야 할, 오늘 또는 내일의 가벼움 들을 생각한다. 나는 솜털처럼 가볍고 먼지처럼 무용하다. 무용하므로 내가 과거에 소유했을, 그러니까 한없이 가벼운 축에 속하는 것들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단정적인 목소리로 나에게 예속됐을지도 모를 가볍고도 무거운 신체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그것들을 몸에서 씻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겁고 느리다. 느리기만 해서 생각은 가끔 멀리 달아나버린다. 달아난, 생각들을 떠올리며 애써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그럼에도 나를 돌이킬 수 없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저버린 셈이다. 내가 버린 1년 전, 한 달 전쯤의 그 무엇이라도, 생각이든 어떤 결단이든, 줄어든 숫자의 가벼움이든, 증발해버린 내 몸의 수분이든, 사라져버린 세포의 감각들이든, 그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내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는지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다시 어제 오후 2시쯤으로 돌아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다소 부당한 대답을 내린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닌 것들과 단절을 선언하고 마치 자유를 얻은 사람처럼 속으로 환희에 들뜬다. 주체할 수 없이, 매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사람처럼 나는 그들의 손을 계속 놓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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