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2
뱃살이여, 안녕~
“뱃살이여, 안녕~” 중3 여름방학부터 장착된 뱃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동지와 곧 이별을 앞두고 있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문장에 정확히 어울리는 더러운 뱃살이여, 우리 정말 다시는 만나지 말자꾸나." 나는 이 말을 공기 중에, 아니 공적인 공간에 공개적으로 살포하고 다시 마음을 다진다. 이번에야말로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아무리 다이어트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일이라지만, 실패는 내 인생에 다시 없으리라.
중3, 그 시절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내 에세이가 사실을 기반으로 약간의 소설적 허구를 가미한다지만, 이 이야기는 100% 사실이다. 그 당시 중병에 걸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더러운 환경이 문제였으리라 유추한다. 더러움이여 제발 그만 만나자. 나는 그만 유사 장티푸스에 걸리고 말았다. 유사가 붙은 이유는 아마도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해서였으리라.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직후, 의사 선생님이 건넨 낮은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이든지 집이든지 당장 격리시켜야 합니다” 병원비를 감당할 재정적 능력이 없었으므로 자가 격리는 옵션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자가 격리가 결정되고, 나는 학교에 출근, 아니 등교도 하지 않고 한 달 이상을 꼬박 치료받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뻤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태평하게 환자놀이나 즐기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내가 용서되지 않는다. 어쨌든, 빵돌이로 살던 리즈 시절의 식욕이 사라졌던 걸 보니 아프긴 심하게 아팠던 것 같다. 끈질긴 치료 끝에 겨우 완쾌 코스프레에 성공한 후, 등교한 첫날이 기억난다. 하필이면 그날이 체력장 연습날, 100미터 달리기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30미터를 채 달리지 못하고 흙바닥에 자빠졌던 일, 내 생에 가장 충격적인 경험,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달아난 식욕부터 다시 데려와야 했다. 인간의 몸이 희한한 것은 아픈 동안 전혀 살아날 것 같지 않던 식욕이 학교에 복귀하자마자 무덤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좀비처럼 살아났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건강 회복 증진 프로젝트라는 말을 내걸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빵 먹고 자고 일어나 또 빵 먹고, 치킨에 피자에 없는 살림 거덜 낼 정도로 폭식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 뱃살은 허락도 없이 내 몸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니, 세도 내지 않고 공짜로 남의 집에 머물다니, 잘라버릴 수도 없는 노릇, 그날부터 나는 뱃살과 영원히 동침해야 할 것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로 뱃살은 무럭무럭 자라나, 군대에서 제대한 이후 가장 빵빵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일 줄 알았던 그 문제적인 뱃살은 결혼과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나 허리 사이즈 34 바지 입는 남자야” 아니, 자랑할 게 없어서 허리 두께를 자랑삼아 농담이나 지껄이는 남자가 되고 말았다니.
문제의 원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덜먹고 더 많이 운동하면 된다는 사실, 더 많이 움직이고 소파에 그만 드러눕고, 야식 조금만 줄이면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간단한 이론은 쉽게 짓밟힌다. "오늘 하루쯤이야, 다이어트는 원래 내일부터 하는 거래." 이런 말로 자기 합리화, 즉 '배둘레햄'을 정당화하고 있었으니, 살이 빠질 리가 있겠는가. 이론은 오직 이론뿐이라고, 이상은 이상 속에 격리된 거라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거창하게 목표를 두는 것이 실패의 주원인인 셈이었다. 생각해 보자, 다이어트 시작한 첫날부터 20킬로쯤 감량한 청사진부터 머릿속에 그려댔으니, 욕실에서 마주친 내 경악스러운 눈바디에 만족할 수 있었겠느냐고. 거창한 목표, 추상적인 실천 계획, 막연한 희망이 다이어트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종족이 아닌가. 실패를 거듭 경험하면, 바보도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터득할 터. 나는 이 질긴 다이어트를 사피엔스의 관점에서 끝장내고 싶었다. 너무나 간절하게, 지극하게, 절실하게 말이다. 정성이 지긋하면 하늘이 축복이라도 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 역시 나와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이제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하고 실천이 급선무다. 거창한 계획은 때려치우고, 받아들이는 거다. 나야말로 먹는 걸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식충이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거다. 긍정심리학의 원리는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아닌가. 인정부터 해야, 그다음 실행 전략도 나올 테니까.
대오각성한 후, 목표치를 아주 낮게 설정했다. 그리고 하루 10분이라도 제대로 된 운동을 하자고 결심했다. 솔직히 하루 10분 운동은 굳이 결심까지 동원될 필요도 없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바이시클 크런치’ 200번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십 분의 벽을 돌파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첫날은 10개 하고 나가떨어졌으니까. 다만, 10개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그다음 날 한 개라도 더 추가하자고 생각하니, 그 또한 별게 아닌 게 되었다. 그리고 간헐적 단식을 운동과 병행하기로 했다. 먹고 싶은걸, 강제로 끊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빵돌이를 포기하라는 말은 인생을 그만 살라는 말과 같았다. 빵도 먹고 라면도 먹고, 때로는 과자도 먹어가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먹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면 되는 일이다. 아주 간단했다.
그날이 바로 2019년 봄이었다. 마지막 벚꽃잎이 가지에서 떨어질 무렵,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지도 모르는 다이어트가 다시 시작됐다. 함께 해서 더러웠던 살들과 이제 완벽하게 이별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날 내가 확인한 숫자는 85였다. 아주 빨갛게 번들거리던 숫자, 85. 내 인생에서 다신 보기 싫은 숫자 85.
약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오늘, 62를 확인했다. 중병을 앓은 중3 시절 이후, 늘어난 뱃살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나는 어쩌면 더 이상 뱃살을 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도, 그저 닿을 수 없는 꿈의 순간도 아니다. 내 눈으로 직접 과정을 경험했기에, 나잇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변명과 좌절을 품었다는 걸 알게 됐기에, 나는 생각보다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내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든 모임을 여는 것이든, 내 경험 없이는 다루지 않는다. 물론 검증은 오직 내 주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내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닥치고 실천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뱃살과 영영 이별하고 싶은가, 그 더럽던 살들과 분리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10분, 아니 5분 만이라도 운동하자. 거창한 운동은 필요 없다. 나처럼 바이시클 크런치를 자기 전, 5분만 해도 좋고, 그것도 귀찮으면 지하철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걷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간헐적 단식, 그거 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먹고살았다. 바깥에 나가서 사냥할 일도 없는데, 과다의 에너지를 몸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살았다. 간헐적 단식의 유용성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유튜브에 자료는 얼마든지 널렸으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지하면 죽을 때까지도 모르는 상태로 남고 만다.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그걸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당신도 어쩌면 함께 해서 더러웠던 살들과 끝장을 낼지도.
-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정보 교류 & 소통하기
- 글 공유 책에서 읽은 문장 공유
-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
- 글쓰기 모임 소식 공지
- 특강 소식 공지
- 글쓰기 및 독서 모임 할인 코드 제공
참가 → https://open.kakao.com/o/g0KsCKkc
- 매일 쓰는 것이 목적
- 자주 쓰는 습관 기르기
- 홍보에 제한 없음
누구나 자신의 글 바닥 홍보 가능
내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실컷 자랑질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