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상관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좋아진다면 하늘도 덩달아 좋아질 것이다. 어떤 대상을 좋아한다는 건, 지극히 개인의 취향에 속하는 일일 테지만, “난 파란 하늘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누가 감히 단정할까, 오늘 같이 파란빛이 정성을 다하는 날에... 그러니까 바람도 풍성하고 하늘도 파란 날은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다 받아들여질 것 같은, 그런 가슴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되찾고 싶다면 가끔 집에서 떨어지는 것도 좋겠다.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집 앞 작은 공원, 낮으면서도 동시에 높기도 한, 뒷산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곳은 꽤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운동기구들에 스카치테이프가 둘려져 있는 걸 보면 분명 그랬다. 그것이 낡았다면, 듬성듬성 찢긴 자국이 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바람에게만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이야기.
공원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찾아서, 아주 오래됐으나 어제 걸었던 사람처럼 나는 그 길을 거짓말처럼 헤맸다. 사실 방황하고 싶었으나 그곳은 내 바람을 담을 정도로 넉넉하진 않았다. 작은 보폭으로 걷는 모양을 연속적으로 줄여갔지만 누군가와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기만 했다. 난 어쩌면 바람을 맞으려고 한 것도 하늘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올려다보려고 공원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 집은 이미 그 작은 공원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가 현재 서 있는 이곳을 조망하고 있었으니까. 그 준엄하고도 인공적인 질서는 이미 자연을 품었으니까.
나는 공원 제일 높은 곳, 좌표상 위, 경도 어느 위치쯤을 생각 속에서 집어 보고 몇십 분 전에 앉아 있었을, 내 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몇십 분 전의 나와 지금 이 순간 공원을 찾은, 나 사이의 이격을 계산해보고 싶었지만, 예상만큼 그 길이를 재단하기 쉽지 않았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그 어떠한 공통점조차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주 낡고 조금은 검게 변색된 나무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다시 자연계와의 접점을 찾으려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했고, 어떠한 연결고리도 나와 자연계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돈을 떠올렸다. 내가 이처럼 가끔이나마 안락함을 누린다는 것, 이런 풍요로운 순간에게 잠시나마 의탁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의 돈이 나를 보호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겠다고 선포했다. 말하자면 그 자유라는 건 돈의 억압, 돈이 만든 기존의 질서로부터 역행하겠다는 선언이었는데, 모순적이게도 그 도달점은 돈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패러독스로 나를 꾸짖었다. 돈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겠다고 주장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여전히 돈의 노예로 살고 있었으니까. 왜 나는 가을의 냄새가 진하게 묻은 숲 한가운데에서도 어제의 나, 그러니까 돈에 물든 나로부터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내일의 나 역시, 이 숲을 떠난 즉시 다시 자본주의에 강하게 결속된 나로 돌아가긴 하겠지만…
누구든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 할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돈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우리는 돈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려 드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것은 거짓된 행동이자 자기기만이다. 나는 여기서 넉넉한 재산인 부(富)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단순히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의 개념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돈에게 예속된 인간으로 성장했는지, 돈에게 지배당하며 살아왔는지, 그 사실은 내가 이곳 작은 공원에 있어도 밝혀진다. 그것은 내 오래된 정체성이자, 내가 오래도록 이 사회에서 버텨나간 하나의 증거일 테니까. 그러니 그 역사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요즘 들어, 특히 돈에 관한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다. 유튜브, 전자책, 모든 월급 외 부가 수익이든 직장 외에 얼마나 많은 수입을 획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경제적 자유, 즉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를 설명한다. 이 현상은 이제 사람들이 기존 시스템, 낡고 진보하지 못한 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움직임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 움직임이 난폭스럽게 범람하는 시스템 정중앙에 놓여있다. 이 길은 내가 선택했지만 일종의 흐름이니까, 그 물결에 동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흐름을 타고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그 흐름에 동참하니, 이상한 일들, 과거에는 부정하기만 했던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3일만 일을 한다거나, 문화센터에서 독서 모임을 이끈다거나, 구청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모임에 강사로 초대된다거나, “넌 아직 준비가 안됐어. 모임은 더 배우고 노력한 다음에 만들어”라는 말에 반기를 든다거나, 내일 당장 퇴사를 결행한다거나.
삶은 예측하지 못한 질서에 지배를 받고 나 또한 그 기운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작은 영역이나마 순전히 내 힘만으로 가능한 세계를 구축 중이다. 그 노력의 결과는 내 정체성에 추가한 ‘공대생의 심야서재’와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과 나누는 깊은 교감을 상징한다. 가끔 내가 처음의 마음, 그러니까 돈과 상관없는 순수함으로 모임을 이끌어보겠다고 결심한 그날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지 않았을까. 과연 돈이 결부되지 않고 순수한 마음만으로 모임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의 순수한 마음으로 커뮤니티를 대해야 하는 걸까. 그런 면에서 나는 돈을 대놓고 추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돈을 무시할 형편은 못된다. 반대쪽에 서 있는 순수한 이상향, 순수를 가장한 가치의 도달을 위해서 과연 돈과 상관없는 선택을 얼마나 자주 내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대놓고 돈을 추구하겠다고 떠들어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난 초심을 잃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서 창가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고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깥쪽에선 가을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늘하게 피부를 훑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나마 가끔 자연의 음을 듣고 만진다. 그리고 얼마간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내가 감당해야 할 질서로 복귀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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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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