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스템의 에러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14

나는 시스템의 에러다.


공식적인 주간 보고가 종료되자마자 대표가 연설을 시작했다. 대표의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너무나 졸려서 입을 하마처럼 벌렸는데, 마스크 덕분에 노출이 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뭐 보여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뭔 이야기를 시작한다니 비판적인 자세로 그의 이야기를 잠깐만 들어보기로 했다.


"요즘 근무시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은데 말이야. 늦게 나오는 건 좋아. 그런데 그만큼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사람들 다 퇴근하고 나서, 혼자서 열심히 일하는지 노는지 누가 아냐고. 법인카드로 밥 먹고 놀다가 퇴근할 확률이 높지 않겠어? 업무의 성과를 측정할 시스템이 회사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제때에 출근해서 업무시간 동안 성실하게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게 좋겠단 말이지. 내 말이 잘못됐어? "


음, 대표의 이야기를 듬성듬성 듣다,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대표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질문 한 가지를 내던졌다.


"대표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보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시에 출근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그렇지"


"그럼 불성실하게 근무하는 사람들은 지각하는 일이 잦을 테고요"

"대체로 그런 편이지. 사람은 무엇보다 태도가 중요하단 말이야. 태도!"


"그렇다면, 성실하게 일한다는 조건은 회사가 정해놓은 근무시간, 그러니까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걸 의미하네요?"

"그렇지, 맞아. 법은 악법이어도 무조건 지켜야지. 소크라테스도 그랬다잖아."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성실한 자세로 근무할 테니, 실적도 그것에 비례하겠네요? 또 회사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겠어요.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위해 복지 시스템도 만들고 성과도 지금 할 것이고, 월급도 꼬박꼬박 올려줄 테고요."

"맞아 성실하게 근무하면 연봉도 올라가고 성과급도 두둑하게 받게 되겠지"


"그런데 연봉이란 건 그 사람이 가진 업무 성과와 실적에 따라 반영되는 게 아닌가요? 영업직에게 근무 시간만 잘 지킨다고 월급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상한 것은 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전 지각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이렇게 회사에 대해 불만이 가득할까요? 특히 대표님에겐 더욱더 말이죠. 아무튼 업무 성과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당연하지. 능력 없는 인간들은 퇴출되겠지"


"좀 전에는 성실성을 중요하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성과와 능력을 다시 언급하시네요? 그러면 직원의 능력을 판단할 기준은 뭘까요? 예를 들어, 개발자의 생산성을 파악할 수 있는 프레임웍이나 시스템이 회사에 존재하나요? (대표님 왔다 갔다 하셔서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런 건 아직 도입하지 않았지. 그런 기준이 없어도 지금까지 회사가 잘 굴러 갔으니까. 아무튼 직원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회사에 없으니까, 근무 시간이라도 제대로 지켜달라는 거야. 그거라도 직원을 평가해야지"


"대표님의 말씀은 우리 회사에 직원들을 평가할 시스템도 없고, 그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이나 절차도 없으니 오직 근태 시간만을 가지고 직원의 능력을 평가하자는 말씀이네요?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대표님 스스로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이 넘게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신 거네요. 그 부분을 방치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감은 느끼지 않으시나요?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시간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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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와의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표정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더 진한(?) 대화를 나누다간 내 책상이 사라지든가, 노트북의 상판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라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끊어야 했다.


회사는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다. 해결책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을 도입하는 것보다 때로 방치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 되므로, 이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근태라는 수단으로 직원을 압박하고 묶으려 한다. 그러니까 근태는 회사 입장에서 너무나 간단하고 편리한 통제 수단이 된다. 다만, 그것이 회사를 고려한다는 게 문제가 되겠지만… 회사에 종속되는 한, 이런 불만을 가져도 참아야 한다. 겉으로 절대 표현하면 안 된다. 노트북 상판 날아가는 수가 있다.


월급을 전제로 우리는 회사의 규칙에 얽매이겠다고 이미 선언했으니까. 뭐 선언하지 않아도 이미 우린 성실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있으니까. 23년이 넘도록 직장 생활에서 버티면서, 지금까지 지각한 전체 횟수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손가락 다섯 개를 넘지 않는다. 나는 참으로 성실한, 회사의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만큼의 능력을 회사에 제공했으며, 실적을 꾸준하게 냈으며 보상을 받았을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보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때로 월급 루팡이 되는 걸 택했고, 딴짓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란 인간을 정의한다. 그 말은 내가 성실한 직원이었으나, 전적으로 회사의 규칙을 따르지는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뜻이 같다.


우리는 그냥 하나로 퉁쳐지는 존재가 되어야 하나 보다. 근무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 존재, 반대편으론 어떤 규칙이든 가끔 어긋나고 싶은 존재, 이런 다양한 유형은 회사에서 필요 없다. 나 같은 두 번째 유형의 인간은 시스템의 에러니 빨리 사라져야 한다.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분석하려 들고, 따지려 들 테니까. 회사에서 사람 하나쯤 제거하는 게 무슨 문제랴.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섰고, 자리는 늘 한정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제 발로 문을 열고 회사 바깥으로 나가겠다고 외치는 정신 나간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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