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만했으니까 맞은 거야

수난의 시대는 막을 내렸을까?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16

맞을만했으니까 맞은 거야.


“입 꽉 다물어. 옥수수 털리기 싫으면 말이야”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자주 맞았고 세게 맞았으며 친구들 앞에서 수치스럽게 맞았다. 또한 빗자루로 맞았고,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맞았으며 때로는 삽십 센티 자의 날카로운 면으로도 맞았다. 그들 손에 쥐는 건 모두 무기가 된 셈이었다. 맞는 건 물론 고역이었나 일상다반사였으니 버텨야만 했다. 언제, 왜 맞았냐고? 그게 딱히 언제라고 범위를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비교적 넓은 시간에 걸쳐 맞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떤 사람, 그러니까 맞는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맞을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맞을 만했으니까, 충분히 맞을만한 짓거리를 제공했으니까 맞았다고 나 스스로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학창 시절에 맞은 기억을 회상해보면, 나는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문제아는 아니었다. 성실하게 등교하고 성실하게 하교하는 편이었으니까. 게다가 숙제를 밀린 적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가끔 문제적 상황이 펼쳐졌다. 수학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따귀를 세대씩 맞는다거나,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단체로 떠들었다는 이유로(난 결백하다, 난 결코 떠들지 않았다) 온 학교의 마대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돌아가며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곤장을 맞았다거나, 복도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걸었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 당했다거나. 그러니까 내가 맞은 이유가 없진 않았다. 아주 다양했다. 다만, 그 이유가 나에게는 타당하지 않았으나 상대방에겐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했을 거라는 짐작. 그 시절엔 맞는 사람이 죄인 취급을 받고 살았다는 정도. 그런 게 당연시됐다는 정도.


첫 문장의 대사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수학 선생이 나에게 던진 발언이다. 지금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입을 악문 덕분에 그날 내 옥수수가 털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불같은 사춘기 맞은 시절을 자랑이라도 하는 양, 붉은 손자국이 얼굴 반쪽을 뒤덮고 말았다. 내 피부가 아닌 듯한, 다소 불쌍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감추고 싶었지만, 한 손으로 얼굴을 하루 종일 가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사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가리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진정으로 가릴 수 없는 건, 내가 몽둥이도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맞았다는 거, 상대방의 손에는 그 사람의 마음, 즉 분노의 감정이 깊게 담겨있다는 거, 맞은 게 억울했지만 너무 쪽팔려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는 거, 그런 복합적인 이유들이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사람을 때리더라도 손보다는 회초리로 때리는 게 낫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물론 그 이야기도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손은 그 사람의 심장과 거리가 가까우니까, 그만큼의 감정이 실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맞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니까.


그런데 회초리도 아닌 손도 아닌, 마음으로 맞는 날도 자주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싶다면, 현금 이십만 원을 봉투에 담아오라던 담임 선생, 1번부터 70번까지 차례차례대로 중간고사 석차를 친절하게 불러주던 수학 선생, 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던 영어 선생, 독일의 국민성이 얼마나 우월한지 아냐며 한국 사람들을 개돼지들 취급하며 아이들까지 덩달아 무시하던 독어 선생. 그들은 폭력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맞은 상처의 유효기간이 손으로 맞은 것보다 훨씬 길었다.


그때의 가해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회가 변하고 학교의 풍경도 바뀌어서 그때의 폭력은 모두 사라진 걸까. 그때의 그들은 지금쯤 혹시 반성이라도 하고 있을까. 자신이 때렸을 수십, 아니 수백, 수천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며 간혹 미안하다고 속으로라도 말을 했을까. 내가 그들을 찾아가면 어떤 낯으로 대할까. 자랑스럽게 맞이할까. 눈 마주치는 것을 피할까.


맞은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트라우마로 모양을 바꾸어서 가끔 꿈에서 그리고 이렇게 글에서도 재현된다. 물론 이제는 그때처럼 맞지 않을 거라는 건, 의심 없는 사실이다. 나에겐 그때 존재하지 않던 힘이 있으니까. 수학 문제를 풀 일도, 시끄럽게 떠들어도, 회비를 낼 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일은 이제 가끔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화석 같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수치스러운 감정에 빠지고 만다. 대체 왜 나는 그때 수학 문제를 풀지 못했을까. 아니, 그렇다고 왜 맞아야 하는 건가. 대들어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단 말인가. 왜 나는 무엇이든 순종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단 말인가.


그토록 싫어하던 수학, 중학교 때 따귀 세대를 맞은 이후로 나는 수학과 가까이 지내지 않기로 했다. 밥 먹고 사는 일에 수학이 얼씬거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그건 섣부른 생각이었다. 개발자인 나에게 수학은 언제나 과거의 따귀 맞은 기억처럼 불쑥불쑥 찾아왔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소름 끼치던 기억으로 소환된다. 분필을 들고 칠판 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키 작은 소년, 입 꽉 깨물고 나오라는 선생의 발언을 다시 듣고 만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를 먹고, 그보다 더 모진 세월을 견뎌냈으니 따귀 세대 정도의 기억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할 만큼 성숙했으니까.


그런 순간을 내 것으로부터 완전히 떼어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그런 더러운 순간일랑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싶다. 하지만, 기억은 완벽하게 소거될 수 없으니, 나는 앞으로도 그런 치욕의 감정들을 견뎌내야 할 것 같다. 과거의 고통을 대하는 나의 자세, 이렇게 글을 쓰며 과거의 순간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칼질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작업이 무용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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