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다 Oct 30. 2022

쓰러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싶을 만큼

제주도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제주도를 얼마나 사랑해?


평생 풀 수 없는 최대의 난제, "나 얼마나 사랑해?"라고 묻는 이유는, "사랑해"라고 내뱉는 말에 담긴 의미가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섣불리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친구, 남자친구로서 소개를 해주는 것 역시 큰 신뢰를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의 치기 어린 날들을 돌아보았다. 만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사랑'을 남발하던 날들. 너무 많이 뱉어버렸기에,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져버린 것이다.


바다를 사랑한다고 여러 번 말했으나 그 크기가 어느정도인지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했다. 제주에서 한 달을 살 즈음, <그해 우리는> 드라마를 보았다. 이 드라마가 화제를 끈 이유는 시청자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해서일 테고, 혹은 그들처럼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끔 해서도 있다. <그해 우리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다른 사람 아니고 우리잖아. 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 한 거 아니잖아. 다시 만났으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힘들진 않았냐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우리.


그저 그런 사랑은 뭘까? 스쳐지나가고, 다시는 생각이 나지 않고, 어쩌면 괜히 사랑했다며 후회하고야 마는 사랑일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에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제주도는 나에게 어떤 사랑이었나. 제주도를 다녀와서 나는 그 순간을 어떤 식으로 추억을 할까. 그리고 육지로 올라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건넨다. 우선 내가 제주도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





제주의 고등어회는 사랑을 싣고


고등어회는 작년에 제주도에 갔을 때 처음 먹었다. 하나로마트에서 회를 사서 먹었는데 신선한 충격이라기보다는, 그저 수많은 '회' 중 하나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한 달 살기 하는 동안 고등어회를 세 번이나 먹었고, 각각의 특징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미영이네 고등어회 포장


우선 횟집마다 고등어회를 먹는 방식이 다르다. '성산수산식당'은 고등어쌈밥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쌈과 밥 위에 가게에서 만든 특제 간장 소스에 푹 담은 고등어를 올려둔다. (1인분 3만원) '범하다' 횟집은 딱새우와 고등어회 세트를 동시에 함께 판다. 이때 고등어회를 조미되지 않은 김에 올려두고 가게에서 만든 특제 양파 소스에 담궈서 먹는다. (1인분 4만원) '미영이네' 횟집에서는 조미되지 않은 김에 초밥처럼 양념된 밥에다가 고등어회를 올리고 야채초무침을 같이 올려 먹는다. '미영이네'의 특이한 점은 고등어탕이 함께 나온다는 거다. (고등어회 소자 5만 5천원, 포장가) 


성산수산식당 고등어쌈밥과 이누야샤


이렇듯 고등어회는 각 가게마다 다르다. 세 가게 모두 고등어회가 비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비위가 강한 편이라 그럴지도 몰라 신빙성은 없지만,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을 찾아가보았다. 고등어회는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 회이다. 왜냐하면 쉽게 상하기에, 제주도에서 바로 건져올린 고등어로 먹어야 싱싱하고 덜 비리고 맛있다. 제주도의 고등어회 기술은 서울은 따라가지 못할 것... (아마도?) 그러니 이것만큼은 제주도에서 꼭 먹어주었으면 한다. 


차라리 더 파도가 몰아치기를


파도를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원래는 파도의 물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파도에 비치는 윤슬이 내 눈을 얼마나 부시게 만드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아침마다 바라보는 청량한 삼달의 앞바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부여해주는지를. 긍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다가, 끝에는 파도가 쓸어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파도를 생각하면 어두운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사계 바다


밤바다에 대한 잔상을 맨 처음 메일에 써내려간 적이 있었다. 썰물이 쓸려나간 광활한 갯벌 아래에, 오롯이 파도가 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그 어둠 속.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나는 몇 번 밤바다를 보러 나갔다. 가로등이 얼마 없는 제주의 어둠은 한치 앞도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숙소 앞에는 해녀 탈의실이 있었는데 그 건물 안에 누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해녀탈의장을 지나치면 좁게 뻗은 길이 있었고, 앞과 옆 삼면에서 파도의 울음이 구슬프게 들려왔다. 보이는 빛이라고는 저 멀리 해안가에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과, 수평선 너머에서 한줌으로 빛나는 등대뿐이었다. 구름에 달과 별이 가려진 날에는 바다와 하늘의 경계뿐 아니라 땅과 바다의 경계마저도 사라져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몰랐다. 바다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부서져가는 흰 물보라뿐이었다. 나는 그때의 파도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듣고 싶어했다.


삼달의 바닷가 -옆 건물이 해녀 탈의장-


사실상 바다를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기보단 더 복잡해진다. 몰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생각에 깊게 잠겨버린다. 잠수를 하는 것처럼. 행복해진다는 감정보다는 바깥에 있는 것들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종종 파도소리를 들으러 밤에 테라스에 나갔다. 글을 쓰려면 오히려 그런 감정들이 더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제주도에 놀러올 땐 감정이 내려앉은 적이 없었다. 그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만 다가왔는데 파도소리에 따라 더욱 격하게 내게 몰려왔다. 이 메일링을 쓰기 위해서 몇 분 동안 추운 테라스에 앉아 가만히 어둠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면서도, 혼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바다를 사랑하면서도 결국엔 바닷가에서 살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한 달 간의 제주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맑은 날엔 만나러 가고 싶어요


제주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끔씩 보이는 맑은 날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제주는 날이 좋은 때가 많이 없었고, 그렇기에 흐리거나 눈이 오는 날은 핑계를 대며 숙소에 눌러붙어있었다. 하지만 날이 맑은 날에는 얄짤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이런 날에조차 밖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었다.


제주가 좋은 이유는 넓기 때문이다. 넓은 만큼 다닐 곳이 많다. 동쪽이 질렸다고는 하지만 안 가본 곳을 따지면 여전히 많이 있다. 인스타에 유명한 감성 카페는 지금도 새로 생겨나고 있고, 제주의 음식은 맛집으로 소문나지 않아도 어디든지 맛있다. 길을 가다보면 어디에나 있는 과일가게에 들려 레드향이나 한라봉을 포장해오는 것도 좋았다. 제주에 가면 레드향과 천혜향을 꼭 먹어보기를.


매순간이 여행이었다


서울에서는 어딜 가도 다 똑같이 느껴졌다. 맛집을 가고, 카페를 가고, 영화를 보고. 샤로수길이나 송리단길, 홍대, 신촌, 강남. 내가 보기에는 더현대와 롯데타워와 스타필드는 다 똑같은 부류였다. 사실 국내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어딜 가도 똑같은 '산'만 보일 거라는 나의 편견 때문이기도 했다. 서울은 보이는 곳마다 다 같은 번화가로만 보였다.


그러나 제주는 달라보였다. 자연 때문일까, 아니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곳곳에 숨어있는 카페들 때문일까.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 오히려 희소성이 있는 카페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던 날들이 퍽 싫지는 않았다. 제주에 살면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을 몇 번 했다. 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찌되었든 삶은 다 지루해지기 마련일 텐데 말이다.


독립서점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무튼 제주가 좋은 점은 여행할 곳이 많다는 것. 맑은 날에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숨겨진 독립서점과 파는 물건이 서로 다른 희귀한 소품샵들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전에 찾아간 곳을 다시 들려보는 재미도 있었다. 제주는 멈춰있지 않았다. 어쩌면 서울보다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곳이 제주였기에, 다음에 찾아오면 또 숨겨진 곳들을 곳곳이 찾아다니게 될 것이다. 




이전 18화 제주 한달살이 초반과 후반 비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