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 이 개념 안에는 여러 내용들이 있다.
첫째는 perceived changes in self, 즉 고통스러운 사건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지각이 바뀌는 것이다.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새삼 발견하기도 하고,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내면의 힘을 알게 되기도 한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두 연구자 로렌스 칼훈(Lawrence G. Calhoun)과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G. Tedeschi)는 이런 식으로도 표현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 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두 번째는 a changed sense of relationships, 즉 대인관계에 대한 감각이 변화하는 것이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혹은 온 세상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지고 결정적인 손절과 단절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전에 미처 몰랐던,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 번째는 a changed philosophy of life, 즉 고통의 경험을 계기로 인생관, 인생철학, 인생의 우선순위 같은 것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이제껏 중요한 줄 알았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지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고,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힘든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자동적으로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사건은 ‘원인’이 아닌 ‘촉매제’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했다.
‘외상’과 ‘성장’은 인과관계가 아니다. 고통이 그다음의 삶을 위한 촉매제로 작용하기 되기 위해서는 몸부림치는 탈피, 그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석사논문을 구실 삼아 이런저런 심리학의 개념들을 공부하고 정리했던 일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짚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울음에는 때론 위로만이 아닌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고양이를 잃은 일은 내겐 고통스러운 외상 사건이었다. 내 삶은 더 이상 이 일을 겪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학자들이 말한 개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몸으로 느꼈다.
아등바등했던 것들은 무의미해지고, 눈앞의 문제들은 그저 언젠간 잦아들 소음에 불과해졌다. 고양이의 죽음을 통해 나는 죽음을 살았다. 생을 먼저 건너간 고양이와 아직 건너가기 직전인 나는, 하등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알았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이 세상 많은 존재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선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때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버리라고 한다. 이 제도 대신 반려인들의 마음을 완충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주로 수도권 외곽에 있는 동물 장묘업체들인 것 같다.
그곳들의 상술이라든가 별별 값비싼 비용이라든가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반려인들로부터 문제제기가 되어왔다.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는 틈바구니에는 그 틈을 이용하는 자들이 생기고 늘 거기에 상처받거나 피해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나 사랑했던 동물을 갑자기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춰주는 데라곤 사실상 거기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엔 그랬다.
내가 갔던 곳에선 독립된 방에서 고양이와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흰 국화꽃을 장식해 주었고, 사진 인화 서비스를 해주었고, 통유리창을 통해 소각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소각로에서 나온 뼛가루는 직접 눈앞에서 확인시켜 주며 붓으로 세심히 다뤄주었다. 다만, 소재별 재질별로 적잖은 비용이 책정되어 있는 수의나 관 등의 옵션도 있었으나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때가 되자, 체구가 작은 백발의 노인이 꽃수레에 애기의 몸을 싣고 천천히 소각로로 향했다. 두 손에 흰 장갑을 낀 노인이 고양이의 몸뚱이를 소각로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주 정중한 태도로, 고양이를 향해 몸을 숙여 목례하며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떠난 내 고양이와 흰 장갑의 백발노인.
그 장면은 지금껏 내 마음속에 흑백의 사진 액자처럼 각인되어 있다. 세상 어디에도 기억되지 못했던 내 작은 아기의 마지막 길을 존중해 준, 고마움의 광경으로.
장례식도 조문객도 없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주저앉아있던 내 손을 잡아줬던 손들을 나는 기억한다.
애기가 입원해 있는 내내 내 걱정과 눈물을 다 들어준 친구의 존재는 단단한 끈이었다. 애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른 아침부터 동물병원 앞으로 달려와 준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4월의 화창한 아침 햇살에 나는 몸을 가누기도 버거웠을 것이다.
한 달 넘게 애기를 담당했던 수의사의 눈물을 기억한다. 애기는 하필이면 그 의사가 비번인 시간에 숨을 거뒀다.
저녁에 장묘업체에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쓰일 곳이 없어진 새 패드며 의료용품들을 챙겨 병원에 가지고 가 의사에게 인사를 했다. 이 용품들이 필요한 다른 아픈 아이들에게 쓰라고, 그리고 그동안 애기를 치료해 주어 고맙다고.
그 수의사의 판단들이 수의학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 나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내 고양이가 죽었으니까.
실제로 많은 동물병원에서 수많은 의료사고와 분쟁들이 있고, 동물과 보호자들은 대부분 약자이거나 피해자들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때 내가 겪은 일에 대해 한 가지는 안다. 그 수의사는 내 고양이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포기의 포 자도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큰 체구의 장정 같은 그가 내 인사에 조용히 눈물을 흘릴 때, 아니, 면회 가서 경과 설명을 듣던 매일 이미 알았던 것 같다. 나와, 내 고양이와, 내 고양이의 수의사는, 우리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애기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을 때 옆에서 내게 티슈를 건네주던 다른 의사의 손길도, 애기가 좋아했던 간식이라며 유품을 건네주고 울먹이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담당의는 아니었으나 애기의 치료 경과를 공유하고 있던 다른 여러 수의사들의 정중한 눈빛 또한 기억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하루에도 수차례 드레싱과 처치를 해주고, 발버둥을 칠 때 사방에 튀는 대변과 오물을 닦아주던 많은 이들의 손길을 안다. 애기는 난생처음 그렇게나 많은 인간들의 돌봄의 손을 탔다. 고양이로선 고통의 나날이었겠지만, 보호자인 나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일들이다.
애기가 죽었다는 소식에 진심과 진중함을 담아 애도의 말을 건네주었던 동료들과 지인들의 메시지들을 기억한다. 그 누구도, 동물이라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가벼이 여겨주지 않았던 것을 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집한 설문 대상자들 수백 명의 펫로스의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펫로스 치유 집단상담에서 만난 집단원들이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던 공감의 시간들과 내 고양이에게 축복을 보내주던 목소리들을 기억한다.
쓸쓸했으나 결코 혼자는 아니었던 시간들. 도와준 손길과 존중해 준 목소리와 공감해 준 연대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의례적인 말이나 직업적인 행동일지라도 그 안에 한 톨의 존중이라도 담겨 있다면, 누군가에겐 지푸라기가 되어준다.
나 자신이 ‘성장’을 했는지는 모른다.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엔 여전히 차게 굳은 분노가 있다. 왜 내 고양이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어야 했나. 왜 난 막지 못했나.
왜 이 세상 모든 약하고 선한 생명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사악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가해지고 있나.
그럼에도 어떤 끈이, 어떤 지푸라기가, 어떤 목소리가, 어떤 손길이 삶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것 또한 안다.
애기가 내 삶의 끈이었던 것처럼, 애기의 죽음 또한 새로운 끈이다.
내가 받은 이 선물은 가혹하되,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