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프로포즈와 스냅 촬영 에피소드
따뜻한 봄에 결혼 준비를 시작해서 어느 덧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가을이 되었다. 일하면서 틈틈히 퀘스트 깨기를 열심히 해왔고, 그 사이 무탈히 긴장된 상견례도 잘 치렀다. 그렇게 우리가 만난 지도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쩐 일로 예약을 잘 하지 않는 극P의 신랑이 만난 지 1주년이 되었으니 오마카세를 예약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연애를 1년 하면 조금은 변하는 것인가, 살포시 웃음이 나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맛있는 걸 먹기 위해 들뜬 표정으로 온 사람들로 좌석이 가득 차 있었다. 조리대를 바라보고 나의 왼쪽에는 신랑이, 나의 오른쪽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있었다. 1주년이 되니 어쩐 일로 예약도 다 하고 너무 기특하네? 대화하며 하나씩 내어주시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어느 덧 본격적으로 스시가 나오는 순간 신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적이더니 편지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지? 1주년이라서 편지도 다 썼나? 하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는 동안 '다음 oo 스시입니다.'라고 하시며 다음 스시가 나왔고, 옆 자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리고 그 편지는 '사랑하는 oo야'로 시작해서 '나랑 결혼해줄래?'로 끝났다. "이거 설마 프로포즈야?" 라고 했더니 그는 아주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끝이야?"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갔다. 기대하던 눈빛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아니, 내가 아무리 손편지가 있는 프로포즈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모르는 모두(?)가 있는 곳에서 스시를 먹는 중에 프로포즈를 받을 줄이야. 앞에 계신 쉐프님이 당황하실까 눈물을 꾹 참아보려 했지만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식사 후 나와서 정말 크게 투닥거렸다. "아니 그래도 프로포즈는 기본적으로 둘이 있을 때 해야 하는 거 아니야?"부터 "선물은 없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꽃 정도는 준비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까지. 무뚝뚝한 경상도 공대 남자인 우리 신랑도 나름 억울했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그 이면에 괄호 열고 둘이 있을 때 해야 하고 꽃으로 분위기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괄호 닫고는 인풋에 없던 내용이니까. 그래서 화해는 어떻게 했냐면, 밤새 울면서 싸우다가 알고보니 신랑이 편지 내용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고심해서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싸우던 중에 갑자기 감동을 받아 풀렸다는 것.
프로포즈 사건이 있고 난 다음 주, 우리는 제주 스냅을 촬영하러 제주도에 갔다. 출발지가 달라서 내가 먼저 제주 공항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과 함께 예약해둔 호텔로 갔다. 예약한 호텔의 문을 여니 눈에 보이는 건 'Will you marry me?'라고 적힌 풍선들. 그 순간 정말 빵 터져서 나온 나의 첫 마디는 "이거 얼마 줬어?". 신랑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첫 마디가 얼마 줬어야!"라고 하면서도 서로 빵 터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내가 먼저 제주도에 왔으니 이걸 신랑이 직접 했을 리가 없잖아. 알고 보니 그래도 프로포즈를 울고 불고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게 할 수 없어서 부랴부랴 준비한 신랑의 깜짝 두 번째 프로포즈였다. 이번에는 꽃다발도 준비했다며 침대 위에 미리 준비된 꽃다발을 건네면서. 그렇게 나는 두 번의 프로포즈를 받은 신부가 되었다.
스냅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재미있게 촬영했다. 사진을 많이 찍어보지 않은 신랑도 스냅은 재미있었다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물론 신부는 맨 살에 제주의 바다바람을 맞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멋있는 신랑과 함께 하며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바다와 서핑을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꼭 바다를 배경으로 찍고 싶었는데 재밌어 하는 신랑을 보며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결혼식을 준비하며 또 다른 추억을 하나 더 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