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양현 Jan 12. 2019

억류소소장 소네고양이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소네소장의 악명

하루는 트럭에 빵을 싣고 정문을 지나 수용소 안으로 들어왔다. 차가 멈추자 운전대 곁에서 일본군 대위 한 명이 내린다. 장호를 신었고, 손에 긴 일본도를 들고 있다. 키는 왜소했는데 얼굴은 작은 고양이 상이다. 차 곁으로 달려온 아이들과 여인들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군인을 보면 경례를 하라고 지시했는데 경례를 안 하다니 일본군을 뭘로 보는 거야!” 


일본군에게 경례를 하고 있는 억류소 Tjideng 캠프의 여성, 어린이 억류자들 (http://members.iinet.net.au에서 인용)


그는 이 억류소의 소장이다. 순시를 할 때 경례를 안 하거나, 주변 오물을 치우지 않았거나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체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포로들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받는 것은 그에게 매우 유쾌한 일이다. 그 행동은 항복자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왜소한 체구에 괴상한 얼굴을 가진 자신을 우월하게 만드는 행동하기 때문이다. 부녀자들은 그를 보고 소네고양이라 불렀다. ‘소네’는 그의 성이다. 그는 부하들에게도 늘 변덕을 부렸다. 기분이 좋을 때는 때로 과찬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말레이어를 우리 중에 제일 빨리 배운 내 동료 이병춘은 그에게 봉변을 동했다.

민간인 억류소 Tjideng 캠프의 소네 켄이치(曽根憲一), 포로들에 대한 가학혐의로 전범재판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https://www.europeana.eu에서 인용)

“쿠니모토 군(이병춘의 창씨개명 후 이름), 자네는 어찌 그리도 말레이어를 잘하나. 나도 좀 배우고 싶은데 당최 혀가 돌아가지 않아. 언제 좀 가르쳐주지 않겠나.” 

“네. 배우시겠다면 가르쳐드리고 말고요. 곧 잘하시게 될 겁니다.” 

그는 오전에 한 말을 오후엔 말끔히 잊어버린다. 

“쿠니모토 군. 어제 사망자 명단은 본소에 제출했는가?” 

“아직 못했습니다.” 

“왜 아직 안 하고 있어. 어제 일은 어제 처리했어야지.” 

“어제는 제5분견소에 포로들 급양 때문에 출장을 가서 미처 못했습니다." 

“그럼 급양 목록서는 제출하였나?” 

“그게 소장님이 도장을 가져가셔서 못했습니다.” 

“뭐라고? 이 새끼 뭐든지 미루기만 하네. 너 요즘 매우 태만해졌어. 내가 아까 보니 포로들에게 하수도 소제를 시키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되어 있더군. 당장 쫓아버려야겠다. 통역 좀 시켜보려고 데려 왔는데 그렇게 게으름만 피우고 말이야. 당장 전출서를 써라. 그까짓 통역 내가 해도 돼. 당장 전출서를 써라.” 


이병춘은 별 수 없이 전출서를 썼다. 그리고 그의 책상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말 다른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 대위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창밖의 억류자들의 동정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멀리서 불을 피우고 무엇인가 음식을 팬에다 넣고 볶는 것이 보인다. 

“저것들이 허락 없이 취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뭐 하는 거야! 저것들 빨리 오라고 해.” 

여자 둘이서 팬을 들고 들어온다. 대위는 즉각 팬을 발로 밟아 짓이기고 그녀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댄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자를 불러오라고 한다. 잠시 후 품위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들어왔다. 통역이 뭐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대위는 명령하다. 

“이 여자들은 세끼를 굶겨라!” 

그들이 돌아간 뒤 대위는 뇌까린다. 

“지금 우리 장병들이 태평양의 고도에서 적의 폭격으로 몇 만 명씩 굶주리고 수없이 죽어간다. 배불리 먹여놓으니 딴전을 피우고 있다니.”
그 후 밖으로 나간 대위는 두 시간 후에 돌아왔다. 


빵 매장 사건

사흘 후엔 빵 사건이 생겼다. 자기에게 경례를 안 한 것에 무척 화가 난 대위는 그 자리에서 대표자를 불러 삽과 괭이를 챙겨 대여섯 명과 차에 동승하도록 했다. 차는 언덕 고갯길로 달려갔다. 대위는 포로들에게 땅을 깊게 파게 시켰다. 그다음은 빵을 가득 싣고 따라온 차 안의 빵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땅에 묻고 흙을 파서 덮도록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대표자에게 명령한다. 

“다른 명이 있을 때까지 단식이다. 누구고 명령을 어기면 엄벌한다.”

수많은 인원들이 바로 한 끼니를 먹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다. 또 끼니를 넘기려니 어른은 참는다 해도 아이들은 참을 수가 없다. 대표자는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며 애원을 한다. 목사, 수녀 등이 통역을 통해 빌었는데 대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날 해가 꼬박 넘어간다. 이튿날에도 대위는 좀처럼 허락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전투원이고 아녀자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처우할 수가 있느냐.” 

“이런 짓을 하면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늘이 노할 것이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이렇게 쑥덕거렸을 것이다. 

한나절쯤 지나자 대위는 식사를 하도록 허락했다. 억류소 내에서 소리 없는 함성이 터졌다. 억류자들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기원할 뿐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굶주린 자의 빵을 땅에 묻다니 미치광이가 아니고서는 해선 안될 행동이다. 하기야 그는 반미치광이니까. 

소네 대위와 빵사건,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회자가 되었다. 대위는 정복자의 위엄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한 구석이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허전한 감을 느끼고 개운치가 않다. 포로들은 통역을 통해 대위에게 하느님이 성낼 것이라고 했다. 


대위와 사환의 미스커뮤니케이션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 듯하다. 그날 밤, 그는 숙소에 돌아가 잘 흔들리는 침대에 누워 잘 먹지 못하는 술 한잔을 들이켜고 답답한 심경을 풀어 볼 작정이다. 모든 장교가 그러하듯 그도 서툰 말레이어로 사환을 부른다.

“오이 종고스.” (종고스는 사환 또는 하인이라는 말이다)

그러자 사환이 바로 달려와서 고개를 숙인다. 

“바구스노 아다스(말레이어로 위) 노우에니 보도루가 아루?” (아이스박스 위에 술병이 있지?)

 “야. 야.” (네.네.)

 “소레오 바와(말레이러로 가져와라) 코이.” (그걸 가지고 와)

사환은 박스를 열고 맥주병을 가지고 왔다. 말레이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인 괴상한 말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3개국어를 합성한 말로 술잔을 요구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사환이 잔에다 맥주를 따르려는데 맥주병이 바닥에 썰어져 깨져버린다. 놀란 사환은 잽싸게 병조각들을 줍는다. 대위가 사환에게 소리쳤다.

“라리! 라리!”

사환은 공포에 떨었다. 라리는 말레이어로 “달려간다”라는 의미 한다. 사환은 “달려가서 체벌을 받아라”라는 뜻으로 해석한 듯했다. 사실 대위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 것이다. 

“저리 꺼져버려라. 나 혼자 조용히 먹겠다.”

 대위는 사환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고 우울한 기분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이 잘 통할 것 같지 않자 별 수 없이 직접 주방으로 가서 맥주 한 병을 가지고와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직접 사환을 붙잡고 직접 방으로 집어넣었다. 숙소로 돌아온 대위는 말이 잘 통하지 않은 불편함을 새삼 느끼며 뇌까렸다. 

“쿠니모토였던가. 조센징 그놈은 왜 그리 말레이어를 잘하는 거야. 대체로 우리 일본인은 외국말을 못해. 그런데 여기서도 조선 군속 놈들은 일본말도 잘하지만 말레이어를 제법 잘해. 일본말도 잘하지만.”


대위는 언젠가 우리 앞에서 괴상한 논리를 설파했다.

“화란인도 말레이어를 썩 잘하지. 이들은 식민지 언어로 원주민을 부리지. 쌀밥도 잘 먹고. 그러나 영국인은 달라. 그들은 어디를 가나 영어를 강요하지. 외국말은 전혀 배울 기색이 없어. 우리 일본인도 섬나라고 얼굴 모습이 좋은 것을 보면 영국인과 비슷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많은 나라를 격파할 수 있는 거야."  


이전 10화 일반인을 억류소에 몰아넣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