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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12. 2021

멋진 청풍호뷰를 보고 싶다면

 제천 금수산 정방사

충북에서도 북쪽 끝에 위치한 제천까지 갔으니, 옥순봉 출렁다리만 걷고 오기엔 뭔가 아쉬운 상황. 작년에 제천여행 갔을 때 박달재, 배론성지, 삼도천터널, 청풍호반 등지를 돌며 곳곳을 구경하긴 했으나, 출렁다리에서 청풍대교쪽으로 올라가며 청풍호를 끼고 도는 길은 가보지 못해서 그 길을 따라 청풍문화재단지까지 가보기로 했다.


충청북도 북동부의 중앙에 위치한 제천은 중부 내륙의 줌심지로서 동쪽은 단양군 어상천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서쪽은 충주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시, 북쪽은 강원도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 충청북도 전체 면적의 약 12%를 차지하며, 시의 동쪽 끝은 송학면 장곡리, 서쪽 끝은 백운면 덕동리, 남쪽 끝은 덕산면 월악리, 북쪽 끝은 백운면 운학리이다. 행정구역은 1읍 7면 9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지역 명소인 박달재에 얽힌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절한 사랑을 모티브로 하여 각각 건강을 지켜주는 어린 신선과 사랑을 전해주는 어린 선녀로 귀엽게 형상화한 '꼬마신선 박달'과 '꼬마선녀 금봉'이다. 그래서 제천을 돌아다니다 보면 귀여운 박달이와 금봉이의 캐릭터를 자주 마주친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천여행지도를 살피니, 가는 길에  멋진 암벽아래 자리한 '정방사'란 절이 눈에 띄었다. 여행지도에는 '의상대'라는 웅작한 암벽 아래 법당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자드락길 2코스를 걸으면 50분 정도 소요된다고 나와있었다. 어쩐지 정방사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분들이 꽤 많다 싶더니 자드락길 코스 가운데 하나여서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 소속인 정방사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위치한 사찰이다.(제천시 옥순봉로 12길 165)

법당 외부벽면에 걸린 사진

정방사를 내비게이션에 찍으니 절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쭉 나있어서 별 생각없이 내비 따라서 차로 갔는데, 중간중간 교행할 공간이 있긴 했지만 산속에 난 외길 1차로여서 정방사에서 내려오는 차들이 많을 땐 한참을 뒤로 물러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큰 도로에서 정방사까지 2km의 산길을 30분 넘게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우리 앞에서 한동안 길라잡이해주던 카니발 타신 분들은 도저히 이렇게는 못 가겠다고 중간에 차를 돌려서 내려가버리셨다. 조금만 참고 올라가셨음 진짜 좋은 구경하셨을 텐데 아까비~)


일주문이 있을 법한 곳에 다다르면, 일주문 대신 갈림길 표지판이 보이고 오른쪽에 주차장이 두 군데 마련되어 있다. 그 위로는 차량진입을 금지하고 있으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400m의 산길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오르막길의 경사가 꽤 높아서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들은 헉헉대며 가야 하지만, 10분쯤 그렇게 걸어서

정방사에 다다르면 그 정도 고생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꼬불꼬불 산길에 도토리깍지를 모자처럼 쓴 동자승 인형들이 반겨주는 모습도 빙그레 웃음짓게 한다)

정방사 경내에 올라서면,

멀리 잔잔한 청풍호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이 눈앞에 쫘악 펼쳐진다. 산길을 올라오며 힘들었던 몸의 피로가 한순간에 다 풀려버리는 듯한 멋진 풍경이다. 마침 단풍이 절정을 이룬 금수산과 야미산 두무산 비봉산, 멀리로 월악산과 황학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어도 꿋꿋이 이곳까지 걸어서 올라오는 까닭이 단숨에 이해된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아서 작은 암자 수준구나 했는데 역시나 정방사 소개문을 보니 원래 금수산에 세워진 상, 중, 하 세 개의 암자 가운데 가장 높게 위치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금수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암벽 아래 자리 잡은 정방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스님이 창건하고 (의상대사가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그 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 순조와 헌종 때 현 원통보전이 중수되고, 고종 때 칠성각(현 나한전)이 건립되었으며, 후불탱화와 칠성, 산신, 나반 탱화 등이 모셔졌다. 현재 정방사 경내에는 법당(원통보전), 칠성각(현 나한전), 유운당, 석조관음보살입상, 마애지장보살입상, 산신각, 종각, 종무소 및 요사채, 후원이 있다.


관세음보살좌상을 주존으로 봉안한 법당은 앞면 6칸, 옆면 2칸의 팔작 지붕이다. 건축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순조와 헌종) 두 차례 크게 중수되었다. 관음보살상은 목조로 조성되어 법당 주불로 봉안되어 있었는데, 복장 발원문이 1689년(숙종15년)에 작성된 것으로 미루어 이 무렵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산길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보이는 지장전에 모셔진 마애지장보살입상이 상당히 특이하다. 원래 암벽이 있던 곳에 그대로 암벽을 또 하나의 벽으로 하여 법당을 지었는데, 지장보살입상 뒤에 있는 암벽에는 금칠로 그려진 또다른 지장보살이 있다.

정방사 입구에 세워진 창건연기에 따르면, 정방사가 세워지는 과정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淨圓)스님은 십여 년 천하를 두루 다니며 공부를 하던 중 제행무상(諸行無常: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춰 있지 않음)을 깨닫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자 스승께 여쭈었다.


"십여 년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다 보니 불교의 깨침은 세상의 앎과 다르지 않고, 부처와 중생의 근본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겠습니까?"


의상대사께서 이르셨다.


“내 지팡이의 뒤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 있다. 그 산 아랫마을에는 윤씨 성을 가진 이가 살고 있을 테니 그 집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뜻을 이루리라.”


스승이 던진 지팡이를 따라서 여러 날 동안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금의 정방사 자리에 도착했을 때 지팡이가 땅에 내려앉았다. 정원스님이 살펴보니 겹겹이 아름다운 산이 펼쳐지고 맑은 강이 흐르는 풍경 속에 우뚝 솟은 억겁의 바위는 마치 하늘세계의 궁궐같았다. 스님이 산 아래 마을의 윤씨 댁을 찾아가서 자신의 뜻을 전하니, 집 주인 이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의상이라는 스님이 흰 구름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그대의 전생(前生)을 잘 알고, 불연이 있어 말하는 것이니, 내일 어떤 스님이 오거든 절 짓는데 정성을 다해 도와주길 바라오." 하고 떠나셨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창건된 사찰이 금수산과 청풍강(이 앞을 흐르는 한강을 부르는 다른 이름인 듯)의 맑은 물과 바람이 꽃향기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진 절, 정방사(淨芳寺)이다. 제천에 가시면, 금수산 의상대 아래 정방사에서 청풍호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전망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 정방사에서 눈여겨 볼 문화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6호인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이다. (정방사 법당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관음보살좌상과 그 안에서 나온 유물들)

보살상의 높이는 51cm로 비교적 작은 크기이며, 머리 정면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어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손은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댄 상태에서 왼손은 어깨높이로 들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였고,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하여 결가부좌를 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와 같은 손의 자세는 이 보살상이 아미타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체는 비례가 알맞으나 경직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싼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단순화된 2줄의 목걸이를 걸고 있고, 앞가슴에는 가로로 생긴 내의의 주름을 보이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보살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보살상 안에서 법화경, 다라니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발원문에 '康熙二年(강희이십팔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성연대가 조선 숙종 15년 1689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상을 봉안한 사찰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본래부터 정방사에서 조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규모는 작은 상이나 전체적으로 조각솜씨가 단아하고 아름다운 불상으로 당시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본존상과 오른쪽 협시보살상은 전하지 않고 있다


* 법당 후불탱화는 1928년에 금어 관하종인 스님이 광목 바탕에 그린 것으로서 크기는 가로 155cm, 세로123cm로 된 채색화이다. 그림 중앙에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있고, 뒤로는 두 보살과 여러 성자들이 있다. 신중탱화의 조성연도 및 금어는 후불탱화와 같고, 크기는 가로 102cm, 세로 121cm로 역시 채색화이다. 그림 중앙에 동진 보살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6명의 신장이 서 있다.

정방사 편액은 석종 안종원(1874~1951)의 글씨며 4폭의 주련은 법당이 중수된 1825년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작자는 알 수 없다. 원통보전 (圓通寶殿) 편액은 법주사 원혜정 대종사의 글이고, 유구필응(有求必應)은 은초 정명수 선생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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