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배울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삶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고, 나아가 나에게 한없이 따뜻한 기억을 더듬어줄 수 있게 만든다.
기억 속 언저리에 앉아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서 돌이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행복을 준다.
아버지는 언제나 유머와 배려의 말을 가슴에 품고 사신다.
아버지에게는 참 많은 것을 받았다.
대학교1학년 3월의 어느 날 어스름이 차오르는 저녁이었다.
처음 술을 가르쳐주실 때, 냉장고 안쪽에 숨겨져 있던 찰진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 3병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황홀한 부침개와 코끝을 자극하는 매운탕을 바라보며 식탁에서 처음 하셨던 말이 기억난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너의 인생에 술처럼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많은 인간관계가 나타날 게다'
'그럴 때마다 너의 옆에 있는 사람이 너를 대변한다는 맘을 가지고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어른 앞에서 배웠으니 술을 먹으며 정신을 흐트러 뜨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사람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기억을 더듬어가면 그때는 그 말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지금생각하면 사회에 들어가는 나에게 주변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런 맘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람을 사귀려 노력하였다.
때로는 나의 미숙함과 어리숙함에 치여 좋은 사람을 밀어내고, 힘든 사람을 곁에 두려 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겪여가며 성숙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을 때, 그 맘들을 가슴에 새기며 진정으로 대함을 알아가기 위해서 부족한 머리를 흔들며 앞으로 정진을 시작하였다.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처음 아버지에게 소개시켜 드릴 때에도 아버지는 어색하지 않도록 유머를 한 아름 안고 우리를 가득히 품어주셨다.
첫인사에서 떨렸을 아내에게 아버지는 다정한 목소리로 섬세하게 얘기하셨다.
"우리 아가가 집에 들어오는 걸 보니 햇살이 없어도 집안이 너무 환해져서 좋구나~"
"너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선물이구나"
아내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는지 떨리듯이 힘이 들어간 꼭 잡은 두 손을 살며시 놓으며, 긴장을 덜어내며 웃을 수 있었다.
스물여덟 직장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첫 프로젝트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팀에 민폐만 끼치고, 결국 상사에게 "기본도 안 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퇴근길,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거리를 우산 없이 혼자 터덜터덜 걸으며 자괴감에 빠져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눈물이 비와 섞여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처참한 나를 우연히 비친 창문 앞에서 바라보았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현관에 낡은 운동화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로 들어가니 엄마가 부엌에서 뭘 끓이고 계셨다.
"너 오자마자 먹여야지"라며 웃으시는데, 갑자기 참았던 울음이 터져서 우당탕거리며 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수건으로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꾹 누르며 눈물을 안으로 억지로 구겨 넣었다. 눈이 충혈된 채로 밖으로 나왔을 때 엄마는 당황하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으셨고, 아무 일 없다는 나의 제스처를 보고, 엄마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이시더니, 곧 따끈한 된장찌개를 앞에 놔주셨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 아홉 살 때,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져서 피가 철철 흐를 때가 있었어 근데 너 울다가 내가 걱정하니까 울음을 뚝 그치고 나를 보며 방긋 웃으며 나를 안아주더라고"
"그때 내가 정신이 없었는데 그 미소를 보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다 이겨낼 힘이 생기더라."
"너는 이미 그렇게 대단한 애야. 지금 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게 너잖아."
그 말에 숨이 멎을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된장찌개 국물 한 숟갈은 나에게 세상 어떤 값비싼 위로보다 깊은 힘이 되었다.
부모님이 나의 존재 자체를 믿어주는 그 마음은, 내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그건 돈으로도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에 뿌리처럼 박힌 순간이었다.
돈주고도 못 사는 것 그건 사람에 대한 사람의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마음을 위로하고 위함으로써 성숙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