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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03. 2022

새로 나온 책 빌릴까 살까 난리부르스

대체 요즘 세상에 책을 누가 보냐는 말을 부모님 입으로도 듣고 유명 작가 입으로도 듣고 듣고 듣고 또 듣고 허허로운 심정으로 살면서도 어쨌거나 책 써서 팔기를 과업으로 삼고 있는데, 책을 쓰자니 당연히 책을 이것저것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히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걱정이다. 심지어 지금은 책을 낸지 한참 지난 뒤라서 책으로 들어오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과연 내게 책을 쓸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배워먹은 도둑질이 이런 것뿐이라 그만두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다는 점일까? 하지만 도서관이 길 건너 코 앞에 있는 것도 아니라 한 번 다녀 오려면 한 시간은 소모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자전거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전속력으로 갔다와도 30분은 걸리고, 간 김에 다른 책도 좀 볼까…… 따위 생각을 했다간 30분은 너끈히 추가되고 만다. 그래서 물리적 도서관에 종이책을 빌리러 간다는 것은 온라인 주문이라는 최후의 선택 바로 전으로 미뤄두고 싶다.

그럼 책을 도서관에 가서 빌리는 것과 인터넷 서점에 주문하는 것 말고는 어떤 선택지들을 고려하게 되는가? 요즘 책 한 권 사는 것도 어째 넌더리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가정하자. 일부 만화나 웹콘텐츠를 제외하면 종이책이 가장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나처럼 짐도 줄이고 돈도 아껴야 해서 전자책을 선호하는 사람은 전자책 출간 알림을 신청하고 또다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어떤 책은 아무리 기다려도 전자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책이 전자책으로 안 나온다고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책의 종류보다는 출판사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문학동네에서 나온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같은 책은 아무리 찾아도 전자책이 없어서 종이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원망스러워 속이 쓰리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요.

대성당처럼 전자책이 안 나올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면 나는 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을 모두 띄운 다음 요즘 낸 책이 전자책으로 다시 나오는 데까지 몇 달이 걸렸는지를 확인해 본다. 더 기다릴지 말지는 대체로 여기서 결정된다. 바로 종이책을 사기로 작정했다면 인터넷 서점에 할인쿠폰이 쌓여있는지 알아보고, 쿠폰이 많으면 인터넷 서점에, 없다면 동네 서점에 주문한다.

그런데 출간된지 시간이 지난 책을 찾아볼 경우에는 검토할 사항이 아주 많아지기 시작한다. 일단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 들어가서 그 책이 있나 확인해야 한다. 나는 밀리의 서재를 구독중이라 밀리의 서재에 책이 있다면 거기서 빌리고 끝이다. 하지만 없다면 이제 다른 전자도서관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 서울도서관과 지역도서관 몇 곳을 각각 다른 앱으로 열어서 하나하나 검색해봐야 하는 것이다. 전자도서관을 이용해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해본 사람은 알 텐데, 어째서인지 지역 도서관의 전자도서관이라는 게 교보 앱으로 되는 경우도 있고 알라딘이나 예스24로 되는 경우도 있으며 북큐브 앱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하나의 지역도서관에서 두 가지 앱을 다 쓰는 경우도 있는 데다, 한 회사의 전자도서관 앱도 구판 신판이 나뉘어 있고, 몇몇 큰 지자체 전자도서관은 책마다 동시 대여 숫자가 한정된 일반형과 사람마다 기간별 대여 숫자가 한정된 구독형이 분리되어 별도로 관리되는 것 같다. 이 복잡한 전자도서관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아무튼 이렇게 미로 같은 전자도서관들을 서너곳만 뒤적여도 진이 빠지기 마련이다. 특히 뒤져볼 수 있는 곳을 다 뒤져봤는데도 구하는 책이 없을 때, 그런데 어느 고급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전자도서관에는 있는 것을 봤을 때의 탈력감은 이루 말하기 힘들 지경이다.

전자도서관까지 다 돌고도 전자책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을 구입할 것인지, 아니면 종이책을 빌릴지 고민해야 할 차례다.


돈을 아끼며 책을 보려는 노력은 간혹 쓰라리다


보통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지금 당장 봐야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종이책을 빌리기로 하는 게 합리적이긴 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도 선택지가 셋이나 된다. 반드시 지나는 산책로에 있는 스마트 도서관에 갈 것인가, 약간 가까운 어린이도서관에 갈 것인가, 아니면 약간 먼 구립 도서관에 갈 것인가……. 처음부터 책이 가장 많은 구립 도서관에 가기로 작정하면 품을 더 들일 이유도 없다. 그런데 멀리까지 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스마트 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을 모두 검색해보곤 한다. 그리고 십중팔구 책이 없어서 실망한다. 규모가 작은 도서관은 많이 빌려줄 만한 책부터 들여놓기 마련이니까, 나처럼 이것저것 아무거나 찾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희망을 버리고 산책 삼아 먼 도서관까지 갔다오기로 작정하면 좋을 텐데, 목적을 갖고 멀리 걸어가기란 어째서 이렇게나 힘든 것일까?

책을 빌리러 가는 것에 비해 전자책을 구입하는 것은 간편할 것 같지만, 이게 또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인터넷 쇼핑의 구렁텅이가 함정처럼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리디북스, 알라딘, 예스24를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앱이 가장 잘 갖춰진 것은 예전부터 리디북스였다. 그래서 가급적 리디북스로 통일하고 싶긴 하다. 그런데 다른 서점 앱들도 많이 개선되어 이제 딱히 아쉬운 게 없는 데다, 주기적으로 쿠폰을 받기 좋은 것은 알라딘과 예스24라서 고민 끝에 알라딘에 갈 때가 많다.

다만 알라딘을 이용하기로 작정하고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일단 앱을 열어서 쿠폰을 받고, 진행중인 이벤트가 있으면 참여해서 쿠폰을 더 받는다. 그런 다음에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다시 알라딘에 들어가야 한다. 요즘(2022년 8월)은 구글, 애플의 정책 문제로 전자책 구입을 앱으로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브라우저로 들어갔으면 그만 아니냐고? 앱으로 들어가야만 받을 수 있는 쿠폰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고 맙소사.

심지어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는 지점까지 갔다고 해서 안심할 일도 아니다. 요즘 온라인 쇼핑이 다 그렇듯이 할인 혜택을 누리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다. 나는 책을 많이 사니까 컬처랜드 문화상품권을 사서 충전해놓곤 하는데, 이걸 쓰려면 컬처랜드 앱을 열어야 할 때가 잦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컬처랜드 보안이 점점 엄중해진 탓에 실행이 아주 어렵다. 광고차단용 VPN도 거부하고, 미러링 앱도 거부한다. 성질나서 브라우저로 들어가도 아주 약간 나아질 뿐인데다, 여차하면 무슨 보안을 추가하라고 권해대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결국은 컬처랜드에 충전한 돈을 다 써버리고 북앤라이프 상품권을 쓰기로 작정했는데 이것도 빼어나게 쾌적한 느낌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몇 퍼센트를 할인해준다는 팝카드까지 이용하기 시작한지라 포인트를 쓸때마다 앱을 열어 일회용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복사해서 브라우저에 돌아와 붙여넣은 다음, 잔액을 확인하고 포인트를 얼마 쓸 것인지 입력해야 하는데, 이때 내가 할인된 책값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입력창을 닫고 쓸 돈을 다시 확인한 뒤에 팝카드 포인트를 쓰겠다고 해서 일회용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포인트가 모자란 것을 확인해 다시 충전하러 가게 되면, 돌아왔을 때 브라우저가 리프레시 되어 입력한 정보가 다 날아가 있거나 일회용 아이디와 비번의 유효 시간이 끝나 있기도 하다.

심지어 요즘은 ‘샵백’이라고 해서 자기네 앱을 경유해서 쇼핑을 하면 캐시를 얼마씩 돌려준다는 서비스까지 있는지라 고민할 게 더 늘었는데, 이것까지 하면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아서 포기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오만가지 사항을 고려하며 책을 어디서 빌릴까 말까 어디서 살까 말까, 무슨 포인트를 어떻게 쓸까 머리를 쥐어뜯고 시간을 쓰자면 그야말로 넌더리가 난다. 과정이 순탄치 않으면 20분에서 30분은 아주 우습게 지나간다. 그러면 또 시간에 대한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최저 시급을 생각해도 속이 개운치 않다. 이게 그 정도로 가치 있는 고민이었나 싶은 것이다.

돌이켜 비유를 곁들여 생각해보면 그런 느낌도 든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용산의 상가 안을 몇 걸음만 걸어도 사방에서 뭘 찾느냐, 여기서 보고 가라는 식으로 무수히 많은 상인들의 호객을 듣고 못 들은 척 지나야 했다. 책을 살까 빌릴까 고민하면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더 심각할 지경이다. 상인들이 하는 말이 실제로 솔깃해서 들어봐야 하는 경우라고 할까? 아무튼 책을 빌리러 가는 길도 온갖 복잡한 정책적 사정이 얽혀 있는 듯하고, 사러 가는 길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나서서 자기에게 현금을 맡겨놓든지 트래픽을 올려주면 할인을 해주겠다는 유혹을 늘어놓아 도통 순탄치가 않다.

책 한 권 읽기가 이렇게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자동으로 전자책을 보내주고 약간 할인된 금액을 빼가는 서비스가 나오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망상도 해보는데, 그 정도로 진보한 시스템이 들어서는 것보다는 기후 위기로 종이책 생산이 금지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어쨌거나 ‘광고는 빈자의 세금’이라는 말의 맥락대로 돈이 없는 자는 똑똑한 소비라는 환상 속에 쳐진 자본주의적 함정에 걸려 난리부르스를 출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본작,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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