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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흉터 2부 「흉터」- 3

3-(1)

by jeromeNa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금요일 저녁이었어요.]


K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술 끝나고 집에 갔는데, 그날 밤은 괜찮았어요. 진통제 먹고 잤고.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휴지로 눈을 닦는 소리.


[뭔가 이상했어요. 제 얼굴이... 금이 간 것 같았어요.]

[실제로 금이 간 건가요?]


강윤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피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상처도, 붓기도. 그런데... 거울을 볼 때마다 선이 보였어요. 이마에서 시작해서 눈을 지나 뺨까지. 희미한 선.]

[환각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진짜 보였는데... 사진을 찍어봐도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연구실에서 박재원이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클리닉에 전화하셨어요?]


강윤서가 물었다.


[네. 토요일 아침 아홉 시쯤요. 민정 씨가 받았어요. 원장님이랑 통화했고... 오후에 오라고 하셨어요.]

[몇 시에 가셨어요?]

[두 시요.]


K씨가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잔이 테이블에 내려앉는 소리.


[원장님이 진찰하셨어요. 얼굴을 자세히 보시더니... 아무 문제없다고 하셨어요. 수술은 완벽하게 됐고, 회복도 잘 되고 있다고.]

[선에 대해서는요?]

[말씀드렸죠. 거울 볼 때마다 선이 보인다고. 그런데…]


목소리가 작아졌다.


[원장님이 웃으셨어요.]

[웃었어요?]

[네. 이상한 웃음이었어요.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한.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시작됐구나"라고.]

[시작?]

[네. 무슨 뜻인지 물어봤는데, 대답 안 하시고... 그냥 "괜찮다"고만하셨어요. "곧 사라질 거다"라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요?]


강윤서가 물었다.


[집에 갔어요. 오후 네 시쯤. 그런데 저녁에... 여섯 시쯤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원장님이요?]

[네.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떨리고... 급하고. "지금 올 수 있냐"고 물으셨어요.]

[이유는요?]

[말씀 안 하셨어요. 그냥 "보여줄 게 있다"고만. "혼자 와야 한다"고.]


K씨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무서웠어요.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어요. 제 얼굴에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래서 갔어요.]

[몇 시에 도착하셨어요?]


강윤서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열 시 조금 전이요. 주차장에 차 대고, 클리닉으로 갔어요. 9층. 원장실.]


연구실에서 모두가 화이트보드를 봤다. 타임라인.


21:58 후드 인물 주차장 입장.


맞았다.


[문이 열려 있었어요. 노크했는데 대답이 없어서... 들어갔어요.]


K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원장님이...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책상에 엎드려서. 처음엔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원장님" 하고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가까이 갔어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손을 흔들어봤어요. 어깨를… 차가웠어요. 손이 차가웠어요.]


흐느끼는 소리.

강윤서가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죽어 계셨어요.]


K씨가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미... 죽어 계셨어요.]


연구실이 조용했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멈춘 것 같았다.


[어떻게 하셨어요?]


강윤서가 조용히 물었다.


[당황해서...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119에 전화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무서웠어요. 제가 여기 있으면... 의심받을 것 같았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한참 그냥 있었어요. 원장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얼마나요?]

[한 시간 반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시간 감각이 없었어요.]


연구실에서 현진이 계산했다. 22:00 발견, 한 시간 반이면 23:30쯤.


[조각은 봤어요? 비너스 두상.]


강윤서가 물었다.


잠시 침묵.


[봤어요.]

[어땠어요?]

[금이 가 있었어요.]


K씨가 조용히 말했다.


[제 얼굴처럼. 똑같은 선이. 이마에서 눈을 지나 뺨까지.]


연구실에서 이수진이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누가 그었을까요?]


강윤서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제가 갔을 때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원장님이 직접?]

[아마도…]


K씨가 말했다.


[책상 위에 메스가 하나 있었어요. 피는 안 묻었는데... 대리석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어요.]

[건드렸어요?]

[아니요. 그냥 봤어요.]


카페 배경음이 들렸다. 커피 머신, 다른 손님들의 웃음소리.


[왜 신고 안 하셨어요?]


강윤서가 물었다. 목소리에 비난은 없었다. 그냥 궁금한 듯.


[무서웠어요.]


K씨가 울먹였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잖아요. 경찰이 저를 의심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른 환자들한테 알려지면…]

[다른 환자들?]

[네. "키테라의 딸들".]


K씨가 그 이름을 말했다.

연구실에서 로시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바퀴가 나무 마루를 구르는 소리.


[그게 뭔가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강윤서가 물었다.


[환자들 모임이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 원장님한테 수술받은 사람들.]

[많아요?]

[스물여덟 명이요. 저랑 Y씨 빼고.]

[왜 가입 안 하셨어요?]

[이상해서요.]


K씨가 말했다.


[처음엔 그냥 환자 커뮤니티인 줄 알았어요. 수술 후기 공유하고, 관리 팁 나누고. 그런데 점점... 이상해졌어요.]

[어떻게요?]

[종교처럼 됐어요.]


K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원장님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비너스를 "진정한 자아"라고 부르고.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쓰고. "완전함을 향한 여정", "거울 속의 자매들", "선택받은 축복"... 그런 말들.]

[무섭네요.]


강윤서가 말했다.


[네. 그래서 안 들어갔어요. Y씨도 마찬가지예요. 둘이 가끔 따로 연락하거든요. "우리만 정상인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잠시 침묵.


[그 그룹 사람들이…]


K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원장님을 죽였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어요. 저는 그룹에 안 들어갔으니까. 배신자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요.]

[이해해요.]


강윤서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열한 시 반쯤, 주차장에서 나가셨죠?]

[어떻게…]

[CCTV 봤어요. 손에 봉투 들고 계셨던데, 그게 뭐였어요?]


긴 침묵.


[원장님 책상 서랍에 있었어요.]


K씨가 작게 말했다.


[제 이름이 적혀 있는 봉투. 호기심에... 열어봤어요.]

[뭐가 들어 있었어요?]

[편지요. 그리고... 조각 파편 하나.]


연구실에서 박재원이 펜을 탁 놓았다.


[조각 파편?]


강윤서가 물었다.


[네. 작은 대리석 조각. 비너스 눈 부분인 것 같았어요. 균열에서 떨어진…]

[편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어요?]

[완벽함은 거짓이다. 균열이 진실이다. 너만은 자유로워라.]


K씨가 편지 내용을 외웠다.


[원장님 글씨였어요.]


침묵이 흘렀다.

길었다.


[그 봉투는 어디 있어요?]


강윤서가 물었다.


[집에 있어요. 숨겨뒀어요.]

[경찰한테 제출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 문제 되나요?]


K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고 안 한 게, 증거 가져온 게…]

[일단은 괜찮아요.]


강윤서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희는 보험 조사니까 경찰 업무는 아니에요. 하지만 K씨, 진실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숨기면 더 복잡해져요.]

[어떻게 하면 되죠?]


K씨가 물었다.


[일단 그 봉투, 저한테 주실 수 있어요? 제가 보험사 통해서 경찰한테 전달할게요. K씨 이름은 최대한 보호하고.]

[정말요?]

[네. 약속해요.]


잠시 침묵.


[알겠어요. 드릴게요.]


K씨가 말했다.


[언제 드리면 돼요?]

[내일 어때요? 편한 곳에서 만나요.]

[네... 감사해요.]


강윤서가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는 소리. 테이블 위에 놓는 소리.


[제 번호예요. 내일 오전에 연락 주세요. 시간 맞춰서 만나요.]

[네.]


의자 끄는 소리. 일어서는 소리.


[K씨.]


강윤서가 말했다.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 원장님 죽음은 K씨 잘못이 아니에요. 이미 돌아가신 분을 발견한 거잖아요.]

[...네.]


K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키테라의 딸들" 조심하세요. 혹시 연락 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알겠어요.]


발소리. 카페 문 여는 소리. 벨이 땡그랑 울렸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K씨가 나간 것이다.

강윤서가 잠시 앉아 있었다. 라떼 마시는 소리. 잔이 테이블에 내려앉는 소리.


[들었죠?]


강윤서가 작게 말했다.


[네. 잘 들었어요.]


현진이 노트북 마이크에 대고 답했다.


[지금 돌아갈게요.]


발소리. 계산하는 소리. "감사합니다." 문 여는 소리. 벨. 밖으로 나갔다.

차 시동 거는 소리. 엔진음. 도로 소음.


연구실에서 네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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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