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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흉터 3부 「얼굴」 - 2

완결

by jeromeNa
이야기 속 단서, 문헌, 유물, 신화와 전설의 인용은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 사이를 잇는 인과와 해석, 그리고 모든 사건과 사건과 관련된 역사, 단체, 인물은 허구입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금요일 오후, 강윤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 '김성훈'이라는 이름이 떴다.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 네, 김 차장님.

[대표님, 경찰에서 연락 왔어요.]


김성훈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S씨를 찾고 있대요. 토요일 밤 클리닉에 있었던 게 CCTV로 확인됐다고. 다른 층 복도 카메라에 잡혔나 봐요.]


강윤서가 펜을 집었다.


- 연락은 됐대요?

[아니요. 행방불명이랍니다. 일주일 전부터 집에도 안 들어가고, 연락도 안 되고.]

- 그룹 멤버들은요?

[다들 모른다고만 한대요. 경찰이 수배 준비 중입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연구실이 조용했다. 박재원이 펜을 탁 놓았다.


- 도망친 거네요.


이수진이 창밖을 봤다.


- 왜 도망쳤을까요? 2차 균열만 그었다면 큰 죄는 아닌데...

- 다른 걸 숨기는 거겠죠.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원장 죽음과 관련된.


강윤서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마커로 적었다.


S씨 상황:
행방불명 (일주일)
경찰 수배 예정
그룹 멤버들 침묵


- 우리 일은 끝났어요.


강윤서가 마커를 내려놓았다.


- 나머지는 경찰 몫이에요.


***


다음 주 화요일, 제로화재로부터 이메일로 공식 통지서가 왔다. 강윤서가 소리 내어 읽었다.


보험금 지급 거부 통지서

피보험자: 정미선 원장 (사망) 보험 목적물: 비너스 두상 (헬레니즘 시대 추정) 보험가액: 40억 원
조사 결과: 아르테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라 피보험자 본인의 고의적 훼손 행위 확인됨.
근거:
유서 성격의 편지 발견
조각 파편 물증
증인 증언

결정: 보험 약관 제15조 3항(고의적 훼손)에 따라 보험금 지급 거부


- 예상대로네요.


박재원이 말했다.

강윤서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김성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통지서 받았어요.

[네. 유족 측에도 전달했어요.]

- 유족 반응은요?

[예상하셨던 것 같아요. 원장 편지 내용 알고 계셨거든요. 조용히 받아들이셨어요.]


잠시 침묵.


[그런데, 대표님.]


김성훈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유족 측에서 의외의 결정을 했어요.]

- 뭔데요?

[복원도 안 하고, 판매도 안 하겠대요. 균열 있는 그대로 전시하겠다고. 클리닉 로비에.]


박재원의 펜이 멈췄다.


- 전시요?

[네. "완벽함의 균열"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달부터.]


강윤서가 펜으로 메모했다.


- 흥미로운 결정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보험금도 못 받는데.]

- 유족이 의도를 이해한 거겠죠.


강윤서가 조용히 말했다.


- 원장이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를.


***


한 달이 지났다.

3월 중순, 강윤서에게서 문자가 왔다. 단체 문자였다.


> 클리닉 전시 개막했대요. 내일 저녁 6시. 다들 시간 되면 가볼까요?


다음날 저녁, 다섯 명이 클리닉 로비에 모였다. 사람들이 많았다.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로비가 거의 가득 찼다.

입구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완벽함의 균열
The Scar of Perfection

비너스 두상 특별 전시
2025. 3. 15 - 5. 15


아래 작은 글씨로 설명이 있었다.


이 조각은 2025년 2월, 아프로디테 클리닉 원장 정미선의 유작입니다.
원장은 스스로 이 조각에 균열을 그었습니다.
완벽함이 거짓임을, 균열이 진실임을 보여주기 위해.


로비 중앙에 비너스 두상이 있었다. 조명이 위에서 비췄다. 균열이 선명했다. 이마에서 눈을 지나 뺨까지. 황금비율의 선.

사람들이 조각 주변을 천천히 돌며 봤다. 사진을 찍었다. 속삭였다.


- 생각보다 아름답네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 균열이 있는데도.

- 균열이 있어서.

박재원이 말을 이었다.


로비 한쪽에 모니터가 있었다. SNS 피드가 실시간으로 흘러갔다. 해시태그 #완벽함의균열. 게시물이 계속 올라왔다.


> 완벽보다 진실이 아름답다 상처가 예술이 되는 순간 비너스는 균열과 함께 완성되었다


로시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 오, 기사 났어요. OO일보, OOO, OO...


화면을 돌렸다.


"균열 있는 비너스, 완벽함에 도전하다"


기사를 클릭해 읽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뱅크시 이후 가장 충격적인 작품 파괴"로 평가하고 있다. 2018년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가 경매장에서 파쇄되며 오히려 가치가 상승한 것처럼, 균열 있는 비너스 두상도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는 분석이다.

미술평론가 김OO는 "원장의 자살과 조각 훼손은 하나의 퍼포먼스"라며 "완벽 중독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평했다.

전시 첫 주 방문객은 2만 명을 넘어섰다. 온라인에서는 #완벽함의균열 해시태그가 10만 건을 돌파했다.


- 가치가 올라갔어요.


로시가 다른 기사를 열었다.


미술품 감정사들은 현재 이 조각의 가치를 60억 원대로 추정한다. 원래 보험가 40억에서 50% 상승한 수치다. "균열이 새로운 서사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강윤서가 조각을 다시 봤다. 균열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 역설이네요.


강윤서가 조용히 말했다.


- 파괴가 가치를 높이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빙글빙글.


- 원장이 의도한 걸까요?

- 모르죠.

강윤서가 팔짱을 꼈다.


- 하지만 메시지는 전달됐어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성형 환자들처럼 보이는. 조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표정이 복잡했다.


한 여자가 조각 앞에서 울었다. 조용히. 눈물이 뺨을 따라 흘렀다.


- 저 사람...


이수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30명 중 한 명 아닐까요?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얼굴은 비슷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서 있었다. 사람들을 봤다. 조각을 봤다. 균열을.


- 돌아갈까요?


강윤서가 말했다.

밖으로 나왔다. 3월의 저녁 공기가 차갑지 않았다. 봄이 오고 있었다.


***


며칠 후, 연구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했다.

모든 파일을 아카이브에 저장했다. CCTV 영상, 복원 이미지, 타임라인, 증언 기록, 보고서. 암호화된 폴더에 넣었다.

강윤서가 케이스를 닫았다.


- 비너스 건은 여기까지예요.


박재원이 노트를 덮었다.


- S씨는요?

- 아직 못 잡았대요.

강윤서가 말했다.


- 경찰이 계속 찾고 있지만.


모니터를 켰다. 뉴스가 나왔다. 비너스 전시 관련.


"완벽함의 균열" 전시, 한 달 만에 관람객 10만 명 돌파.
해외 미술관에서도 전시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이수진이 창밖을 봤다.


- 원장이 봤으면...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현진은 빈 화면을 봤다. 케이스는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S씨는 어디로 갔을까. 왜 도망쳤을까. 정말 2차 균열을 그었을까.

답은 없었다.


강윤서가 창문을 열었다. 봄바람이 들어왔다.


- 이번 주도 수고했어요.


박재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을 봤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받았다.


- 네, 실장님.


통화가 시작되었다. 박재원이 펜을 돌리던 손이 멈췄다. 표정이 굳었다.


- ...로마 양식이요?


침묵. 듣고 있었다.


- 한반도에서요?


다른 팀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 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출동 가능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박재원이 펜을 탁 놓았다.


- 뭐예요?


강윤서가 물었다.


-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서 제단이 나왔대요. 급하대요.

- 제단?

- 로마 마르스 신전 양식이래요. 근데 한반도에.


박재원이 고개를 저었다.


- 말이 안 돼요.


이수진이 창밖을 봤다.


- 로마가 한반도까지 왔을 리 없는데요.

- 그래서 황당한 거야..


박재원이 강윤서를 보면서 말했다.


- 개발업체랑 국방부가 충돌하고 있대요. 긴급 평가 요청이에요.


강윤서가 시계를 봤다.


- 내일 아침 여덟 시 출발하죠.

- 네.


모두가 대답했다.

불을 껐다. 연구실이 어두워졌다.

계단을 내려갔다. 딱, 딱, 딱. 다섯 사람의 발소리.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렸다.

밖으로 나왔다. 북촌 골목에 가로등이 켜졌다.


- 내일 봐요.

- 네.


각자 방향을 달리했다.

현진은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비너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균열 있는. 빛을 받아 반짝이던.


완벽함은 거짓이다. 균열이 진실이다.

원장의 마지막 메시지.


집에 도착해서 뉴스를 켰다. 비너스 전시 관련 보도가 나왔다. 큐레이터 인터뷰.


"이 균열은 실패가 아닙니다. 완성입니다.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불완전함에 있습니다. 비너스는 이제야 진짜 여신이 되었습니다."


화면을 껐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밤. 불빛들. 수많은 창문.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거울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완벽을 꿈꾸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균열이 숨겨져 있을까.


답은 모른다.

하지만 내일이면 새로운 케이스가 시작된다.


용산. 로마 제단. 한반도에. 말이 안 된다.

박재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뉴스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비너스 균열 조각, OO 박물관 전시 확정"


클릭하지 않았다. 그냥 화면을 껐다.

내일이면 또 다른 신화를 만난다.


또 다른 비밀.


***


"그녀가 바다 거품에서 일어서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하늘이 갈라지고 대지가 흔들렸다." — 『호메로스 찬가』 제6번 「아프로디테 찬가」, 기원전 7세기


그리고 하늘이 갈라진 자리에, 균열이 남았다.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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