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딸바봉을 보며 느낀 점
배스킨라빈스의 신제품 "아빠는 딸바봉"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출시 3주 만에 싱글레귤러 컵 기준 100만 개를 넘게 판매했다고 한다. 출시하자마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종류 가운데 당당히 월 판매량 2위... 그럼 1위는? 역시, 엄마는 외계인이다. 그렇다. 아빠는 2등이다. 아무리 딸바보라고 해도..
배스킨라빈스의 신제품 "아빠는 딸바봉" 네이밍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됐다. 딸기와 바닐라 베이스라 딸바봉이 아니면, 대체 어떤 신제품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잠시... 투표 결과를 보니, 꼴찌가 아빠는 내친구다. 씁쓸함을 뒤로한 채, "아빠는 딸바봉"을 딸과 함께 먹어보았다. 딸은 워낙 딸기를 좋아해서, 아이스크림도 딸기맛을 선호한다. 느낌상 "아빠는 딸바봉"이건 뭐건, 그런 건 관심 없는 것 같고, 여하튼 딸기맛이 나서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자상한 아빠 이미지를 어필하고자 딸에게 아이스크림 이름을 알려주었다.
오늘은 '아빠는 딸바봉'을 사 왔지~ 짜잔~
아빠, 담엔 꼭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사와~
역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은 내 입맛에 너무 달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딸바봉은 괜찮은 네이밍인 것 같다. 왜냐면, '딸바봉'이 없었다면, 그냥 바봉이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바봉은 뭔가 단어의 조합이 이질감이 드는데 반해 아빠와 바봉은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 있다. 그런 면에서 바봉 앞에 딸이 붙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작년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운동회에 불려 갔던 적이 있다. 녹슨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공로로, 치약이며, 수세미며 뭐 그런 것들을 상품으로 받았던 것 같다. 딸이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아빤 바봉이 아냐, 이것 보라구!"
상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운동장 구석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당시 유행했던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였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사만 보고도 리듬을 타며 흥얼거릴 노래일 텐데, 더구나 딸들도 가끔 부르던 노래였는데, 운동장 구석에서 꽤 큼지막하게 들려오던 "사랑을 했다"의 가사는 원래의 가사가 아니었다.
사랑을 했다~ 임신을 했다~
쿠궁, 다행히,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놓치진 않았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태연하게 운동장을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약간의 충격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선명하게 그 장면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래.. 어쨌든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날 이후, 나는 딸들에게 차에서 어떤 음악을 틀어주어야 하는 가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어려운 문제였다. 악동뮤지션을 틀어줄 것이냐 아니면 볼 빨간 사춘기를 틀어줄 것이냐... 아직 좀 이르다면, 바나나차차는 어떨까? 그런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고민은 싱겁게 끝났다. 딸들의 취향은 트와이스였다. 잇지는 어때? 요새 트와이스보다 인기 좋던데?
아빠, 하나만 선택해 '트와이스 or 트와이스'
딸이 팬시한 취향이라는 생각도 잠시, 남자 아이돌 아닌 게 어디야라는 마음으로, 나도 트와이스에 뒤늦게 입덕 했다. 멤버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매일 묻다시피 해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서, 트와이스 댄스도 한 번 배워보려고 한다. 살며시 딸에게 같이 배우러 가자고 했는데, 딸은 알듯 모를듯하게 웃기만 했다. 딸이 1:1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과연 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