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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Apr 23. 2024

47일

어둠이 너무 아름다워요.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햇빛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들이
단숨에 사라집니다. 도로 위 차들의 불빛과, 꿋꿋하게 자리를 밝히고 있는 건물들의 네온사인,

그리고 여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켜두어
건물 안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빛들이 세상을 군데군데 밝히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에 휘황찬란하게 떳떳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잠에 드는 듯 해요.


그런데요, 문득 어제 저녁.

어둑해진 거리를 걸으며 당신을 떠올리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봤어요.

언제 그리도 무성해졌지 싶은 든든한 나무를요.


한낮, 햇빛에 반짝이던 나뭇잎들은 모두 숨죽이고 있었고요, 나무의 꼭대기, 서로 기대있는 가로등 불빛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봤어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은 모를거예요.

모든 어둠 속에는 늘 그 어둠을 와락 껴안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에 갇혀, 매일을 눈물로 보내고 있을때 당신이 나에게 말했죠. 지금의 시간이 나를 더 빛내줄거라고.
맞아요. 당신이 옳았어요. 모든 순간이 정말 그랬어요.

나 좀 보라며 햇빛이 조금이라도 닿는 모든 것들이 각자를 뽐내는 낮보다도, 온 세상이 묵념하는 어두운 밤에 소소히 빛나는 작은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봤어요.


그래서인지, 여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한 당신의 빈자리엔 자그맣고 하얗게 새어들어오는 당신과의 추억들이

작게나마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이 떠오르는 모든 순간에 매일 되뇌이고 있어요.


어둠은 너무 아름다워요.


많은 것들이 묵묵히 잠든 순간에도, 결코 보이지 않는 어둠에 갇혀있는 듯 해도 그 속에 늘 아름다운 것들이, 사랑이 숨죽인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걸
꼭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의 마음이 온통 어둠이어도,

내가 늘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알아주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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