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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12. 2021

멍뭉이 나리의 스카이라운지


사람마다 유독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식구대로 둘러 앉는 식탁에서도 가운데 자리, 끝자리, 왼쪽 오른쪽 식구마다 늘 즐겨 앉는 자리가 따로 있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에게도 우리 집에서 유독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나리의 스카이라운지라 부른다.


그곳은 다름 아닌 현관 앞 작은 창문과 마주한 자리다.

나리는 날씨가 좋아 정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또 주방에서 맛난 냄새가 솔솔 풍겨올 때에도 앞발에 턱 고이고 자빠져서는 구경하며 뭐 하나 주지 않으려나 하고 있다가도 어느새 스카이라운지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한다.

그런 나리가 궁금해져서 어느 날 나는 나리의 스카이라운지에 쪼그려 앉아 함께 구경을 했다.



우리 집 현관문은 나무로 되어있다 이 갈색의 나무문 을 가로지르는 중앙에는 다섯 개의 작은 창문이 나있다.

그 창문을 통해 밖에서도 우리 집 안이 너무 훤히 들여다 보여서 위쪽으로 난 창문들은 대나무 무늬가 그려져 있는 창문용 커버지 공책에 스티커 붙이듯 붙여 두었다.

그리고 밑으로 난 두 개의 창문 즉 나리의 스카이라운지에는 약간 어두운 색이 들어간 커버지를 붙였다.

연예인들의 벤에 썬팅을 하듯이....

그덕분에 밖에서는 어두워서 들여다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인다.


지옆에 살며시 쪼그려 앉는 나를 "왜 그래유? 뭔 일 있슈?" 하는 눈으로 나리가 쳐다보았지만 나는 나리가 알아듣던 말던...

"나리 하던 거 마저 해 엄마도 구경 좀 해 보자!" 하며 방바닥 걸레질할 때 포즈로 쪼그려 앉아 나리 옆에서 목을 쭉 뺀 체 밖을 내다보았다.

이 작은 창문을 통해 생각 보다 많은 것이 보였다.


고개의 각도를 조금 옆으로 틀어 올리니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도 풀밭의 이름 모를 야생화 들도... 산책을 나온 강아지와 사람도.... 보인다.

자전거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유모차 밀고 뛰어가는 엄마와.... 비를 피해 뛰는 가방 멘 학생도.....

어느새 빗길에 쌓인 물을 가르며 지나가는 버스도...

밖은 시시 각각 다른 모습을 생생히 그려 내고 있었다.

나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넋을 빼고 구경을 하던 나는 웃음이 픽 하고 터졌다.

나 지금 뭐 하니? 싶어서 말이다.


살다 보면 마음이 착잡한 날이 있다.

그게 그리 먹고 살일 난 것처럼 중요한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굉장 치도 않은 작디작은 일이 건만..

그 별것 아닌 일이 마치 생선 먹다 작은 가시가 목에 걸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셔도 내려갈 듯 내려갈 듯 안 내려가고 있을 때의 답답함 을 자아 내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그 별거 아닌 일이 가열차게 뜯어먹던 옥수수가 잇사이에 끼여서 이렇게 저렇게 빼내려 해도 빠지지 않을 때의 찝찝함을 새겨 내기도 한다.


어쨌든 찌지구리 한일로 마음이 좋지 않은 날...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말없이 바깥구경을 하던 짧은 시간을 통해 비바람 치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소리치며 쏟아지던 소나기 거치고 반짝하니 해 나오는 순간처럼.....


나리는 애써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옆에 쪼그려 앉은 내게 기대 거나 밖에서 나는 소리에 두 귀를 쫑긋 거리며 지가 옆에 있음을 알려 주었을 뿐...

이제 나리의 스카이라운지는 내게도 예약된 자리다.

어쩌다 기분이 처질 때면 보드라운 나리를 쓰다듬으며 쪼그려 앉아 그때마다 장면이 바뀌듯 달라지는 바깥구경을 할 테다. 그러면 언제 그랬나 싶게 마음이 다시 담담해 질게다.

나리는 그초롱초롱 개똑똑해 뵈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 할거다.

"내일은 분명 반짝이는 일상이 다시 시작 될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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