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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27. 2021

개념 없는 견주를 상대하는 법

나리의 미모를 질투하니? 숏다리!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이제 곧 가을이 오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 같은 청명한 아침이었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언제나와 처럼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 먹일 갗구워내 아직 따끈한 빵을 사고 하얀 우유 거품 앉은 카푸치노 나눠 마시며 손에 전해 지는 이 온기가 반가운 것을 보니 제법 날씨가 선선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온한 아침을 거닐고 있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길은 앞쪽에 전차도 다니고 버스도 다니는 4차선 대로변을 가까이 두고 있는 우리 동네 공대 캠퍼스 근처였다.

초록이 무성한 잔디밭에서 나리는 킁킁 냄새를 맡으며 걷다가 마치 내가 너무 피곤한 날 따뜻한 물로 씻고 따끈한 차 한 모금 마시고 포근한 침대에 누웠을 때 같은 나른하고 행복한 몸짓으로 풀밭에 자빠 져서 일어나지 않고 떼굴떼굴 했다

그럴 때 나리의 표정은 마치 "앗싸 좋다 견생 뭐 있어?" 하는 것 같다.


그 폭신한 풀밭이 한없이 포근했던지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우리 나리 곁에

어디선가 까만 털실뭉치 같은 작은 강아지가 데구루루 굴러오듯 가까이 오고 있었다. 검은색과 어두운 밤색이 섞인 작은 닥스훈트였다.

그 닥스훈트는 리드 줄도 없고 옆에 견주도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또 길 잃어버린 아이인가? 하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요 조그만 아이가 나리 근처에 굳이 와서는 다짜고짜 미친 듯이 짖어 대는 게 아닌가?

자빠져 있던 나리가 뭘 어쨌는데?



그 닥스훈트는 가만히 있는 나리 옆에 쪼르르 뛰어 와서는 미친 듯이 짖어 댔다. 그 짧은 앞발을 공중돌기 하듯 마구 들어 올리며 얼마나 시끄럽게 짖어 대던지 길가던 사람들을 한 번씩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심한 짖음에 혹시나 나리가 자극받을까 싶어 나리를 옆쪽으로 가게 하면 어느새 따라와 짖고 방향 틀면 또 따라와 짖어 댔다.

그때까지 견주는 도대체 어디가 있는 건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 닥스훈트의 지랄발광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던 나리는 '왕' 하고 한번 크게 짖었다.

그랬더니 까맣고 짧은 다리를 허공에 그어대며 난리를 치던 닥스훈트가 이번엔 깨앵깨앵 하며 마치 한대 걷어 차이 기라도 한 것처럼 깽깽거렸다.

나리와 그 지랄이 사이에는 나와 남편 이 서있어서 못해도 1미터 간격을 두고 있었다. 나리도 우리도 그 닥스훈트의 털끝 하나 스치지 않았고 닿지 않을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깽깽 소리 때문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갔다. 소리 만으로 모르는 사람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헐...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보다 보다  연기하는 강아지를 만나 보기는 처음이다. 연기로는 깐느 가서 레드카펫 밟게 생겼다.


이건 사람으로 치자면 이런 상황인 거다. 길가던 여자 사람 1에게 낯선 여자 사람 2가  갑자기 다가와 "야! 야!"하고 소리를 질러서 너무 놀라 뭐지? 하고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여자 사람 2가 두 눈을 부라리며 "뭘 봐 엉, 왜 봐 이뇬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패악을 부렸다. 어이없고 기가 막힌 여자 사람  1은 정색을 하고 "어머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난데없이 여자 사람 2 가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 치네 아이고 나 죽어 "하며 혼자 생쇼를 하는 미췬 연기력을 시전 했다.

뭐 대략 이런 전개가 아녔을까? 싶다.


그 닥스훈트가 환장할 것 같은 소리로 깽깽거리자 나무 뒤에 숨어? 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견주가 그제야 모습을 드러 냈다.

나는 애초에 리드 줄도 없이 길거리에 강아지 혼자 돌아다니게 두고 남의 강아지에게 와서 짖어 대며 시비를 터는 대도 지켜보기만 했던 견주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오해를 할까 싶어 "우리 강아지는 그 집 강아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머리를 하나로 묶고 갈색 카디건을 걸치고 한 손에 까만 리드 줄을 쥐고 있던 견주는 "알아요 미안해요 얘가 먼저 시작했죠!"라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그 작은 닥스훈트를 움켜쥐고 흔들어 대면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댔다

"너 미쳤어? 도대체 왜 그래? 엉? 뭐가 문제야?"

그 닥스훈트의 연기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되려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소리치던 견주는 그때까지 리드 줄을 매지 않고 있었고 지켜보고 있던 우리를 의식해서였던지 더 이상 강아지를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치 원망스럽다는 듯한 어조로 "얘가 쟤를 싫어해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나리를 가리켰다.

그 말인즉슨 그 닥스훈트가 가만히 있는 나리가 그냥 싫어서 시비를 걸고 깽깽거렸다는 이야기다.

아니 왜? 나리의 미모가 질투 났니? 숏다리? 그래도 그렇지 왜?

나도 개인적으로 이쁜 것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만 그런다고 길가다 시비를 걸어도 된다면 송혜교와 김태희는 어디 무서워  밖에 나가겠니?

이게 말인가 막걸리 인가?


나는 자해공갈단 같은 강아지와 그못지 않게 개념이 달나라로 가출한 것 같아 보이는 견주에게 손목에 팔찌처럼 걸고 있는 그놈의 리드 줄 좀 얼른 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 경우 '여기 차 다니는 길인데 리드 줄 매셔야죠!' 라고 친절히 이야기한다고 '네 그래야죠 어제밤 부터 그럴려고 했어요!' 하고 고분고분 들어 먹을 확률은 낮다.


한국에서 강아지 들에 대한 모범 사례들을 이야기할 때 독일의 예를 드는 것을 종종 보고는 한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이라고 모두 펫티켓 만렙은 아니다. 독일은 강아지와 함께한 지 우리보다 오래되었고 사회 전반 적으로 반려견에 관한 시스템이 잘 자리 잡았을 뿐이지 개인을 보았을 때 펫티켓이고 나발이고 개념이고 뭐시고 없는 사람들 여기도 많다.

그런데 이런 막가파 독일 사람을 상대할 때 직빵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Ordnungsamt 독일의 단속청을 들먹이는 것이다.

독일은 주마다 도시마다 강아지 관청이 따로 있고 그곳에서 세금과 여러 가지 강아지 법들을 관리 단속 하고 있다.

종종 그 오드눙스암트 단속청에서 단속반들이 다니면서 공원, 시내 등의 공공장소에서 강아지 리드 줄을 매지 않거나 놀이터 등 강아지 출입이 금지된곳에 들어가 있다거나 강아지 변을 치우지 않는 등의 법규 들을 지키지 않은 견주들을 적발해 벌금을 먹인다.

예를 들어 큰길에서 그 닥스훈트 견주처럼 강아지를 리드 줄도 매지 않은 체 돌아다니다 적발되면 도시마다 차이가 있으나 보통 50유로 에서 80유로 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헤센주의 법 조항에 의하면 강아지에 관한 법규 들을 어길 시 최고 5천 유로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뒤셀도르프 같은 도시에서는 리드줄 매지 않은 견주에게 100유로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다.

그러니 저렇게 무개념의 독일 견주에게 리드 줄을 매게 하는 방법은 오드눙스암트를 들먹이는 방법이제대로 한방인 거다.


나는 그때까지도 한 손에 검은 리드 줄을 감아 들고 강아지에게 매지 않고 있는 견주에게...

무언가 너한테만 중요한 것을 알려 준다고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앞뒤를 돌아보며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근데요,어제 오드눙스암트 에서 나와서 리드 줄 없는 강아지 벌금 딱지 주던데요 조기 앞길에서"

그랬더니 그 닥스훈트의 견주는 여적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게 빛의 속도로 강아지 리드 줄을 매며 "아 진짜요? 고마워요" 했다.

제까닥이다. 역시나 오드눙스암트의 약발은 지대로 였다.

나는 "그럼요 어제 봤다니까요 오드눙스암트, 줄 단단히 매고 다니세요!"

라며 돌아 섰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앞길에서 리드줄을 충실히 매고 다닐것이다.

나는 뒤돌아 걸으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체 들어도 이해 못할 한국말로 중얼 거렸다.

"뻥이지 이년아!,오드눙스암트 에서 나오긴 했지 열라리 주차 단속 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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