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Jun 19. 2023

강아지와 산책하다 부부싸움이 났다.

독일 주택가의 주말 아침 산책


독일의 한여름


독일의 여름은 새벽 5시면 동이 트기 시작하고 6시면 밖은 이미 환하다.

거기에 새들의 지저김은 이미 집 앞에 5일장이 서고도 남았다.

어찌나 지지배배 떠들어 쌌는지 그 덕분에 알람 없이도 자동으로 6시면 눈이 떠진다.


또 저녁은 어떠한가 9시가 넘도록 해가 지질 않는다.

마치 겨우내 햇빛 귀했던 게 미안해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해가 떠 있는 시간은 길고

한낮의 햇빛은 강렬하다 못해 따갑다.


거기다 몇 주째 비가 오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도 비가 한두 방울 찔끔 오는 척하더니 바로 쨍해버리고 이러다 가뭄 들겠네 싶게 비가 안 오고 있다.

이번주는 천둥번개 동반한 비도 오고 들쑥날쑥할 거라고 벌써부터 일기 예보에서 난리 들이기는 하는데...

좌우지당간 살다 살다 독일에서 비를 기다리기고 있다 내가..


그렇게 하루종일? 해가 길게 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조금 늦잠을 자볼까? 해도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늘 눈뜨는 시간에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난 김에 남편과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빵가게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제가 제일루 좋아하는 길 중에 하나랍니다

은혼식이 지났어도 부부싸움을 한다.


요즘 한창 근육 키우는데 관심이 많은 막내도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에 합류해서

아침은 건너뛰는 날이 대부분인데 산책 나간 김에 카푸치노도 테이크 아웃 할 겸

몇 가지 빵도 살 겸 윗동네 빵가게를 들리기로 했다.

이번 산책로는 다른 주말과는 다르게 방향 바꿔서 다른 편 쪽에 있는 빵가게가 있는 길로 산책 노선을 잡았다.

한낮의 더위에 비해 이른 아침은 선선하니 상쾌하다. 간간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새소리 외에 독일 주말 이른 아침은 길에 다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적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다.


멍뭉이 나리는 평소 와는 다른 길에 흩어진 다른 강아지들의 흔적과 고슴도치, 다람쥐들의 흔적을 좇아 한없이 킁킁 거리며 신나 했다.

무슨 빵을 사 올까부터 일상의 잡다구리 한 대화를 하며 오밀조밀한 동네 골목을 누볐다.

남의 집 정원도 염탐하며 아 저거 정말 굿아이디어네 우리 정원 어디쯤에 써먹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아마도 남편이 새로 생긴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쯤이었던 것 같다.

남편 뒤에서 쫄랑 거리며 오고 있던 나리가 어느새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 먹고

있는 게 포착이 되었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 나리 뭐 먹어!"라고 외쳤고 남편은 쥐고 있던 리드줄을 빠르게 당겼다.

그리고 나리 입에서 누가 먹다 버렸는지 모르는 빵조가리를 빼서 버렸다.

나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으나 분명 삼분의 일은 이미 삼켰다. 쉣뜨!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독일의 주택가 구석구석에 다니다 보면 길바닥에서 생각보다 정말 많은 쓰레기를

만나게 된다.

마시다 버린 맥주병에 먹다 버린 빵조가리 들은 자주 보는 것이고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했었는지 어느 때는 양념 뭍은 파스타 들도 굴러 다닌다

수시로 환경미화원 님네들이 쓸고 닦고 하면 뭐 하나.. 쓰레기통이 옆에 버젓이 있어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당해낼 제간은 없다.

빵이 먹기 싫다거나 못 먹을 지경이 되었다면 많고 많은 쓰레기 통에 버리고 가면 되지 왜? 길에 그냥 던져 버리느냐 말이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잔디밭 위에  라는 껍질 벗겨진  자빠져 있는 독일 빵들 특히나  안에 소시지나 살라미가 들어가 있는 것들은 나리에게 그야말로 로또 .

이미 먹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언제 버려진 것인지도 모르는 것을 먹고 탈이라도 날까 싶어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언젠가 한번 무언가 잘못 주워 먹고 위경련이 일어나 동물병원 뛰어가고 난리도 아녔다

그때 식겁했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그래서 나는 나리가 뭘 또 주워 먹을까 봐 산책할 때 눈에 레이저를 켤 때가 많다.


어쨌든 길에 쓰레기를 아무 생각 없이 버리고 가는 개념 없는 인간들도 문제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다가 강아지가 뭔가를 주워 먹었다면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견주들 책임도 있다

그게 아무리 빛보다 빠른 속도였어도 우리가 잔디밭에 함께 코를 박고 함께 다닐 수는 없다 해도 말이다.


해서 나는 남편에게 다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쫌 잘 쳐다보고 있지 그새 뭘 먹었잖아!"

나의 질책 어린 말 한마디에 남편은 뾰료롱 하고 삐져서 "왜 나한테만 그래? 너도 있었는데?"

라고 했다.

남편의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25년 은혼식도 지난 부부답게? 시시콜콜한 것들을 꺼내 들고 길에서 싸웠다.


남자도 갱년기 증상이 있다.


근처에 한국말을 알아듣는 이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얼마나 유치 찬란한 일인가.

머리는 중간중간 허연 사람들이 마주 보고 서서 내가 잘했네 네가 못했네 하며

툴툴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둘이 합쳐 백살도 훌쩍 넘는 구만 싸우는 수준은 초등학생이 따로 없지 뭔가.


그러고는 서로 둘이 삐져서 한동안 말이 없다 어느 순간 또 늘 그러하듯 풀렸다.

우리는 주로 별것 아닌 것들로 서로 삐졌다가 풀렸다가 하는 걸 부부싸움이라고 한다,

특히나 남편도 갱년기가 되다 보니 드라마 보다가도 콜라 마시고 트림 못한 사람처럼 코끝이 빨개지고 눈물이 글썽한다.


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로 잘도 욱하고

말투가 싸나웠다느니, 자기 탓만 했다느니, 이제 함께 산책 다니지 말자느니...

라며 팩 하고 토라져 그야말로 삐진다


나 또한 갱년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어 예전 같으면 참았다가 남편이 진정이 되었을 때

조목조목 잘잘못을 따지고 사과를 받았냈을텐데..

지금은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질 때가 많아서 그야말로 싸나움이 주룩주룩 흐를 때가 많다.


우리 부부를 싸우게 해 놓고 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 나리를 보자니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봐주자 드라마 보고도 눈물이 글썽해지는 갱년기의 남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점심으로 인도식 버터치킨을 만들었다.


우리는 부부싸움도 유치하고 푸는 방식도 그러하다 주로 먹을 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다.

남편의 쏘울 푸드 중에 하나가 카레이니 카레 들어간 거면 뭐든 그의 마음을 풀게 하기 충분하다.

우리 집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칼로 카레 만들기다.



이전 19화 개똥 때문에 경찰 부를 뻔 한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