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용하고 있는 한두 가지 약의 처방전이 필요할 때 이거나 예방접종할 때가 되었을 경우 어쩌다 병원에 오는 환자 들이여서 사실 이름도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부부가 서로 많이 닮았다는 것 외에는 조용히 자기들 볼일이 끝나면 병원에 왔다 갔나 싶게 다녀가는 지라 그리 큰 존재감을 남기지 않았다고나 할까?
한 가지만 빼고는 말이다.
듣기 좋은 저음이 동굴에서 울려오는 듯한 음색이다 해서 동굴 목소리라 한다면 두 분 다 그런 음색을 지녔다 마치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듯한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 만약 이분들이 한국에 사셨다면 목소리가 성우 하시면 딱이겠어요 소리 꽤나 들었법한.. 말이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전화를 하셨을 때 나는 그분이 누군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음... 지난주에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제가 도움이 필요해요"
고요한 호수에 물 흐르듯 잠잠한 목소리였지만
돌아가셨다는 단어에 망설임이 묻어 났다
나는 묻지도 않고 금요일 11시 45분 에 진료 예약을 해드렸다.
그 시간은 우리 병원 일주일 진료 플랜 중에 자주 비워 놓는 시간이다.
12시까지가 오전 진료 시간이라 11시 45분부터는 비워 놓아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일찍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1시 45분에 진료 예약을 해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진료 시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겠노라는 내 나름의 가장 큰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아주머니가 목소리만큼이나 깊은 눈동자에 아직 이게 현실 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는 듯한 몽롱함과 당혹스러움을 담아 오던 금요일 11시 45분에 나는 말없이 차를 끓였다.
그리고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마시기 좋은 온도를 품고 있는 둥글레 차 한잔을 진료실로 내어 갔다.
한모금 머금은 차 맛이 바닐라 처럼 순한 맛을 가졌다며 맑은 눈에 물기가 어렸다.
부부는 바다가 있는 곳에 휴가 중이였고 그 남편 분은 갑자스런 심장마비로 다시 집으로 돌아 올수 없었다고 했다.
식지 않은 찻잔에 아직 따뜻한 눈물이 보태어 졌다.
우리가 남은 가족 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필요한 서류 들을 해서 드리고 슬픔이 차고 넘치는 시간들 속에 서 있는 그분들이 그 슬픔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함께 배웅해 주는 것 외에는 말이다.
독일의 가정의 병원은 어느 때는 수많은 다양한 서류들을 처리해 주어야 해서 마치 주민센터 같은 모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저런 요구 사항 들을 들어주며 음식을 주문 받는 레스토랑 같은 모습을 띄기도 하며 또 어느 때는 말없이 함께 서서 슬픔을 배웅해 주는 기차역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