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뭐길래

선물을 주지 않는 남편

by 정안

나는 4월에 태어났다.

엄마 말로는 나를 낳고 밖을 보았는데 벚꽃이 온 산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고 한다.


좋은 계절에 태어나서 팔자가 편할 것이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하셨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엄마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생의 어느 순간 어느 시기는 지독히도 불행하고 힘들었고 어느 때는 만족스럽고 편안했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눈물 흘린 날도 많았다.


문득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배우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기억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아프고 힘든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안다. 나 또한 그랬다. 이 드라마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많이 울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풍족하지 못했던 우리 집은 생일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친구들이 생일을 챙겨주고 함께 해줬다. 그래서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누군가 챙겨줬고 그걸로 만족했으므로


늦은 결혼을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 당시 서른이 넘은 결혼은 아주 늦은 결혼이었다. 엄마는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는 나에게 반 협박조로 말씀하셨다. "너 그렇게 버티다가 늙은 남자 재취 자리로 간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 "걱정 마 한두 살 많은 남자랑 결혼할 거니까" 그 후 두 살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나는 생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결혼해서 이십 년 넘게 사는 동안 남편은 거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 신혼 때 엘지 생활건강에서 나온 영양크림 한 개를 사준 게 전부였다.(참 소상히도 기억한다...)


그게 참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참으로 서운한 일이다. 결혼해서 직장 다니고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은 거의 독박으로 하고 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시댁에를 한 달에 한번 꼭 갔다. 그러고도 위로의 말이나 따뜻한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때때로 내가 왜 결혼을 했나... 나는 이 집의 노예인가... 뭐 이런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


왜 생일선물을 안주냐고 물으면 남편은 말했다. 가족이 모여 케이크에 불 끄며 축하해 주는 게 진짜 선물이라고...그래도 나는 빼놓지 않고 생일이면 남편과 아이들 선물을 챙겼다. 남편은 내가 생일선물을 주면 흔쾌히 받는다.


언젠가 엄마 생신이라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날이었다.

동생이 들고 온 가방을 보고 예쁘다고 했더니 제부가 생일선물로 사준 명품가방이란다. 둘째 동생도 생일선물로 금 몇 돈을 받았단다. 나는 좀 마음이 상했다.

"나는 생일선물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데 제부들 참 다정하다..."

했더니 듣고 계시던 엄마가 발끈하셨다.

"아니, 우리 정안이가 뭐가 부족해서 생일선물도 제대로 못 받아. 이봐 윤 서방 자기 마누라 생일은 꼭 챙기는 거야 너무 무심한 거 아냐! 앞으로는 꼭 챙기게"하셨다.

남편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일선물을 꼭 그렇게 챙겨야 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와..... 한대 패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시누이 집들이에 갔는데 어쩌다 생일 이야기가 나왔다.

형님이나 시누이는 남편에게 생일선물을 제대로 잘 챙겨 받고 있었다. 내가 생일선물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자 시어머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일 생일 할 거 없다 우리 때는 생일이 언젠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와... 휘발유 끼얹고 불 지르시네)

너무 어이가 없어 대거리를 못했다. 남편은 거봐라 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돌아보면 그 섭섭함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처럼 그렇게 자괴감에 빠질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남편이 살면서 생일마다 나에게 주었던 씁쓸함과 상처들 잘 간직하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갚아주리라 하면서 ㅎㅎㅎ


올해 생일날

코로나바이러스로 파견을 나간 남편은 두 달간 집에 오지 못했다. 아들은 군대에 가있었다. 큰아들과 생일을 맞았는데 미역국도 끓이기 싫어 그냥 지나갔다. 생일 전날 둘째 아들이 군대에서 가족 카톡에 축하의 글을 올렸다. 선물은 휴가 나가면 드린다면서.


근데 남편은 시어머니 생일은 무슨 국가원수 탄신일처럼 챙기면서 가족 카톡에 케이크+꽃이 한가득인 이모티콘만 올렸다. 참나.... 카톡으로 내가 좋아하는 커피 쿠폰이나 빵 쿠폰을 마음만 있으면 보내겠다. 직원들한테는 잘도 보내더구먼... 또다시 묵은 감정이 올라왔다. 그 대신 친구들이 단톡 방에 푸짐한 축하의 글과 선물들을 보내줬다. 이래서 나이 들면 친구가 소중해지나...


빵집 초보사장인 친구가 만들어준 생일 케잌


사람은 사소한 것에 죽고 사는 법이다. 그리고 그 사소함에 마음이 다 들어있기도 하다. 난 더 이상 생일선물로 마음 상하지 않기로 했다. 이십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못 받았는데 새삼 뭐를 바라겠는가


근데 나는 진정 선물이라는 물질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가만히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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