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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09. 2022

어느 장애인의 오밀조밀.

인터뷰 2.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어요.

꿀꺽,

줄 지은 단칸방 끝에 있는 작은 방에는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늘 불을 켜야 하는데,

그날은 유독 어두웠어요.


어른들이 집을 비운 한낮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혼자 있는 것이 그리 싫지 않은 조금은 무료하고 조금은 허전한 것 같은 그 시간을 은근히 즐긴다고...?


큰오빠가 망치를 들고 방문 앞에 걸개를 박았어요. 그다음에 자물쇠를 걸었어요.

이유를 물었지만 말해주지 않았어요.

학교 숙제를 하고 시계를 보니 엄마가 공장에서 돌아 올 시간이었어요.

크르릉. 꿀꺽,

여러 명의 발걸음이 포개지고 시끄러웠어요.

그때였어요.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제 방 앞으로 누가 걸어와요.

그리고 딸 깍. 방문이 잠겼어요.


아, 그리고 방 문 틈으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요.


"소리 내지 마라, 손님들 가기 전까지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라."


"누구? 엄마? 오빠? 문을 왜 잠가!"


"조용히 하라고, 손님들 가면 열어줄게."





우리 둘이 숨바꼭질할까요

아하 그래 두 눈을 감아요

저기 저기 풀잎 속에 숨었나

흘러가는 구름 속에 숨었나

아니야 뒤에 있잖아

다시 한번 너를 찾아서

아니야 뒤에 있잖아

다시 한번 너를 찾아서

_해오라기 [숨바꼭질]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를 부르기에는 다 컸다고 생각했나 봐요.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어른 노래가 맴돌아요.

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


아, 그때 아버님은 어디 계셨나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술을 먹으러 나갔을 거예요.

숨바꼭질 노래를 열 번 넘게 불렀을 거예요.

"아니야, 뒤에 있잖아. 다시 한번 너를 찾아서..."


무서웠겠어요...?


저는 울지 않았어요. 엄마 화장대 서랍을 열어서 반쯤 남은 엄마 루주를 입술에 발랐어요.

사람들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해요.

문을 두드릴까, 작은 창문을 열고 소리칠까... 망설였어요.


문은 왜 잠근 걸까요?

[물어보지 않아도 될 질문이다.]


장애인 딸이 챵피했겠죠. 훗날, 엄마는 말했어요. 오빠가 시켰다고. 

사람들 많은 곳에 무릎으로 기어 나와 어른들 사이에서 이 말 저 말 까르르, 

다시 무릎으로 기어가 다른 사람 앞에서 까르르, 

보기 싫었대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옷을 보면 탁탁 털어 각을 잡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책을 모아 색별로, 키별로 줄을 세워 책꽂이에 꽂았다.

"선생님은 공부할 때 정돈된 분위기에서 하고 싶어. 너희들도 도와주겠니?"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진을 뺐다. 장애인 선생님이 족집게 선생님이라, 장애인 선생님이 숙식을 해결해주며 성적을 올려주는 선생님이라, 아이들은 고분고분했다.


책상 위에 그날 공부할 책을 탁탁탁 정리하고

"자, 수업 시작!"

강박이다.


아이처럼 유순하고 웃음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그날 받은 과외비를 다 줄 정도로 세상 이치에 어두운 충동적 유형, 에니어그램 7번의 분열은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에니어그램 1번의 분열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7년 동안 동거 동락하며 숙식 과외를 했다. 그때 나는 치아를 잃었다. 등수에 집착하고, 아이의 변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동안, 열한 개의 치아를 잃었다. 심리학을 다시 공부하고 다시 에니어그램을 배우면서 알았다. 강박과 집착은 나에게 치명적이다. 눈을 풀고 먼 곳을 응시하는 관조의 삶이 필요했다. 고로 나는 지금 작가의 삶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창고 방'에 가두었던 엄마의 마음은 궁금했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고, 더 이른 나이에 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객사하고, 술이 없으면 못 사는 오빠가 둘이나 있는데 엄마가 '혈액암'이란다.

억압했던 기억이 폭발했다. 미군부대 웨이트리스로 바쁠 때도 여공으로 살면서 늦은 퇴근으로 잠가 놓은 냉장고 문을 밤에야 열어주어도, 아버지를 여의고 억척스럽게 벌어들인 수억 대의 재산을 오빠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살리고 싶었다.


"엄마, 나 국민학교 때 창고 방에 가둔 거 기억나?"

"엄마가 언제 그랬냐..."


방사선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진 엄마는 가물가물한 기억인 양 짐짓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렸다. 안쓰러웠다. 기법 치료라는 것이 입을 통해 과거를 토해내게 하는 질문지를 반복적으로 주는 건데, 이 작업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그렇게 6개월쯤 되었다.


"정미야... 엄마가 그때 가둬서 미안해... 무서웠지...?"

갈라진 입술에 하얀 거품이 보글거린다.


우엑,


차 문을 열자 침잠했던 과거의 기억과 함께 엄마의 침전물이 땅으로 쏟아졌다.


"엄마... 말해줘서 고마워..."






이후 엄마는 혈액암을 완치했다. 



지금도 강박이 있나요?


[여기저기 내팽개쳐진 옷과, 나열하지 않은 책들, 막 까먹은 귤껍질이 책상 위에 소복하다.]


시간이 되면 청소하고, 마음이 한가로운 날, 줄을 세워 책을 정리하고, 부질없다 하는 날, 그림을 그려요. 강박이 사라졌어요.


그렇다면 눈을 풀고 먼 곳을 응시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가요?


보여주는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어요. 책을 출간하고 강연하는 삶을 그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내면이 풍성해지는 글을 쓰는 그 시간이 좋아요.


아직, 이루지 못해서 아쉬운 건 없나요?


다 해본 사람은 아쉬움이 없다고 하죠. 벌어봤고, 써봤고, 나누어봤고, 사랑했고, 사랑받았어요.


그런데도 와인을 마시며, 가끔은 한숨을 짓는다고...?


나는, 광대의 여인이니까요.

은둔의 자리에서도 눈에 띄는 어쩔 수 없는 무대의 여인이니까요.


주목받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요?

[물결 같은 슬픔이 그녀의 주변에 머문다.]


제가 선택한 직업, 제가 선택한 공간, 제가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지고 싶어요.


강박 아닌가요?

[와인을 땄다. 어느새 한 잔의 와인 잔이 비었다. 그녀의 코가 빨갛다.]


강박을 이기는 힘이 부족하면 '기도'로 이겨낸다는 거짓말은 못하겠네요. 눈을 풀어야 하는 관조자의 삶이 필요한데, 내 삶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다 해낼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언어가 능숙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힘들지 않으세요? 저를 위한 인터뷰어(interviewer)가 돼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아주 홀가분해요. 억압했고 억제했던 이야기를 축복으로 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interviewee:사비나 황정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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