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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키오사우르스 Mar 04. 2024

손을 잡아줄 테니, 자네도 한발 다가오게

데이터로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객이 요청한 데이터 작업을 하려면, 수작업이 필요하다거나 현재 일이 몰려서 여지가 없다거나 그런 내부적인 상황을 떠나서 최대한 담백하게 들어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 사업은 영업이지만, 데이터라는 용어가 붙으면서 어떤 순간에는 파는 자가 갑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위치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나는 오래가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 데이터를 구매한 고객이, 언론기사를 냈다. 홍보팀에서는 기사에 반영된 수치가 너무 선명하다고 이런 기사가 나지 않도록 자제하라고 했다. 요청을 받은 팀원이 고객사에 언론홍보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홍보팀은 홍보팀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했고, 우리는 사업팀이니까 사업팀 관점에서 봐야 한다. 특별히 회사에 해가 되는 기사가 아니라면, 고객이 원하는 대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고객은 과거에 발생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예측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상품을 팔면 좋을지를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대부분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내거나, 마케팅을 하거나, 경쟁사와 비교해 주겠다는 테마였는데 완전히 다른 니즈를 말한 것이다.

"자기들도 모르는 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쎄...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데이터로 제공 가능한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었다. 어려운 것은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어려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할 것 같다.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카드시장 전망"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과거의 시계열 추이를 분석해서 내년도 카드시장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국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들과 비교해서 인사이트를 내는 일이었다. 내년에는 5% 성장할 거로 예상되니까 상품은 이렇게, 마케팅은 이렇게 하라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보고서 중 가장 큰 보고서이기도 했고, 정말로 뽀대 나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 보고서가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투여한 시간과 인력과 데이터에 비해, 활용도는 미미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이 보고서 작업이 잘 되었던 건 내가 제일 잘 아는 카드데이터를 활용하고, 내가 종사하고 있는 업에 대한 전망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 모르는 산업에서 잘 팔릴만한 제품을 데이터 분석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것은 데이터 분석인가, 기업 컨설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제대로 하려면 왜 지금 매출이 빠졌는지, 남들은 어떤 걸 파는지, 동종업종 말고 전체 산업에서는 트렌드가 어떤지, 우리 채널의 한계는 무엇인지, 고객들이 느끼는 불만은 무엇인지와 같은 모든 것들이 상품과 관련 있어 보였다.

 

고객은 아주 심플하게 시기별로 잘 팔릴만한 상품을 알고 싶다고 했다. 뻔한 결과 말고 새로운 결과를 알고 싶다고 했다. 뻔한 결과라는 건 베스트상품 같은 말이고, 새로운 결과는 신상품 같은 의미인데 신상품은 자고로 반짝 팔리지만 아주 많이 팔리지는 않는다. 간단하게 답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생각해 보니 이건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컨설팅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다.


(1) 우리 고객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2)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가

(3) 내가 가진 데이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른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가

(4) 어떤 방법으로 분석할 것인가

(5) 산출물은 어떤 형식으로 구성하고, 고객에게는 어떤 주기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늘 부담스럽다. 아무리 정교하게 예측을 해도 틀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그 결과가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고객들도 예측 결과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왕이면 맞추길 바란다)


마케팅이던 예측이든 간에, 이런 프로젝트의 결과는 고객이 데이터를 활용해 느낀 '경험'이 될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다면 다시 반복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완전한 안티팬이 될 거다. 다른 사람들이 데이터 관련 이야기만 꺼내도 하지 말라고 말리는 흑화 된 고객이 될 것이다.

"내가 해봤는 데 있잖아 완전 별로야, 진짜 하지 마. 괜히 돈만 날린다니까"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한 고객에게 보고서를 주던, 데이터를 주든 간에 그 경험이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데이터 분석을 반복해서 할 수 있고, 반복을 해야 고객에게 도움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 한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데이터 분석을 한번 해보고 데이터에 대한 모든 효용을 짐작하면 안 된다. 늘 그렇듯이 책을 한 권만 읽고서 전문가인척 하는 놈이 제일 위험한 놈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고객에게 전달 한 정보가, 고객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는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작업의 반복이 필요하다. 고객도 반복해서 일을 하면서 성장한다. 고객사의 담당자가 자신의 업에 대한 관점을 넣어 내재화한 지식들이 쌓이고 쌓여야 진짜 살아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

남이 밥을 떠먹여 줄 수는 없다.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더라도 내가 직접 젓가락을 들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내가 먹고 싶은 속도로 먹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자들이 변해야 한다. 알아서 해줘 가 아니라 깊이 관여해야 한다. 그것이 호구 잡히지 않는 길이고 내가 스스로 성장하는 길이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시도해 본 한 번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다면 두 번, 세 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 뭐든지 한 번뿐인 경험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고, 그 말이 틀릴 확률도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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