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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pr 07. 2024

의지력을 믿지 마

중요한 건 환경이야



 루틴 만들기에 진심이다. MBTI가 세상에 나온 덕분에 나 같은 인간을 파워 J라고 한다던데. 계획형 인간과 아닌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반응의 차이라는 걸 어디서 보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일정에는 오히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방관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부터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가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는 슬쩍 들어가서 계획을 잡는다. 갈 식당을 정한다거나 하는.


 프리랜서라 쓰는 시간이 자유롭다 보니 한동안 목적이 사라진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삶 속의 시간표가 정말 중요한 인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계획을 세워서 살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내 의지만으로 계획을 이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내게 달린 명찰을 의식해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마땅히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봤더니... 환경. 환경의 문제다. 마땅히 그 일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리면서부터 나는 내 의지력을 믿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 중 월수금은 아침 수업이 있어서 하루를 비교적 일찍 시작하는데 수업이 없는 화목은 그렇지 않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자연스레 알람을 꺼버린다. 늦게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하루가 아쉬워서 일찍 일어날 방법을 강구하다가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구직 사이트를 보다 보니 아보씨의 회사 근처 요가원에서 강사를 구하고 있었다. 아침 6시 30분 수업이라는 이른 시간이 걱정됐지먼 자율근무제인 아보씨도 함께 일찍 출근하면 좋다고 해서 용기를 냈다. 이력서 메일을 보냈더니 연락이 없길래 잊고 지내며 계속 늦잠을 이어나가다가 갑자기 온 연락에 면접을 봤다. 운이 좋게도 바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보씨의 회사 근처로 구한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내가 수련하는 요가원이 집과 아보씨 회사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아침 수업을 마쳐도 일곱 시 반, 출근길을 뚫고 요가원 아래 카페에 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한 시간 반가량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며 보낸다. 이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동안 하는 일들로 하루치 마음을 살찌운다.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요가원에 가서 매트를 깐다.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매트에 앉으면 수련에 앞서 10분 정도 명상을 할 때에도 평소보다 일찍 생각의 목소리가 잔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 수업을 일찍 잡아두니 화목은 기상시간이 5시다. 일주일에 이틀을 강제 미라클모닝을 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체리듬이 그 시간에 맞춰져서 밤 열시만 되면 하품이 나온다. 평소에는 한시쯤 잠이 들었거늘. 저녁 수업을 마치고 귀가해서 개운하게 샤워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꿀맛이었는데 그것도 내려놨다. 대신 주말에 한 잔 기분 좋게 마시는데 아꼈다가 마시는 맥주맛은 습관처럼 마시던 맛과는 다르게 기가 막히다.


 동선을 연쇄적으로 짜놓으니 하나가 무너지면 그다음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점을 의식하며 자연스레 강제성을 띈 스케줄이 생긴 것이다. 적당한 강제성은 돌벽 같은 이름과는 달리 생활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이니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와 약속한 것이 아니기에 울타리의 높이도 너무 높아 무너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의지력을 믿기보다 일상을 견고하게 만드는 환경이라는 바탕을 깔아놓으니 일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자연스레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든다.


 적당한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브런치에 매주 2편의 에세이를 쓰는 연재를 하고 있다. 업로드 기한을 건너뛰기도 하며 아직 적응을 하는 중이다. 종종걸음이지만 발자국마다 쌓이는 기록물이 즐겁다.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다독임으로 조금씩 걸어가 보려고 한다.



글/그림 버들 (@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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