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13
스승님께 문자를 보냈다.
- 스승님, 화병 선물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처음에 스승님한테 친구 선물로 부탁했던 것처럼요.
- 알겠어요. 이번에는 어떤 분께 드릴 건데요?
- 워낙 좋으신 분이라서 어떤 꽃이라도 고맙게 받으실 거예요.
50대 후반의 여성분인데,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밝으세요.
감각이 저보다 더 젊고 센스 있어요.
- 준비해 둘게요. 레슨 끝나고 가져가실 거죠?
- 예.
레슨날, 스승님이 만들어 놓은 화병을 보고 놀랐다.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추상적으로 말을 했는데, 어쩜 이렇게 선물 받으시는 분이랑 잘 어울리는 화병을 만들어 놓았을까?”
“제가 언니를 알고, 받으시는 분에 대해 이야기 들었던 적도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그래도 경험이 많은 플로리스트들은 언니의 설명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들과 이미지가 있을 거예요.”
“저는 50대의 고상한 여성분이니까 보라톤과 흰색의 조합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딥실버장미랑 흰색 거베라를 중심으로, 어울릴만한 꽃들로 구성한 거예요. 리시안셔스는 톤이 너무 밋밋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진한 보라색으로 샀고요. 밝고 젊은 감각이 있으시다고 해서 왁스플라워랑 마트리카리아를 필러플라워로 선택했어요. 그리고 차풀, 레몬트리, 여름라일락, 유칼립투스.. 소재를 다양하게 썼어요. 받으시는 분에 대한 언니의 고마운 마음에, 언니에 대한 저의 마음까지 얹어서 신경 좀 썼죠. 화병 보시면서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셨으면 하고요.”
“고마워요. 그만큼 너무 만족스러워요.”
“그런데, 경험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꽃을 주문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꽃이나 식물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로드숍도 많이 생겼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꽃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지는 못한 것 같아요. 꽃을 사치품으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날에만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꽃을 사는 것도 익숙하지 않죠.”
“예. 꽃을 살 때는 주로 ‘어떤 행사에 쓸, 몇 만 원짜리 꽃다발’ 을 만들어 달라고 얘기했어요.”
“꽃에 대해 잘 모르면 그렇게 주문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에요. 선물하는 목적과 예산은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성별, 연령, 색감, 분위기 등을 말해 주면 받으시는 분과 더욱 어울리게 준비할 수 있을 테고.. 만족도도 올라가겠죠? 당일에 급하게 주문하는 것보다 3~4일 전에 예약을 하면, 꽃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더욱 신선하고 풍성한 상품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꽃을 사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뭔가 까다롭게 굴거나 귀찮게 하는 것 같았거든요.”
“요즘에는 꽃의 종류에서부터 포장, 리본, 어레인지먼트까지 세심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꽃을 정성스럽게 다루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준비해서, 사람들이 꽃을 즐기고 소중한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게 플로리스트의 일이잖아요. 기본적인 일들이 귀찮으면 플로리스트 하지 말아야죠.”
“나는 물처리 부탁하는 것도 쭈뼛거려지더라고요..”
“언니도 참.. 요즘에는 플로리스트들이 먼저 이동환경 물어보고, 관리 방법도 설명해 줄걸요?”
“꽃에 대해서 잘 모르면, 무엇이 기본적인 부탁이고 무엇은 무례한 부탁인지 알기가 어려워요.”
“아무래도 꽃을 공산품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무례한 부탁을 하기 쉬워요. 꽃은 공산품이 아니라서 계절에 따라 나오는 꽃들이 다르고,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아요. 요즘은 수입된 꽃들도 많은데, 그러면 무역상황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죠. 장미만 하더라도 종류와 가격이 얼마나 다양해요. 그런데 사진을 보여주고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조금 차이가 나면 다르다고 불평하는 손님들도 있나 봐요.”
“요즘은 SNS에 예쁜 꽃 사진들이 많아서 더 그렇겠어요.”
“예. 사진은 실제 색감과 차이가 있는 데다 빛의 영향도 많이 받잖아요? 더구나 보정된 사진이나 연출된 사진과 똑같이 만들라고 하면, 그건 어렵죠. 게다가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얼굴이 얼마나 다양해요. 줄기가 만들어 내는 라인도 다 다르고..”
“공장에서 틀에 찍어낸 게 아니니까요. 녀석들이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이렇게 생기고 저렇게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요새 저의 숙제랍니다.”
“맞아요. 그걸 받아들이면, 자연물이 주는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어요.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면, 무례한 부탁은 안 하게 되죠. 오히려 사진을 참고해서 전체적인 분위기, 컬러, 화기, 포장지, 특별히 원하는 꽃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 플로리스트와 더 잘 소통할 수도 있어요.”
“결국, 꽃을 주문하는 데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소통이 중요한 거네요.”
“그럼요. 숙련된 플로리스트라도 꽃다발 제작하려면 적어도 10분은 걸릴 텐데.. 마트에서 바코드 찍고 물건 가져가듯 빨리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면 마음이 편할 수 없죠. 그 마음까지 배려해 주시면 좋죠.”
“이제 우리 레슨 시작할까요? 이번 주엔 꽃값이 싸지 않았어요. 선물 제작하느라 구매한 꽃을 레슨에도 사용하면 재료비를 아낄 수 있겠더라고요. 아낀 비용은 언니 레슨비에 반영할게요.”
“고마워요. 그런데, 나 배려하느라 스승님한테 번거롭거나 무리한 선택은 하지 말아요.”
“걱정 말아요. 오늘은 언니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꽃의 양이 적어서, 그에 맞게 돔모양으로 바구니를 만들 거예요. 언니가 돔을 어려워하면서도 부쩍 학습의욕을 불태우길래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지난번에는 장미나 카네이션, 한 종류만 써서 콤팩트하게 돔을 만들었잖아요? 오늘은 다양한 종류의 꽃들로 그렇게 만들어 보세요. 바구니에 꽂기 전에 스파이럴 연습 먼저 할게요.”
같은 꽃들인데 화병, 다발, 바구니로 만들어지니 이미지가 조금씩 달랐다.
나의 머릿속에 ‘같은 소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출’ 이라는 문구에 선명한 이미지가 더해졌다. ‘언니, 지금 과정에서는 언니가 신경 쓰는 것들로 인해 이미지가 크게 바뀌지 않아요. 꽃 한 송이의 각도나 줄기의 라인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작업의 완성도는 올리지 못하면서 시간만 잡아먹고 있어요.’ 라는 스승님의 코멘트도 더욱 생생하게 이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