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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Sep 30. 2024
주말 동안 몇 주간 내 손에 들려있던 마담 보바리의 마지막장을 끝냈다. 사실 그냥 슝슝 대충 흘려 끝까지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의 서사가 지닌 중요성보다는 형식과 스타일이 더 중요한 이 소설을 나 같이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길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마담보바리의 비극적인 삶을 따라가다가 얼마 전 보았던 파친코에 나왔던 '동희와 복희'의 서사가 떠올랐다. 위안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고국에 돌아온 이 여성들의 삶은 그 후로도 평탄치 못했다. 하지만 끝내 살아남았던 복희와는 달리, 꿈 많고 삶에 대해 어떤 낭만을 가졌던 동희는 끝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사랑했던 동무 동희에 대해 복희가 말했던 그 대사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시상 사는 거를 꿈속에서 노는 것 모양으로 사는 사람도 있제, 그런 사람들은 모진 세월을 못 버텨낸다." 꿈 많고 삶에 대해 많은 희망과 낭만을 가졌던 동희는 끝내는 어릴 적 동무와 빨래를 했던 그 빨래터에서 삶을 끝냈다.
어쩌면 마담 보바리도 그런 동희와 같은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여자 기숙학교에 갇혀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사랑과 삶에 대해 너무 비현실적인 꿈을 꾸며 살았던 거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자기의 현실에서 맞딱드리는 일들을 보니, 무미건조하고 별다른 로맨스도 스파크도 없는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주어진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몽상을 만들어 내며, 현실을 왜곡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비루하고 비참하며 때론 굴욕적이다. 그리고 때론 더럽혀질 때도 있다. 내가 아무리 고고한 척, 교양 있는 척, 내 삶에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산다는 건 우리 모두를 그렇게 우습고 비참하게 만들어 버릴 순간이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내 비대해진 자아로 바라본 내 현실은 너무 비참하다. 어떤 탈출구도 없이 보이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남편의 상황은 여전하고, 회사도 지랄 같고, 미래도 너무 불안하다. 내 본진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억척같이 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꿈같지 않은 내 삶이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로 말이다. 내가 비루하다고, 남루하다고 생각되는 삶이라도 나는 그냥 복희처럼 선자처럼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어쩌면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삶이라도 결승점에 도달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삶이 좀 더 좋아지고 웃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보고 사주도 보고, 풍수도 보고, 온갖 미신을 다 시도해 보고 내 머릿속에서 공상도 해봤다. 하지만 결론은 내 인생을 꿈같이 만들어 줄 그런 한방, 그딴 건 없다.
그냥 이게 삶이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주어진 하루를 그냥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아니면 그냥 그딴 감정적 반응은 아예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한수가 선자에게 말한 거처럼 덜 감정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삶을 꿈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잘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살아 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니 말이다.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