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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Oct 15. 2024
말기암 환자들은 통증으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남편 역시 해가 갈수록 암성통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마주하기 두렵다. 변명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이 된 후부터는 남편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평일에는 일하느라, 퇴근하면 집안일하고 주말이면 아이를 위한 과외활동 또는 집안일로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사는 게 힘들고 지쳤기에 굳이 아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거도 사실은 있다. 그냥 회피하고 어쩌면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에 주말마다 아이의 과외활동들을 잡고 더 바쁘게 밖으로 나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난 주말은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를 많이 필요로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많이 약해진 남편은 나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물론 대화의 9할은 아프다는 하소연을 듣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대화로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니, 어쩌면 내가 지금 이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한동안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한때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적 있었다. 넌 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니 병을 숨긴 거야? 남편은 변명했다. 아니 너마저 없으면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널 잡고 싶었어. 그래 내가 이기적이었던 거 같아...
가슴이 멍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세상에 와서 타인의 인생의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 부모님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그를 미워했던 내 원망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남편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종교를 떠나서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라고 들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 사람을 만나, 자기를 빼닮은 아이를 낳고 이렇게 살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된 것도 엄청난 대단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사랑이 되었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을 가졌으니 내 인생의 목적은 어느 정도 충족한 셈이다.
본질은 사랑이다.
남편과 나는 그 오랜 시간 (연애+결혼 20년이 넘었다) 싸우고 원망하고 미워하며 그리고 서로를 외면하다가 결국엔 지금에 와서 그 본질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제 와서 깨달았다. 삶의 목적은 어쩌면 한 인간(+자기 자신을 포함)을 더 많이 그리고 깊게 이해하고 보듬아 줄 수 있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내 유한한 시간과 에너지를 나를 더 사랑하는 것에 그리고 내 가족을 더 사랑하는 일에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