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과 공감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피해의식을 스스로 진단해볼 수 있을까? 피해의식은 공감共感과 관계되어 있다. 공감의 대상과 공감 능력을 통해 자신의 피해의식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는 복잡하거나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가족에 관한 영화를 한 편 본다고 해보자. 이 영화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있다. 늘 돈돈거리는 강압적인 아버지. 집밖을 무서워하는 연약한 어머니. 포켓몬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말없는 아들. 그리고 곧 임종을 앞뒀지만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할머니.
이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해 늘 싸웠고, 싸우다가 지쳐서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이들은 곧 돌아가실 할머니를 위해 마지막 가족 여행을 떠났다. 이 가족은 여행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처음으로 저마다의 내밀한 상처에 대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버지는 왜 돈돈거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 막냇동생을 황망하게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일찍 병원에 가보기만 했어도 나았을 병인데, 돈이 없어서 병원 갈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냇동생이 죽어버렸다. 아버지는 가난의 그림자만 보아도 억울하고 분하고 두려웠다. 이것이 그가 돈돈거리는 강압적인 아버지가 된 이유였다. 어머니는 왜 집밖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대학 시절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는 선배에게 겁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에게 참혹한 일을 당한 어머니는 오직 집만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그녀가 누군가가 보기에는 답답할 만큼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어머니가 된 이유였다.
아들은 왜 포켓몬이라는 게임에만 빠져 지내게 되었을까? 수업이 끝날 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다. 늘 불안해하는 엄마와 강압적인 아빠는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했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아이는 포켓몬들이 사는 세상에 자신의 집을 지었다. 이것이 아이가 포켓몬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들이 된 이유였다. 할머니는 왜 곧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을까? 자신의 죽음이 가족들 간에 더 큰 불화로 이어질 것 같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병마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홀로 견디고 계셨다.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는가?
자,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영화의 네 명의 인물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가?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피해의식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부터 이야기해보자. 누군가가 보기에 이 아버지는 지극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일 테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보며, “그럴 수 있지” 혹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라며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아버지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면 그는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아버지가 겪은 (가난에 의한) 상처를 통해 자신의 가난의 기억이 떠올라 아버지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말이다.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보기에 이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할 정도로 답답한 사람일 테다. 하지만 “그럴 수 있지” 혹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라며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면 그는 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어머니가 겪은 (성적 폭력에 의한) 상처를 통해 자신의 상처의 기억이 떠올라 어머니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말이다.
아들과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면 그는 무관심 혹은 따돌림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일 개연성이 크다. 아들의 상처를 통해 무관심한 가족들로부터 혹은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자신의 기억이 떠올라 아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면 질병 혹은 죽음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 개연성이 크다. 할머니의 상처를 통해 질병의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에 상처받았던 자신의 기억이 떠올라 할머니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말이다.
‘누구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자신의 피해의식의 종류를 드러낸다. 네 명의 인물에 대한 각각의 감정이입(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의 피해의식으로부터 생긴 마음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입의 대상은 자신의 피해의식의 종류를 말해준다.
몇 명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는가?
‘몇 명에게 감정이입 되었는가?’ 이것은 자신의 피해의식의 강도를 진단해볼 수 있는 질문이다. 공감의 대상이 피해의식의 종류를 드러낸다면, 공감 능력은 피해의식의 강도를 드러낸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네 명의 인물 중 몇 명에게 감정이입이 되었을까? 만약 감정이입한 대상이 한 명이라면 피해의식이 가장 강하고, 네 명이라면 피해의식이 가장 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학생이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해보자. 그가 등장인물들 중 아들의 삶에만 공감하고 나머지 인물들(아버지‧어머니‧할머니)의 삶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적대감까지 든다면 그의 피해의식의 강도는 센 편이다. 이 학생이 어른이 되어 다시 그 영화를 보았다고 해보자. 그때 두 사람(아들‧아버지)에게 공감하게 된다면 그의 피해의식 강도는 그만큼 약해진 셈이다. 더 시간이 지나 그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세 사람(아들‧아버지‧어머니) 혹은 네 사람(아들‧아버지‧어머니‧할머니)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그의 피해의식의 강도는 그만큼 더 약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피해의식의 강도를 가늠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자신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면 된다. 우리는 때로 결코 누군가가 보기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행동(무례함‧폭력성‧수동성‧예민함…)을 하는 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저런 아픔을 겪어온 사람은 그럴 수 있지.”, “저런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라며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몇 명이나 될까? 그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바로 우리의 피해의식의 강도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