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유 : 오컴

어떻게 단순하게 살 것인가?

어떤 명제가 실제로 참이고 만일 어떤 한 가지가 그 명제를 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면 둘을 가정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다신학적 활동Opera Theologica 』 오컴 

    

 우리네 삶은 혼란합니다. 그 혼란함은 종종 삶에 과부하를 유발하지요. 과도한 업무, 경력개발, 영어공부, 주식, 부동산, 연애, 결혼, 운동, 경조사 등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 넘쳐납니다. 그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들이 뒤엉켜 삶은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이 심해질 때, 삶이 곧 터져 버릴 것 같은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혼란한 삶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복잡하게 뒤엉킨 현실적 문제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혼란스러운 삶은, 복잡한 ‘현실’이 아니라 복잡한 ‘관념’에 잠식당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 희망찬 미래가 있을 거야” 혹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망스러운 미래가 있을 거야” 이런 ‘관념’에 잠식당했기 때문에 우리네 삶은 곧 터져버릴 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 것일 뿐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어느 하나 결코 놓칠 수 없다고 믿는 복잡한 현실적 문제(업무‧경력관리‧인맥관리‧재테크‧…)들은 정말 모두 필요한 것일까요? 그것의 필요는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희망과 절망의 ‘관념’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닐까요? 복잡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관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필요한 것일까요? 바로 단순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여유로운 삶이죠. 이는 많은 돈이나 명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로운 삶은 단순한 마음에서 옵니다. 그러니 복잡한 현실 속에서 질식해가고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단순하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오컴은 이렇게 답해줄 겁니다. “어떤 명제가 실제로 참이고, 어떤 한 가지가 그 명제를 참으로 만들기 충분하다면 둘을 가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얼핏 난해해 보이는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삶의 진실은 더 많은 가정이 아니라 더 적은 가정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오컴에 따르면, 삶의 진실은 최소 가정에 의해 드러납니다. 이를 ‘오컴의 면도날’ 혹은 ‘단순성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 합니다. 오컴은 삶에서 다수의 가정을 필요로 하는 생각들을 ‘면도날’로 모두 베어낼 때, 삶의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컴의 ‘단순성의 원리’입니다. 쉽게 말해,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이 있다면 단순한 것이 삶의 진실에 가깝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한 사람이 어떤 질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해봅시다. 이때 주술사는 그 원인을 '악귀'로 진단하고, 의사는 '벌레'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둘 중 어느 진단이 삶의 진실에 가까울까요? 오컴에 따르면 의사의 진단이 삶의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겁니다. 이는 의학적 혹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답이 아닙니다. 오컴이 주장한 ‘단순성의 원리’(다수는 필요하지 않다면 가정해서는 안 된다.)에 의한 답입니다.   


   

 ‘병의 원인은 악귀다’ 주술사의 이 진단이 참이려면 또 한 번의 가정(악귀는 무엇인가?)이 더 필요합니다. '악귀'는 지금 내 눈앞에 없으니 '악귀'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가정해야 하니까요. 반면 ‘병의 원인은 벌레다’ 의사의 이 진단은 상황이 다릅니다. 의사의 진단에는 또 한 번의 가정이 필요 없습니다. '벌레'는 지금 내 눈 앞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다시 가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벌레'가 정말 병의 원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의사의 진단은 또 한 번의 가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적어도 주술사의 진단보다는 삶의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이것이 오컴의 ‘단순성의 원리’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단순하게 해줄 열쇠입니다. 오컴의 ‘면도날’로 우리의 복잡한 마음 중 불필요한 관념들을 베어내서 단순한 마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단순한 마음에 다가설수록 우리는 삶의 진실에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동시에 삶에 점점 여유가 생기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정신없이 일하느라 자신의 삶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 직장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업무, 경력관리, 인맥관리, 재테크, 건강, 가족 등등 복잡한 문제들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때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문제를 베어낼까요? 당연히 ‘업무’, ‘경력’, ‘인맥’, ‘재테크’일 겁니다. 



 지금 정신이 없이 ‘업무’를 하고, ‘경력’을 관리하고 ‘인맥’을 이어나가고 ‘재테크’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는 조금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거나 혹은 불행한 미래를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겁니다. 이는 ‘단순성의 원리’에 위배됩니다. 밝은 미래 혹은 불행한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가정(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밝은 미래 혹은 불행한 미래란 무엇인가?)      

 

 반면 ‘건강’과 ‘가족’은 다르죠. 이는 오컴의 ‘면도날’로 베어낼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건강한(혹은 병약한) 신체 또는 소중한 가족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두 번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수의 가정 없이 지금 당장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우리네 삶의 많은 문제들에 오컴의 ‘단순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삶이라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삶이 단순해질 때 우리는 혼란스러운 삶을 하나씩 정리하며 여유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이제 오컴의 ‘단순성의 원리’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오컴의 단순성’의 원리는 ‘관념’과 ‘경험’을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다수의 가정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관념’적인 문제이며. 다수의 가정이 필요 없는 문제는 ‘경험’적인 문제이니까요. 즉, ‘관념’적인 문제는 우리네 삶에 불필요한 문제이며, ‘경험’적인 문제는 우리네 삶에 필요한 문제입니다.      



 햇살 좋은 어느 휴일 오후, 재테크를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해야 할까요? 복잡할 것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산책입니다. 재테크는 다수의 가정이 필요한 지극히 ‘관념’적인 일이고, 사랑하는 이와의 산책은 다수의 가정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경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복잡할 것 없습니다. ‘관념’적인 행복이 아닌 ‘경험’적 행복을 충족할 만큼 돈을 벌면 됩니다. 


 미래의 기대 혹은 불안에 휩싸여 일할 때 우리네 삶은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그것은 더 많은 ‘관념’적인 문제들을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식사를 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일을 할 때 우리네 삶은 더욱 단순하고 여유로워질 겁니다. 그것은 오직 ‘경험’적인 문제만을 남길 테니까요.     


 유쾌하고 명랑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여유로운 삶입니다. 그 여유로운 삶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삶입니다. 삶에서 불필요한 일들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일에만 신경 쓰는 삶. 그 단순한 삶이 여유로운 삶이며, 바로 그런 삶이 유쾌하고 명랑한 삶입니다. 이것이 삶의 진실입니다. 이 삶의 진실에 이르기 위해 우리에게는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합니다. 그 면도날로 온갖 생각(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념’적인 문제들을 과감하게 베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오롯이 신체로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문제들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여유로운 삶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철학자의 일상적 조언』

우리 정신의 대상은 존재하고 있는 신체이며그 이외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먼저 우리의 신체의 본성을 충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정신과 신체이 합일을 충분하게 또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에티카』 스피노자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나요? ‘미니멀’하게 사세요. ‘미니멀’한 삶은 무엇일까요? 필요한 것들만 사며 불필요한 것들은 사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소유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처분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최대한 단순해지는 삶이 바로 ‘미니멀’한 삶입다. 그런데 이런 ‘미니멀’한 삶에 이르기 어렵지요? 왜 그럴까요? 그건 필요-불필요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옷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는 어떤 옷을 사야하며 어떤 옷을 사지 말아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또 옷장에 있는 그 수많은 옷들 중 어떤 옷을 남기고 어떤 옷을 처분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는 우리네 삶의 필요-불필요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의 진정한 필요-불필요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신체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 ‘옷’이 있습니다, 관념(정신)적인 옷과 신체적인 옷. 전자는 “저 옷을 입으면 관심 받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옷이고, 후자는 “저 옷을 입으면 편안하고 시원할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옷입니다. 관념(정신)적인 옷은 불필요한 옷이며, 신체적인 옷은 필요한 옷입니다. 관념적인 옷을 처분하고 신체적인 옷만 남길 때 삶은 조금 더 ‘미니멀’해질 겁니다. 


 비단 옷만 그럴까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옷장에 수많은 옷들처럼, 우리의 인간관계 역시 너무 복잡하기만 합니다. 옷을 정리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 역시 정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있고 불필요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관념적인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언젠가 도움이 될 거야”)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신체적인 사람이지요.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온 몸에 온기가 돌며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해줄 사람입니다.


 ‘미니멀’한 삶의 비밀은 신체에 있습니다. 관념적인 옷(상품)은 사지 않고 옷장(집안)에 있는 관념적인 옷(상품)을 정리하듯, 관념적인 관계는 만들지 않고, 기존의 관념적인 관계들을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신체적인 옷(상품)만을 남기듯, 신체적인 관계들만을 남기려 애를 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유로운 그래서 행복한 ‘미니멀’한 삶에 이르게 될 겁니다.       

이전 03화 우정 : 에피쿠로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