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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r 23. 2024

따뜻한 사고

-장대익 <공감의 반경>2


장대익. 공감의 반경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바다출판사


진화생물학자가 쓴 이 책은 요즈음 세상에서 가장 핫한 개념인 공감에 대해 공감 가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삶에서 품어왔던 큰 질문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발견한 것 같았다.




정서적 공감이란 감정이입, 즉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상태를 말하고,

인지적 공감이란 타인의 관점, 입장,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정서적 공감은 강렬하지만 쉽게 휘발하는 공감으로 변화에 이르기 어렵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부족본능이라는 개념은 감정의 전염으로 인한 정서적 공감으로, 작은 규모의 내집단에서 작용하는 제한된 감정이다.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에 유리한 이유로 자기 사람들을 더 챙기는 부족본능을 발달시켰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갈취하며 진화해 왔다. 

다른 종의 관점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곧 자신들의 잔혹사라고도 할 수 있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소수의 인간 무리만 뭉치는 부족본능, 이 감정이입은 강도는 세지만 지속력이 짧고 반경도 작다. 


내집단을 더 선호하고 더 깊이 공감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나오는 '옥시토신'에 대한 설명은 꽤 충격적이었다. 

'사랑 호르몬', '공감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이 연인과 부모, 자식의 결속을 강하게 하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좀 더 최신의 연구에 의하면 그 호르몬의 작용 방향이 내집단 구성원에게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옥시토신은 내집단을 위한 부정행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집단 사이의 깊은 갈등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는 편협한 호르몬이라는 것이다.

내 사람, 내 편, 나에게 이익이 되는 집단 편향적인 호르몬에 이끌리지 않는 공정한 판단을 하려면 포용이나 돌봄과 같은 가치를 회복해야 하고, 부족 본능이 협소해지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그 힘과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래의 도표를 보면서 법륜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즉문즉설 강연에서 한 남자가 질문을 했다. 부처님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하셨고, 스님들 중에서도 가정을 일구어놓고 출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행동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법륜스님은, 당신은 처자식만 먹여 살리지만 부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건져주었다고 답하셨다. 

답은 명쾌했지만 범부중생으로서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이 도표를 보면서 그 뜻이 헤아려졌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은 두 가지 사고 체계,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1은 직관적. 정서적 사고 체계무의식적이며 즉각적으로 작동한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매우 적응적인 시스템이다. 의사 결정의 95퍼센트를 담당한다. 직관과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고 편하며 작동 비용이 덜 든다.

시스템 2는 이성적. 합리적 사고 체계로 뇌의 저전두피질에서 작동하며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상대적으로 정확하지만 반응 시간은 길다. 의사결정의 5퍼센트를 담당한다. 


도덕 판단에서 감정과 이성이 함께 작용하기는 하지만 감정적 판단이 먼저고 이성적 판단은 그러한 감정적 판단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수렵 채집기에 적응된 감정은 변화된 환경에 한참 뒤처져 있다. 이런 시간 지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사회 윤리적 규범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은 잠깐 제쳐놓고 이성적 논의를 통해 올바른 판단을 찾아야 한다. 

특정한 사람을 보면서 혐오 감정을 느낀다면 보족 본능에 휘둘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일수록 직관을 끄고 이성을 켜야 한다.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마음 상태를 잘 이해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갖는 능력이다. 인지적 공감은 정서적 공감만 있을 때와 달리 장기적으로 우리 행동을 바꾸는 변화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서 관철하는 인지적 공감의 힘은 감정이입을 넘어서는 역지사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인지적 공감은 공감의 원심력을 강화해 공감의 반경을 넓힌다. 

정서적 공감이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자동으로 발현된다면 인지적 공감은 더 고차원의 인지 작용이며 따라서 인지 부하가 많이 걸린다. 


의식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인지적 공감을 활성화하려면 인간 본성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주의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즉각적이고 쉬운 감정이 아니라 조금 어렵더라도 타인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부족본능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뚫고, 정서적 공감을 넘어서는 인지적 공감으로, 깊은 공감에서 넓은 공감으로,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오직 하나의 메시지를 향한다.




서두에서 오랜 세월 삶에서 품어왔던 큰 질문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발견한 것 같았다고 했던 것을 함축해 놓은 것이 바로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라는 문장이다. 삶에서 몸 담았던 일터에서 나 자신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 모두 각자의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와해되는 아픔을 겪었던 일들에 대해 원인을 분석해보곤 했다. 

나는 장대익 작가의 이 중요한 문장에 한 단어를 더 끼워 넣고 싶다. 따뜻한 감정의 힘에서 따뜻한 사고의 힘으로 진화하기 위해서 그 사이에 냉철한 사고의 힘이 필요하다라고.


따뜻한 감정이 있는 사람은 냉철한 사고가 부족했고, 따뜻한 감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냉철한 사고가 되는 사람은 따뜻한 가슴이 부족한 것 같았다. 냉철한 사고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당시의 우리는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 만큼 진화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냉철한 사고의 힘보다 더 나아간 곳에 따뜻한 사고의 힘이 있다고 생각된다.

따뜻한 감정과 냉철한 사고 너머에 있는 따뜻한 사고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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