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지난 주말, 모처럼 중고서점에 갔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를 그때와는 책에 대한 취향이 달라져 있었다. 언젠가, 두꺼운 신학, 철학, 과학, 심리학 서가 앞에서 그 벽돌들을 우러러보며 불행한 이유가 있다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르는 게 많아서라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모든 책을 다 읽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공부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지만 들끓는 열망이나 시기를 놓친 분노는 증발한 것 같다. 좀 더 단순해졌고 가벼워진 것 같다. 이제야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진 것 같다. 내 어깨 위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중고책 세 권과 노트 한 권을 샀다.
책은 언어의 온도(이기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가벼운 마음(크리스티앙 보뱅)이다.
작고 얇고 가볍다. 어려운 게 하나도 없다.
노트는 홀로그램 특수 재질로 달이 그려져 있는 검은색 양장 노트다. 달은 고향 같다. 새 노트를 살 때마다 행복해진다. 새 노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단단한 나무를 뚫고 올라와서 피어나는 여리여리한 분홍 벚꽃 같은 힘이 느껴진다. 뭔가 그럴듯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고서점을 드나들고 공책과 펜을 사는 나에게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과 멀어졌다. 나는 계속 이럴 것이니까.
내게는 더 이상 아버지든 어머니든 남편이든 필요하지 않다. 그런 건 너무나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단지 목덜미로, 피부와 블라우스 사이로 스미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것이며, 내 눈을 전나무의 짙디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뿐이다. 나는 조금 전 풀밭 위에서 얼핏 보았던 종달새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종달새는 깃털과 노래의 떨림 속에서 온전한 자신이 될 권리를 누리며 땅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창 뒤에서 졸고 잇던 늑대는 나였다. 창공에서 작고 조용한 환희로 몸을 떠는 종달새는 바로 나다.
어제는 철창, 오늘은 하늘,
나는 발전하고 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이 문구를 읽었을 때, 문장을 읽는 것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열을 느꼈다.
가벼움을 훔치고 자유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