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⑧ | 연못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제나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마왕 신해철은 나의 청년 시절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그대에게', '해에게서 소년에게',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Here, I Stand for You'를 비롯한 그의 곡들은 삶의 굽이굽이마다에서 배경음악으로 등장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어 주었다. 철학과를 나와서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철학과를 나온 그의 이력 때문에 철학이 뭔지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왕이란 별명은 신해철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팬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당시 신해철은 방송에서 어떤 분야든 상대가 누구이든 서슴없이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어서 청취자들에게 시원한 쾌감을 주었고, 그 특유의 카리스마가 반영된 애칭이었다. 작고 여윈 단발머리의 앳된 청년은 음악적인 변신뿐 아니라 삭발을 하고 머리에 뱀 문신을 한 파격적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고, 사회운동가로도 거듭 변화하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서 일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다. 그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열정적으로 고뇌하고 많은 것을 생산하면서 살다 간 가능성의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민물장어의 꿈'은 신해철이 자신의 묘비에 적히기를 바라며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되었다. 가끔 신해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도 내 장례식을 상상하며 배경음악을 생각해 보았고 몇 곡의 최종 후보들 중 바흐 프렐류드 1번으로 정했다. 이 곡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전 분식집 새벽 마감 청소를 할 때였다. 음악을 들으면 일이 덜 힘들고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므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가 하나의 음악에 정착했는데 바로 바흐였다. 유튜브에서 바흐 1시간 영상을 틀어놓고 일을 시작했고, 청소를 마칠 때 즈음 나왔던 마지막 곡이 프렐류드 1번이었다. 기름 냄새나는 덥고 습하고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땀에 젖은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강물이 흐르듯이 차분한 바흐의 프렐류드와 함께 수고한 몸에 비추는 아침 햇살의 은총으로 샤워를 했다. 묘비명도 지었다. '평생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사람 여기 잠들다'
끝없는 이야기 ⑧ | 연못
바흐 | 평균율 1번 프렐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