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대목이 연결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로 유명한 책이다. 빅터 프랭클은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 때,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고,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는 표현을 했다. 그때, 자신이 갑자기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었고,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처한 문제는 스스로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으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의미 치료(logotherapy)'를 창시하게 된다.
희망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처참한 상황 속에서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을 때, ' '보여진' 장면이 이후에 현실로 실현되었다는 이 놀랍고도 아름다운 실화는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와 어두움 속에서 밝힌 불빛 속에서 보았던 희망들을 연상시킨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라고 했다. 성냥팔이 소녀는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할머니를 떠 올렸고, 자신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바라보았던 할머니에 의해 기쁘고 따뜻하게 높이 높이 들어 올려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생을 두 번째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 생각하라 -로고테라피 행동강령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의미치료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87쪽)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청년 시절 자살 충동에 휩싸이곤 했는데, 그때 자살하지 않았던 이유가 수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회고록에서 역시 죽고 싶은 마음을 돌이키게 한 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차가운 1.5평 감방 창문으로 내리쬐었던 신문지만 한 햇볕 때문이었다고 했다. 요식업으로 명성이 높은 사업가 백종원 씨는 젊은 시절 지게 된 큰 빚으로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먹은 음식의 신기한 맛은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게 했고, 당장 내일부터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귀국하여 지금의 성공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최근에 한 유튜브 채널에서 보게 된 20대 청년의 사연인즉, 역시 자살 충동을 느껴서 한강 다리까지 갔는데 죽지 않고 좀 더 살아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로 영상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러셀의 수학과 신영복의 햇볕과 백종원의 음식과 한 청년의 영상과 빅터 프랭클의 강의와 성냥팔이 소녀의 난로, 거위구이, 할머니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한번 더 해보고 싶은 것, 좀 더 알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가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현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삶으로 내딛게 하는 그 구체성이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 보는 것으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이르는 근원적인 생명력을 기억하게 한다. 이 이야기들은 인간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 내몰렸을 때, 아무런 희망도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근원을 본능적으로 떠 올리는 능력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슬픈 동화로 기억되었던 <성냥팔이 소녀>는 아무리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원하는 능력, 희망을 바라보는 능력, 인간은 결국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힘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위기를 말하고, 누군가는 기회라 말하는 유래 없는 코로나 팬데믹의 시절, 골방에 틀어박혀 <성냥팔이 소녀> 스톱모션을 만들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보고, 원해야 할 구체적인 희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성냥팔이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