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헤르메스> 1화.
레고 조각들을 다시 모으며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써라>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소설 쓰기 책이 있다.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쓸 이야기'가 나에게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글쓰기에 맹렬한 집착을 보인 것도 어쩌면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쓸 수 없었다. 쓰기는 썼지만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닌 글이 되었고, 그러기에 스스로 만족스럽지도, 그래서 읽혀지지도 않은 글이 되었다. 예측하건대 다시 한번 시도한다 해도 다 쓰고 나면 또 쓸 수 없었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연재브런치 한 권을 또 만들었다.
톨스토이는 예술에 대해 말하기를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숲 속 호텔 지하에서 경험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게 예술이든 쓰레기든, 희망이든 집착이든, 그것으로 불행해지든 행복해지든, 어쨌든 그런 것이 있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격랑을 헤치고 여기까지 헤엄쳐 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온전한 내 이야기는 아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던 무의식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파편으로 늘 내 주위를 떠다녔고, 그 파편들을 이어 붙여서 뭔가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소설은 거짓말을 하려고 쓰는 거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다양한 조각을 연결해서 '호텔 헤르메스'라는, 현실에서는 죽을 때까지 결코 지을 수 없는 거대한 건물을 지어보려 한다.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쓰고 싶은 이야기란, 그만큼 강렬한 감정이 있었다는 말로 해석된다. 언젠가는 몹시도 갈급하고 진지했으나 몇 번의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지금의 마음은 보다 더 가볍다. 또 마음에 안 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파편들은 레고 조각처럼 무너뜨렸다가 다시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아진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연재를 마치는 날, 진짜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꿈
'내 인생은 파마 전과 파마 후로 나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했던 인상적인 표현이다.
이 구조를 빌려서 말하자면 '내 인생은 정신분석을 받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할 수 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꿈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소설처럼 근사해 보이려고 과장된 표현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마음대로 생각하시라. 나는 정말로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쓰기로 작정했다. 나는 결코 일찍 죽고 싶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고 싶지만, 그런 해피엔딩을 원하므로 더더욱 쓰기로 했다.
강렬한 꿈 하나를 꾸고 나서 나는 태양의 시기, 더 이상은 할 수 없다 싶을 만큼 모든 것을 갈아 넣었던 직장을 떠나고, 10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오래된 모든 관계를 끊고, 분식집 새벽 마감 청소와 호텔 메이드로 일하게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통스러운 그 꿈을 다시 떠올리는 것으로 수기가 될지, 자서전이 될지, 자전적 소설이 될지, 소설적 자전이 될지, 거짓말이 될지, 진실이 될지 모를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꿈에서 시작되었으니까. 그럼 시작한다.
화난 거북
매일 새벽,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빨간 분식집에 갔다. 어제 영업하고 난 기물을 깨끗이 청소해서 오늘의 영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세팅하는 것이 이른 새벽, 분식집에서의 나의 임무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몸이 아직 덜 깨어난 피로를 의지력으로 뿌리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밤새 열 평 공간에서 잠을 잔 기름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이 훅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청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서, 똑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똑같은 반복으로 몸에 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을 설거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순대 시루, 떡볶이통, 어묵통을 거쳐 가장 힘든 분식집 청소의 피날레 튀김기 청소로 마무리를 하는 프로세스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같은 동선을 따라 기계들을 세척하기 시작했다. 떡볶이 통을 씻어서 제자리에 두고 어묵통 쪽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묵 통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스텐으로 된 묵직한 어묵 통은 언젠가부터 네 모서리 중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국물이 샜고, 근검절약이 과도한 사장은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고 거기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던 터였다. 그 구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천천히 기어 나온 거북이는 작업대 위에 멈춰 서더니 태고의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거북이는 단단히 화가 난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방울인지 눈물인지 한 방울이 거북이의 턱에서 똑! 떨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거북이를 향해 두려운 마음으로 한 걸음 떼는 순간, 갑자기 분식집 공간이 냉동실이 된 것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유리에 급속도로 성에가 끼기 시작했고 냉장고, 순대기, 튀김기가 차례대로 사라졌고, 분식집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는 냉동 창고처럼 변했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고 온몸이 푸른 멍으로 뒤덮이듯이 손끝 발끝부터 심장으로 향해오며 파랗게 얼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연극 무대에서 불이 꺼지듯이 깜깜해졌다.
슬픈 거북의 노래
눈 감으면 볼 수 있을 거야
파란 물결의 도시를
기억해 슬픈 추억과
그 밤의 약속을 넘어서 난
사무쳐오는 너의 느낌 모두 다
이제는 먼 기억 저편으로
모든 게 날 위했던 거야
애써 눈물을 감추며
언제나 나의 곁에서
지켜주겠단 너의 눈빛을 기억해
슬프게 아름다운 너의
초록빛 사랑을 간직할게
서영은 1집 초록별의 전설 Blue Moon (1998)
김준선 작사 D.Iwasaki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