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사랑의 학교>라는 이름으로기획한 연재 브런치북은 내 인생 태양의 시기 7년 동안 깊이 경험한 발도르프 교육을 통해 배우고 느낀 이야기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들께 들었던 잊을 수 없는 말씀들, 가르침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발도르프 교육 현장에서 7년의 시간 동안 직업적으로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유리드미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했던,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었고, 이 연재 브런치북 <사랑의 학교>는 유치원 근무 당시의 경험과 유리드미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배우고 느꼈던 것, 크게 두 가지를 다룰 예정이었다. 유치원 이야기는 하자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고 다음 화부터는 유리드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전체 배분상 적절할 것 같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유치원 교사를하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카르마적으로 뭔가 해야 할 과제를 하고 있는 건가?', '벌을 받는 건가?' 망상을 할 정도로 몹시 힘이 들었고, 나뿐 아니라 동료 선생님들도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일을 매우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모종의 사명감으로, 책임감으로, 성실한 영혼을 훈련했던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 인터뷰가 있었다. 말을 통한 문답식으로 교사가 될 자질을 점검하는 일종의 테스트였다. 인터뷰는 일생 동안 영국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나오신 독일 할머니, 에리카 선생님이 담당하셨다.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질문 몇 개를 하셨고, 나는 어떤 질문에는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하기도 했고, 어떤 질문에는 완전히 틀린 오답을 말하기도 했다. 에리카 선생님은 평소의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과는 달리 냉철한 눈빛으로 내 속을 훤히 들여다 보시는 것 같았다. 테스트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일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에 통역해 주시는 선생님조차 당황하시는 듯했다. 고해성사와도 같은 나의 고백에 대해 에리카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 아이부터 사랑해라."
그리고, 잠시 후 말씀을 이어가셨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 세상에 사랑을 배우러 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잠시 후, 에리카 선생님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웃으시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너는 재미있다. 아이들에게 좋다!"
'무지개는 비온 뒤에 뜨고, 영혼의 무지개는 눈물이 마른 후에 뜬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말도 안되는 질문으로 찌질함을 보이고 눈물을 쏟은 후로 나는 뭔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런 아이들과 부쩍 더 친해졌고, 그토록 힘들었던 유치원이 재미있어졌다. 나중에는 나도 에리카 선생님처럼 따뜻하고 인자한,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완전히 틀린 답을 말하고 혹시라도 떨어질까 걱정했지만 결국 논문을 통과했고, 발도르프 유아 교사의 자격을 받고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더 이상 아이들과 만나지 않게 된 그 이후의 세월 동안, 나는 인터뷰 때 에리카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 세 말씀,
"네 아이부터 사랑해라."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 세상에 사랑을 배우러 왔다."
"너는 재미있다. 아이들에게 좋다!"
를 많이도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의 학교>라는 연재 브런치를 통해서 이 말씀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
★ <무지개 유치원>은 이것으로 종결하고, 다음 <사랑의 학교> 19화 부터는 유리드미 트레이닝 과정을 다룬 <숏숏롱 댄스 교습실>로 30화 까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지개 유치원>을 사랑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