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유 Mar 03. 2024

나의 50대는 감정의 종합선물세트였다(1)


어린 시절 최고의 선물은 각종 과자가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였다. 커다란 박스의 뚜껑을 열면 그 당시 유행하는 과자, 초콜릿, 사탕, 캐러멜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서 뭘 먼저 골라 먹을지 즐거운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먼저 먹고 나면 덜 좋아하는 것들은 마지막까지 상자 안에 남게 되었다.


책 쓰기를 3주 정도 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 마음속 한 구석에선 숙제를 못한 초등학생 같았다.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언제나 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어제 샤워를 하는데 "나의 50대는 감정의 종합선물세트였다"란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탁 치며 올라왔다. '와~ 이거 책 제목하면 되겠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남편에게 얘기하자, "너무 좋은데.. 진짜로" 하는 거다.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울, 슬픔, 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면 떨쳐버리려 발버둥을 치거나 회피하려 애썼다. 마치 좋아하지 않는 과자를 끝까지 먹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도 50대 초반, 이혼 이후엔 더 그랬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뼛속깊이 외로움이 느껴지면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을 찾아다니며 최대한 외로울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외로움과 숨바꼭질을 한 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은 익숙한 감정이긴 했다. 하지만 항상 옆에 가족이 있었기에 뼛속까지 외롭진 않았던가보다. 하물며 갱년기가 되니 우울감까지 나를 덮치곤 했다.

'우울증 때문에 죽고 싶다던 내담자분들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분들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순간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50대 중반의 사랑.

만난 순간부터 우린 첫눈에 내 반쪽인 걸 알아봤다.

헤어짐을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남편과 있으면 가장 큰 감정은 "편안함'이다. 가슴 저리게 애타는 사랑도 좋긴 하지만 그런 감정도 사실은 스트레스 상황으로 인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50대의 사랑은 그런 애타는 열정보단 아늑함과 평안한 느낌이 더 강했다.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사이에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편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그리고 남편과 있을 땐 모든 게 재미있다. 방귀만 뀌어도 박장대소하며 웃고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명랑함이 행복함의 실체'라는 말처럼 우린 유치하게 까불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서로에게 내보일 수 있다.


그래서 평생 원했던 소울 메이트를 만나 행복하다.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간중간 다툴 때는 속상함과 답답함, 불안함이 느껴지긴 한다. 서로 기분 나쁘면 말을 안 하기 때문에. 하지만 오래지 않아 또 명랑함을 회복하고 친밀해진다.


50대에 느꼈던 감정들.

지나고 나니 다 소중하다. 인생의 가을에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다. 결국 인생은 입맛에 맞는 과자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내 안에서 올라오는 반갑지 않은 감정조차 환대하며 맞아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전 04화 책 쓰기 또 멈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