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서울. 우리
작은 숟가락으로 아이 밥을 먹이다, 대뜸 길게 자란 제 손톱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박이 있다 할 만큼 손발 정리에 열을 올리는 자로서,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이게 눈에 안 띄었을까 의아했죠. 조금만 여분이 올라와도 참지 못하는 성미, 그 작은 조각에 온 신경이 쏠려 온종일 찜찜함을 달고 지내야 했기에 다시 한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서두르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른 채, 아이가 잠든 뒤 거실로 나와 모르게 선을 넘어 자란 녀석들을 전부 잘라내 버렸어요. 바싹 깎인 손톱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든 아기 볼을 비비러 다시 방으로 들어갑니다. 반듯하게 정리된 지우의 귀여운 열 손가락과 발가락. 문득, 내 하루가 우리 손톱을 닮았다고 생각해 봐요. 당연히 내 것 보다 네 것이 우선인 생활. 우리는 그렇게 지내고 있네요.
엄마라 불린 지 18개월, 아직도 지우 엄마라는 말이 어색해요. 내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라 주장해 왔던 저. 다른 생명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데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아이를 가진다고 갑자기 부모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마냥 신비롭고 설레던 임신 초기. 출산이 두렵기만 하던 임신 후기. 아기를 낳고선 긴장 상태로 허둥지둥 당장 눈앞에 떨어진 급박한 상황들을 해치우느라 엄마가 된 건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받아 든 건지 판단할 겨를이 없었죠. 어느 틈에 등에 업힌 우울감과 시큰한 고통까지. 무얼 하고 있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분별할 겨를 없이 눈앞의 일을 끝마치는 데 급급한 날들을 보냈었습니다. 어서 하루가 끝나길 바라면서도, 하루가 허망하게 저물어감이 괴로웠죠.
살며 우린 많은 변화를 겪어요. 자연스레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학생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40년 동안 사는 곳과 직장이 여러 번 바뀌었고, 가족과 떨어져 독립생활을 하다 결혼으로 평생 반려자를 만났어요. 때마다 변화에 따른 나의 역할과 상황에 적응해야 했으며, 대부분 제 선택으로 인한 달라짐이었으니 고단해도 감내해 왔어요. 어떤 날엔 이전과 달라질 새로운 시간을 기대하기도 했고요. 아이를 만난 후의 삶은 이 전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끊임없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염려해요. 잠시 멈추거나 도망칠 수 없고, 짊어지는 책임감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자연히 받아들여 왔던 인생의 변화와는 다르게 엄마로의 전환은 아주 오랜 적응 기간이 필요했어요. 억울함을 털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죠. 스스로 만든 변화임에도 쉽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아이를 만나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결정하는 이가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아이의 생활, 상태에 따라 당장 일 분 일 초 뒤가 완전히 바뀌어버리곤 하죠. 무조건 따라야 해요. 거스르긴 힘듭니다. 애초 세웠던 계획 따위는 중요치 않아요. 내가 아닌 이 조그만 녀석이 내 하루를 쥐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당분간은 큰 변동 없이 타의에 의해 반복되는 하루가 계속될 거라는 무력감까지 더해집니다. 혼자만 확연히 달라진 체형에다 왠지 공평치 못하게 느껴지는 육아 분담도 분통을 터지게 만들죠. 어딘가에서 뿔이 자라났어요. 뿔을 계속 자라나 답답한 속을 이리저리 찔러댑니다.
대상 없는 화가 자꾸만 솟아나던 날, 눈이 맞자 웃음이 터진 지우를 보며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지우 마음은 어떨까?’. 괜한 억울함에 갇혀있는 이와 함께 있는 심정에 대해 궁금해졌죠. 열 달을 보낸 어둠에서 나와, 숨을 내쉬었던 순간부터 잠시도 떨어질 수 없던 사람. 어쩌면 지우는 유일하며 절대적일지도 모르는 저와 보내는 매 순간이 새롭고 따뜻할지도 몰라요. 정반대의 감정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자신을 힘겹고 버거워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이는 꽤 슬프지 않을까 작은 속을 헤아려봤어요. 미안해지더라고요. 물론, 마냥 인내하거나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리는 건 어려웠어요. 아이를 낳은 건 저의 결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 과정과 후폭풍에 대해 세세히 알려주지 않았음에 제가 가진 좌절감은 생각보다 컸거든요.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뿔을 갈아내고 다듬었어요. 운동도 시작했고, 단 5분이라도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썼죠. 육아를 일찍 시작한 지인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저란 사람은 고까운 자존심이 있어 과정을 보여주길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늘 완성된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려 하죠. 고집은 내려두고, 힘들고 서툰 과정을 거리낌 없이 털어놨어요. 잘해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공표하며 스스로 허덕이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든 계획하고 벗어남이 없길 바라는, 어쩌면 예상 가능한 벗어남까지 대비해 놓는 성격인 저는 육아를 하며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최 예상대로 하루를 보내주지 않는 아기와 이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몸 상태. 공동 양육자 또한 까다로운 기대치를 채워 줄 수 없으니 답답했고, 억울했고, 분노했고 끝내는 실패 했다 느꼈던 것 같아요. 가만히 지우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결코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없음을 알고,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경우의 수까지 전부 열어두자 마음먹었습니다. 엄마가 되었음을 되뇄어요.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양육자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좌절과 자책보단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는 응원의 말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국은 제 태도와 기분이 지우의 하루 그리고 앞으로의 날을 결정하리란 걸 알겠더라고요. 저 또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고요.
불완전한 저를 믿고, 두 팔 벌려 품에 안기는 지우에게 늘 고마워요. 이 조그만 생명이 제게 끼치는 영향력이 실로 막대하네요. 신생아 지우를 보러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온 적이 있어요. 밥도 잠도 모두 양육자의 손을 빌려야 하는 아이를 보며 “아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이렇게 귀엽게 태어났나 봐.”라고 하더라고요. 꼭 귀여운 판다 이야기 같아 웃어넘겼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우는 ‘아빠’라는 말을 빨리 터뜨렸어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밥을 먹다가도 ‘아빠’를 자주 외치곤 했죠. 현관에서 번호키를 누르는 버튼 소리만 들려도 ‘아빠, 아빠’ 소리치며 퇴근하는 아빠를 맞으러 쪼르르 달려 나가곤 했답니다. 거실 액자 속 아빠를 알아보고 손가락질하며 ‘아빠’를 외치던 날, 마구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모든 부모가 겪는 절차죠? ‘얘, 천재 아니야?’ 자못 심각해졌어요. 결혼사진이라 평소 아빠와는 판이한 모습인 걸 용케 알아보더라고요. 아직 ‘엄마, 아빠’란 말을 못 하는 또래도 많다는데, 우리 아이가 특출 난 것인가 손이 떨려왔습니다. 영재로 TV에 나온 지우 모습까지 상상은 이어지죠. 며칠 뒤, 쇼핑몰 엘리베이터였어요. 지우는 먼저 타고 있던 넉넉히 봐도 20대 중반밖에 안 된 청년을 빤히 바라보다 ‘아빠!’라고 외치고 맙니다. 네모난 공간에 계셨던 모든 분이 웃음이 터졌죠. 저도 그랬고요. 지우 천재 설은 무너졌지만 진지한 작은 얼굴이 귀여워 얼마나 웃었던지. 그제야 깨달아요. 지우 덕에 웃을 일이 참 많다는 걸요. 근래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웃어본 적이 있나 헤아려봅니다. 아이를 만나기 전 가졌던 기쁨과는 또 다른 행복. 뜻 없이 행하는 행동이, 마냥 귀엽게만 들리는 옹알거림이,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동글동글한 귀여운 몸집이 절로 미소를 만들고 가슴 어딘가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요. 예전엔 제때 하는 퇴근과 친구와 기울이는 한 잔 술이, 모두 떠날 때 꾸리는 여행 가방이 고됨에서 절 해방해 주곤 했었습니다. 일상이 변하니 취하는 기쁨 또한 변했네요.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컸다면, 지금은 몹시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가장 무거워요. 어떤가요,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두 내어줘야 하는 녀석이 제 삶을 통째로 바꾸고 있어요.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남은 인생에 한 사람이 더해졌어요. 지우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됐고, 어디든 함께하는 존재가 됐죠. 예전처럼 살 수는 없지만, 반대로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삶을 살 수 있게 됐네요. 이전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실망은 지워버렸어요. 꼭 되돌아가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요.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면 될 테죠?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그만큼 내일이 새로울 거라 믿어요.
내게 와 준 소중한 지우. 널 만나고 한동안은 과분함에 몸 둘 바를 몰랐어. 내가 너의 엄마가 돼도 될는지 부족함에 부끄러웠고, 자신이 없기도 했단다. 깊고 까만 눈과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마주하기엔 스스로 너무 죄 많은 사람이 아닐까 불안감이 컸어. 네가 내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문득 네가 없어질까 두려운 날도 생겼지. 너는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이 되어 그 속에 날 살게 하더라.
엄마의 아침은 잠든 널 살피는 일로 시작해. 곤히 잠든 작은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네가 곁에 있음에 안도한단다. 깨어난 너와 눈 맞추며,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는 약속으로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아. 한 품에 쏙 들어오는 네가 벌써 아쉬운 건 순전히 엄마의 욕심이겠지? 하루하루 무사히 커가는 네게 고마우면서도, 엄마는 어째 매일 마주하는 네 모습에 미련이 남네.
오늘도 빠짐없이 지우와 동네를 걸어. 엄마는 네 손을 잡고 골목을 돌다 그간 많은 걸 놓치고 지났음을 깨달아. 우리 아기는 길가에 떨어진 작은 열매와 꽃봉오리, 흙 속에 박힌 둥근 돌멩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 모든 게 새로울 너에게 세상은 얼마나 궁금한 것들로 가득할까. 작은 손에 쥔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나 나 또한 새로이 눈뜨게 돼. 고개를 늘어뜨리고 지나간 시간을 곱씹으며 힘없이 걸었던 길을, 손끝으로 사방을 느끼며 언제 올지 모를 무언가를 기대하며 찬찬히 걷고 있어. 부드러운 네 손을 잡고서 말이야. 지우는 엄마가 잊고 살았던 많을 걸 되돌려줬어. 지우를 만나고 엄마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경쾌한 음정을 지켜. 못된 결론보단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는 이야기를 사랑하게 됐지. 다시 귀여운 책들을 보게 됐고, 흥겨운 노래를 듣게 되었어. 온종일 신이 났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 할 수 있다면, 엄마는 지우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단다.
잠자리에서 뱉어내는 옹알거림이 듣기 좋아 엄마는 오늘도 네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어.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다 내게 네 몸 어딘가를 붙이고 잠드는 따끈함이 매번 가슴을 뭉클하게 해. 우리가 하나였던 그때가 떠올라, 곁에서 편히 쉬는 네 모습에 신비로움도 느끼지. 아직 작고 여린 너에게 어떻게 세상을 알려줄까, 잠든 지우의 통통한 발을 쓰다듬으며 같은 고민을 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든다. 네가 어떤 사람이 되길 멋대로 바라지 않을게. 과도한 울타리를 치거나 억지 잣대를 세워 묶어두는 일도 없을 거야. 다만, 걱정 많은 잔가지는 덜고, 비옥하고 단단한 바탕이 되어 세상을 버틸 수 있도록 힘이 될게. 부디 건강하고 자유로이, 너의 방향으로 마음껏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네겐 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거야. 매일 품에 안겨 잠드는 널 잊지 못해, 언젠가 네 토양에 잠들어서도 엄마는 너의 귀여운 발을 보드랍게 만져줄게. 사랑해, 지우.
마지막 영국 이야기는 @mylittlecab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