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서울. 배움
서른 후반 지우를 가지고, 자주 병원에 들렀습니다. 초반 출혈이 있어 종합병원으로 옮기기도 했어요. 만 35세 이상 임산부에게는 추가로 권해지는 검사들이 있습니다. 강압적이지 않음에도 썩 반갑진 않아요. 만약을 위한다지만, 문제 많은 임산부란 낙인처럼 느껴져 괜한 심통에 추가 검사는 거절해 버렸습니다. 병원에선 나쁜 경우까지 들려주기도 해, 혹여 작은 말썽이라도 생길까 괜한 객기를 부렸나 후회도 해봤어요. 매번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온갖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뛰어다닙니다. 잘못된 상황을 상상하다 이유 없는 눈물을 차올리기도 합니다. 이때만큼 정상에 집착하는 시기도 없을 거예요. 부디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에 들길.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한 보통의 범주에 자리해 주길 품속 아이에게 손을 얹고는 진심으로 바라게 됩니다.
무사히 태어난 아이를 마주하고, 소박했던 바람엔 금세 욕심이 생겨납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 혹 아이가 개중 돋보인다면 내심 어깨가 올라가요. 지우가 걷기 시작하며 부쩍 또래를 만날 일이 잦아졌어요. 정기적으로 가는 문화센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찾는 놀이터에서 수시로 아이들을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 이름을 익히고 월령까지 외우게 되었죠. 덩치가 비슷해 보이는 아이를 만나면 잊지 않고 달 나이를 묻는 의도엔 상대 양육자에게 같은 처지임을 알리는 동질감도 있지만, 두 아이를 견줄 기회를 잡은 반가운 속내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두 번째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르죠. 태어난 달이 비슷하다면, 두 아이 사이의 유사점과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을 부지런히 비교하게 됩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되어요. 움직임의 정확도라던가, 사물이나 사람에 반응하는 정도, 언어 구사 능력 등 순식간에 모든 걸 살피게 됩니다. 동일 나이대 평균적인 성장에 대한 궁금증이 앞서는 거죠. 물론 여러 대조군에 비해 내 아이가 조금이나마 앞선다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하지만 아쉽게도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아요. 아직 아이에게서 듣지 못한 말이나 운동 능력을 상대 아이에게서 보게 되는 순간, 없던 걱정을 사서 하기 시작합니다. ‘아직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밖에 못 하는데…. 친구는 잘 걷네. 얜 언제 걸으려나….’ 은연중 내뱉은 말속엔 자연스러운 비교가 묻어나기도 합니다. 아이는 저마다 때가 있어, 발달 속도가 모두 같을 순 없어요. 머릿속으로 십분 이해하고 있음에도, 밖에서 또는 웹에서 만난 또래 아이의 모습에 그만 조급함을 느끼고 말죠. 때가 되면 하겠지, 느리게 터지기도 한다면서도 초조함은 사라지질 않아요. 결국, 커지는 불안에 양육자는 나름의 대처를 시작합니다. 어떤 책을 사줘야 할지, 어떤 장난감으로 오감을 깨워줘야 할지, 무엇을 보여줘야 아이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될는지 돌도 지나기 전부터 고심하게 됩니다.
모빌과 딸랑이를 열심히 흔들어주던 지우에게 처음 책을 사줬던 때가 5개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읽을 수도 없는 때라, 장난감처럼 친근히 갖고 놀길 바랐죠. 수없이 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는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웹을 조금만 뒤져보면, 통상 아기에게 처음 사주는 책 목록을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막상 책을 마주한 지우는 낱장을 물고 빠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책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뿌듯함이 느껴졌어요. 어떤 이유로 아기들이 이 책들을 좋아할까 뒤적거리다, 문득 ‘혹시, 나도 교육열이 과해지고 있나.’ 가만히 물어봅니다. 은연중 아직 장난감과 책도 구분 못 할 지우에게 뭔갈 바라고 있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책을 보길 슬그머니 바라는 제 속마음이 느껴졌거든요. 강요를 통한 교육은 없을 거라 단언했기에 순간 겸연쩍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니, 학원 다섯 개도 많이 보내는 편은 아니에요.” 오랜만에 만난 대학 후배, 육아는 몇 년 선배인 동생에게서 들었던 말이에요.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에게 수학, 영어를 주 과목으로 나머지는 예체능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알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학교 밖 교육. 너무도 오래된 제 경험과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과한 듯 느껴지는 건 시대 상황을 너무 몰라서인지도 모르죠. 세 아이를 키우며 학원, 과외, 상담센터까지 하루를 꽉 채워 보낸다는 다른 친구의 고충을 전해 듣다, 버겁다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난 그리 못하겠다고 고백했죠. 아이였던 내가 그리해 본 경험도 없고, 내 자식에게 그리할 자신도 없으며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요. 친구는 주저 없이 답했어요. 본인은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띤 부모님의 교육관이 좋았고, 학원을 보내지 않으려 해도 그 시간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거라 제 미래를 점치더라고요. 전혀 내다보지 못한 세상, 한쪽에선 깨달음이 또 다른 쪽에선 많은 생각이 엉키고 얽혔습니다.
교육을 전공했고, 현장에서 일해온 지 10년이 넘었어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어린아이부터 성인, 개인, 단체 할 것 없이 다양한 내용을 만들고 시행하는 게 제 업무였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고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생활이었습니다. 자연히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 어느 날엔 들떠있고, 또 어느 날엔 지쳐 보였던 그들을 보며 자문하곤 했어요.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세상을 알려줄까? 어떤 방법으로 아이의 가슴과 머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제가 자라왔던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갈 생명을 상상하며, 눈앞에 마주한 교육 현장 속에서 같은 질문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어요. 명쾌한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지만 부담 없이 자율권을 주셨던 부모님의 방안을 본받아 아이가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택하고 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라게 됐어요. 양육자의 역할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믿음으로 지원해 주는 거라 결론 내렸고요. 지우를 낳기 전엔 그리 키울 거라 자신하기도 했었습니다.
지우를 만난 뒤 스스로 얼마나 강단이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직 아기가 어려 뭔갈 택하고 결정할 순 없으니 자연히 결정권은 옆에 붙은 양육자에게 양도됩니다. 문제는 양육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쪽저쪽 열심히 흔들리고 있으니 넘겨준 아이 입장에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양육자는 산 날을 일일로 기록하는 어린 아기를 곁에 두고, 어제와는 무엇이 다른지 집착하듯 살피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에게 어떤 새로운 자극을 줄까 고민합니다. 양육자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겐 충분하다지만, 걱정 많은 이의 생각은 달랐어요. 매일 같은 집에서 같은 사람과 있는 게 따분하지는 않을지,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해 발달이 늦어지는 건 아닐지 함께 놀아줄 시간에 답 없는 걱정이 길어집니다. 영악하게도 이런 양육자의 불안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교구와 교재들이 세상엔 수만 가지가 존재하죠. 이때 이걸 꼭 사줘야 한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흔들대는 마음을 더욱 현혹합니다. 평소 한 고집하던 성미도 금세 팔랑대며 솔깃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가? 늦었나? 지금인가?’ 현란한 광고 문구에 당장 구매 버튼에 손을 올립니다. 제때 뭔갈 제공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까 봐 겁이 나니까요. 주변 양육자들은 바지런히 뭔갈 해주는 듯 보이니,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낫겠다 초조함에 급한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일 년 동안 좋다는 걸 신나게 쫓아다니다 느낀 게 있다면, 세상엔 ‘반드시 이때 아이에게 해줘야 할 것’들이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과 공급에는 한계가 있고, 사실 그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어요. 이게 좋더라, 저게 좋더라는 주변 반응에 혹해 서둘러 구매를 해봐도 정작 당사자인 지우는 별 관심이 없을 때가 많았거든요. 결국은 양육자의 선택입니다. 적당히, 적절 키가 참 어렵지만,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새 책과 놀잇감 사이에서 반드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앞으로 저지를 과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주변에 눈을 돌리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휩쓸리다 이도 저도 안 될 가능성이 커요. 지금 아이의 관심사가 뭔지, 발달 상황이 어떤지 내 아이에게 눈길을 줘야 합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모든 걸 준비했어 보단, 나름의 대중으로 한번 걸러주는 게 아이에겐 도움이 될 거예요. 쉽지 않다는 거,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학 시절 발달과정에 대해 부단히 도 배웠지만, 실전에 통용되기에는 너무 점잖더라고요. 실제 저를 흔들어댄 건 전문가들의 말보다 당장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변 양육자들의 경험담이었으니까요.
오전에 전집을 취급하는 책방에 다녀왔어요. 16개월을 맞은 지우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 알아보니 역시나 종류가 방대하네요. 이전에도 한번 전집을 산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좋다고 입을 모으는 유명한 책이었죠. 가격도 상당해 이게 아이에게 맞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긍정적인 평판에 두고두고 미련이 남아 결국엔 구성이 모두 포함된 전집을 구매해 버렸어요. 지금 꼭 이때, 이걸 사주지 않으면 한걸음 느려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 사그라지질 않더라고요. 사고 보니 역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지우가 책을 잘 봤을까요? 아니요. 몇 달째 책장 아래 칸에 순서 섞임 없이 그대로 꽂혀 있네요. 아이들이 종이가 닳도록 관심을 가진다는 전집이 지우에겐 통하지 않은 거예요. 이 책만 있으면 당장 입이 트이고, 사물에 대한 이해와 관찰력이 좋아질 것만 같았는데, 막상 효과는 미비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 않기 위해 이번엔 전집 중 본보기 책으로 나와 있는 몇 권만 사 돌아왔습니다. 지우가 관심을 보인다면 구매를 검토해 보려고 해요. 내년엔 지우를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양육자의 선택이 중요해지는 순간이죠. 어린이집은 세 곳에 대기를 걸어뒀는데 모두 대기 순위가 꼴찌예요. 기관을 고르느라 고민을 너무도 오래 했거든요. 처음이다 보니 선택이 힘들었어요.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고요. 가정, 민간, 국공립 설립 형태부터 거리, 규모, 운영된 기간 등 살필 게 많아요. 주변 후기는 제각각이니 결국 제 결정이 중요합니다. 다른 조건보다 집에서 가까운지, 오래 근속하신 선생님들이 많은지 나름의 기준을 잡아봤어요. 언제나 완벽한 선택은 없더라고요. 결국, 내 요구에 가장 근접한 답을 택하는 게 최선입니다.
오늘도 대신 부여받은 선택권을 잘 사용했나 하루를 돌아봅니다. 내 뜻 아닌 남의 눈에 흔들리진 않았나 반성도 해 보고요. 지우와 함께 알아갈 세상. 아이와 견고한 블록을 쌓아가듯, 그때 그 자리에 알맞은 조각을 취해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맞춰보려 해요. 어긋나거나 불안정해진다면 다시 쌓아도 좋겠죠. 단번에 맞아 들어갈 순 없으니 시행착오도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높이가 올라가면, 그땐 오롯이 아이에게 손을 넘겨줘야 할 겁니다. 제 몫은 다정하고 굳건히 곁을 지키는 일일 거예요. 지우는 스스로 해낼 테니까요. 진심으로 그 세계를 믿고 응원해 주고 싶어요. 조급하고, 초조하고 비교하는 마음은 내려둔 채 차분히 말이죠.
영국 이야기는 @mylittlecab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