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를 고치고, 나를 숨겼던 도시의 첫 계절
서울은 내가 그렇게 꿈꾸던 곳이었지만,
한 번도 나를 환영한 적이 없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던 날, 나는 혼자였다.
큰 캐리어 하나, 이불 보따리, 낯선 도시의 공기.
새벽 6시, 서울역 플랫폼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혼자 느리게 걷는 사람 같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눈빛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오히려 이상한 위로였다.
“여기선 아무도 날 모른다.
가난했던 내 과거도, 복숭아밭도, 아무도 모른다.”
고시원 방에 처음 들어간 날,
나는 문을 닫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방은 좁았다.
책상 하나, 침대 하나, 창문은 없었고
조그만 선풍기가 벽에 붙어 있었다.
서울의 첫 집은, 내가 그토록 꿈꾸던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실망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한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서울을 시작했다.
지하철 2호선을 처음 탔을 때,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려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까 하다가,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 멈칫했다.
어느 역에서 용기 내어 편의점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물은 어디서 받아요?”
직원이 대답했다.
“기계 앞이요~ 어머, 말투 귀엽다~”
귀엽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모욕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나는 그날 이후, 혼잣말도 서울말처럼 연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묻곤 했다.
“고향이 어디세요?”
“말투가 좀 다르신데~”
“혹시 지방에서 오셨어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언제나
**‘당신은 여기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표정도, 리액션도 조심했다.
혹여 ‘티 나지 않게’
혹여 ‘불편하지 않게’
서울에선 아무도 날 모를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너무 쉽게 들켰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고시원 방에서, 수업 듣는 강의실 안에서도.
서울은 날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외로웠던 건,
친구들이 합격의 기쁨을 누리며
부모님이 보내주는 용돈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나는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먼저 찾아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카페, 편의점, 행사 보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나는 한 끼를 위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하철역을 달렸고,
밤에는 고시원 방에서 밀린 과제를 끼니 대신 삼켰다.
친구들이 교내 커뮤니티에 여행 계획을 올리고,
맛집 투어 사진을 올릴 때,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달 생활비가 될까?’를 고민했다.
누군가에겐 시작이 축제였지만,
나에겐 시작이 생존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말투를 바꾸고, 나를 숨기고, 존재를 접어가며 살았던 그 계절.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그렇게라도 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다음 편 예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따라갔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늘 가난했다.
지갑보다, 마음이 더 아슬아슬했던 그 시절.
**6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가난할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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