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셨네요~ 말씀대로 누군가와 함께”
“네~ 별일 없으셨죠? 여기는 제 여자친구예요”
“입소문이 잘 났는지 주말엔 좀 많이 붐비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오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장님 이야기도 이곳 이야기도”
“그에 비해 전 들은 게 너무 없는데요ㅎ 그저 지난번에 오셨을 때 분위기가 조금 달라서 좋은 소식이 있는 건가?라고 짐작한 정도일 뿐”
“ㅎㅎ 그렇게 티 나게 하면서 다녔나요?”
“그럼요~ 그 이전에 손님이 저희 가게 오실 때랑은 확연히 달랐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장님의 배려로 좋은 자리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먹을 디저트를 시켜서 앉았다. 날씨가 조금만 덜 더웠어도 밖에 앉았을 텐데 이젠 6월 말이다 보니 에어컨이 없는 곳에 앉아 있는 건 쉽지가 않다.
“여기 되게 초록초록 하다~ 오빠 이런 곳 좋아하는구나”
“응 난 소위 말하는 오션뷰나 강뷰보다는 산뷰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난 원래는 오션뷰 같은 물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산뷰도 너무 좋은데~ 오빠 덕분에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 고마워”
“슬이가 좋다면 나도 좋네~ 나도 고마워”
“근데 오빠는 왜 여기 올 때마다 죽상이었어?”
“죽상이라니ㅎ 그 정도는 아니고 뭔가 고민이 있거나 생각할 것이 있을 때마다 왔었던 거 같긴 해. 그래서 사장님이 그렇게 느끼시는 걸 수도”
“예를 들면?”
“응? 아 그냥 일적인 것도 그렇고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예를 들면? 나한테 말 못 하는 그런 일들이야? 난 알고 싶은데”
그렇게 내가 지금 회사 이전에 창업을 해서 망했던 이야기, 그러면서 생긴 부모와의 마찰 등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 줬다. 그 당시에도 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이 커피집의 사장님 마저 내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고 하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더 잘 보였을 수도.
“그랬구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네…”
“그때는 그랬던 거 같은데 지나고 나니 나름 경험이었는지. 지금 일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긴 해~”
“그게 다야? 모 전여친과 이별 후 왔다던지 그런 건 없었어?”
“없어~ 그런 적은”
“에이~ 난 또 그런 적도 있는 순정파 남자인 줄 알았더니ㅎ”
“그런 적이 있으면 순정파인 거야?”
“있지 말해봐바~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
이런 상황에서 절대 말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 역시 연애를 할 때 가장 금기시하는 것 중 하나이다. 지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하지만 ‘하루 만회하기’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이 시점에서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어리석고도 멍청한 생각이라는 걸 알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았다. 언제나 그런 후회는 해봐야 소용 없을 때 쓰나미처럼 오기 때문에.
“괜찮아 말해봐~ 어차피 지금 여자친구는 나인데 뭔 상관이야”
절대 넘어가면 안 되는 말이다.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등등.
순간 고민을 하다가 나는 테스팅해 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 이전 연애가 짧은 연애가 아니었기에 그 연애가 끝나고 나서의 충격은 조금 오래가긴 했었다. 그렇게 난 지난 연애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모 대단히 자세하게는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이 상할 정도인 거 같았다. 굳이 지금 여자친구에게 과거의 연애 이야기는 정도에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 기분 나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걸 그렇게 궁금해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자기 남자친구의 반응을 보고 싶은 것뿐이다.
30대 중반 정도의 사람이라면 과거의 연애가 한두 번은 있게 마련이다.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그 반응이 괴로워하는 반응이던,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이던.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큰 변화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귀 기울여 듣는 거 같지도 않았다.
“모 그랬었어. 다 지난 일이지 뭐. 괜한 이야기를 한 건가?”
“음… '괜찮아'라고는 이야기했지만 역시 괜찮지가 않네~ 그래도 뭐 지나간 이야기니까”
“역시 괜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아니야~ 괜찮아. 뭐 오빠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 보거나 못해 봤다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근데 그렇게 깊은 관계의 연애가 있었다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날의 분위기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가장 최악의 상태로 흘러갔다. 나쁘다면 사과를 하면 되고 좋으면 그냥 즐기면 되는데 이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마치 서로 문자를 주고받는데 이모티콘이나 ‘~’ ‘ㅋㅋ’ ‘ㅎㅎ’ 하나 없이 글자만 서로 주고받는 그런 느낌의 상태. 도통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를 알 수 없는,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 기류로 알 수 있는 그런 상태로 그날 마무리가 되었다.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집에 와서 난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이 월요일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또 한 번의 일요일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