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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May 17. 2024

#2020092空

‘오빠 나 어디로 가면 돼?’

어젯밤에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고 잔 탓일 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좀 아팠다. 정신도 몽롱한 상태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놀라서 침대에서 발사되어 일어날 뻔했다. 한참을 멍하니 문자를 보고 있다 오늘 날짜를 확인해 보니 2020년 9월 21일(일).

그렇다. 다시금 ‘하루 만회 하기’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럼 어제의 나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생겼다. 나는 기쁜 마음에 혼자만의 포효를 하고 있는 시점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지금 일어났어? 웬일이래 늦잠을 다자고~ 이사가 힘들긴 한가 보네. 나 지금 나갈 건데 어디로 가면 돼요?”

“응~ 조금 피곤했나 봐. 뭐 타고 올 거야? 지하철?”

“아니 짐이 좀 있어서 택시 타고 가려고~ 주소 알려 줘”

“알겠어~ 나도 아직 주소를 정확히 외우진 못해서 찾아보고 알려 줄게”


그녀에게 주소를 보내 주고 바로 일어나서 그 ‘문제의 박스’를 찾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싸면서 그냥 생각 없이 넣어 둔 거라서 도저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 어떻게 하지? 거의 올 시간이 됐는데… 도저히 못 찾겠네’

온몸에서 식은땀인지 아님 진짜 더워서 땀이 나는지 모를 정체가 불분명한 땀이 온몸에서 났다. 어제 아니 오늘 뭐 암튼, 경험 상 그녀가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나는 찾는 걸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대로 그녀가 그 박스를 찾게 되면 나는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루 만회 하기’ 능력은 지금까지는 단 하루만 단 한 번만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음… 그럼 별 수 없이 거짓말을 해서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 뭐라고 하지?’ 

그때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나 5분 이따 도착해~ 내려와 남친 짐 많아~”

‘응 알겠어~’


나는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어떤 선의의 거짓말(?)-지극히 나에게만 선의인- 을 해야 할지를.

그녀가 탄 택시가 내 앞에 정차하고 그녀가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환한 미소와 함께. 

“짐이 많다고 하더니 어디 있어?”

“걱정 말아~ 트렁크에 있지”

그녀의 말 대로 택시 트렁크 가득 휴지며 세제 등 많은 짐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본 거지만 정작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조차 못했었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있어서. 

“뭐가 이렇게 많아? 평생 쓸 휴지인데 ㅋ”

“이것저것 사다 보니 좀 나아졌어 그리고 엄마가 좀 가져다주라고 싸 주신 것도 있고”

“어우 감사드려야겠네~”

“괜찮아~ 오빠가 나한테 잘하니까 우리 엄마도 오빠가 맘에 드시는 듯”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지만 별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오늘을 잘 넘겨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과거에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하루살이로 살지는 않았는데. 점점 비겁해지고 지질해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한 생각만 들었다. 

집에 짐을 올려 두고 나름 정리를 하는 동안 그녀는 방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오빠 근데 방이 더 커진 거야? 지난번에 살던 곳보다는 더 넓은 거 같은데?”

“조금 그렇긴 한데 전에 살던 곳은 분리형이었고 지금은 그냥 스튜디오 형식이라 더 그렇게 보이는 거 같긴 해~”

“아~ 그럼 원래도 요리는 잘 안 해 먹지만 더 안 해 먹겠네~ 냄새 밴다고 깔끔쟁이 아저씨~”

“음… 그런가? 그럴 수도 있을 듯 ㅋ”

“공청 하나 사 줄 가?”

“아니야~ 괜찮아. 아 근데 슬아 우리 나가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올까?”

“왜? 집에서 시켜 먹어 짜장면~ 이사했으니”

“ㅋㅋ 짜장면은 어제 먹었어. 이사하면서 보니 수도랑 보일러가 조금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 집주인한테 말했더니 오늘 봐준다고 아무래도 불편할 테니 잠깐 나갔다 올 수 있냐고 해서”

“그래? 그럼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들만 넣고 나가자~ 나도 보진 않았는데 김치가 있는 거 같던데… ㅋ”

“대박~ 그래 어디 있어?”

“나도 몰라~ 냄새를 따라서 찾아봐 ㅎ”


그녀 말대로 냄새를 따라서 가다 보니 작은 하지만 엄청 타이트하게 포장이 되어 있는 작은 통이 있었다. 나는 확인을 하고 마치 대단한 걸 찾은 것처럼

“찾았다~”

하면서 김치통으로 추정되는 걸 들고 그녀를 봤을 때 그녀는 그 문제의 박스로 추정되는 걸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열어 봐서 미안한데 이거 왜 아직 가지고 있어?”

이런 지옥 같은 같은 경험을 또 하게 될 줄이야. 그냥 다른 말 없이 나는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다른 어떤 변명처럼 들릴 말들을 일절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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