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어른들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 시나리오가 좋다며 투자를 약속한 사람이 자금이 필요할 때가 되자 돈을 보내주지 않아서 곤경에 처한 적도 있었고, 투고 기회를 주겠다고 해놓고선 약속한 때에 글을 보내려고 하니 '대학생에게 일을 맡기기는 어렵다'며 갑자기 말을 바꾸는 어른도 있었다.
아직 사회에 발을 딛지도 않은 대학생 시절에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무슨 부탁을 받아도 덜컥 의심부터 하게 되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사람 얼굴도 쳐다보기 싫은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참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훗날 비슷한 일이 있을 때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기도 했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어른'의 입장에서 상대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될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좋은 어른이 되었다고 장담은 못한다. 그래도 최소한 나쁜 어른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겪다 보니 나에게 이제 '가짜 어른'을 구별하는 나만의 감정법이 생기기도 했는데, 대체로 그들은 다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1. 책임을 지지 않는다.
2. 거절도 잘 하지 않는다.(책임없는 수락)
3. 그러면서도 영광이나 명예는 누리려고 한다.
영화 <인턴>(2019)을 보면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다 은퇴하고 급성장하는 IT회사에 인턴으로 재취업한 벤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맥북을 들고 귀에 에어팟을 끼고 다닐 때 펜과 수첩이 잘 정리된 중역 가방을 들고 나타난 벤은 마치 인생 교과서를 AR로 만든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른 태도와 모습으로 직원들의 호기심과 환심을 사게 되는데, 사실 여기까지는 현대 문명에서 인간관계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일 수 있다.
예컨대 영화 <킬링 디어>에 등장하는 심장전문의 머피는 무척 세련되고 예의 바르며 적절한 유머 감각까지 지닌 현대인의 전형이지만 실상 그의 내막엔 의료 사고로 죽은 환자의 아들을 책임지지 않으려 납치까지 일삼는 흉악한 본성이 숨겨져 있다. 그런 것처럼, 겉으로 예의 바르고 똑바르게 보인다고 해서 쉽게 좋은 어른이라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볼 때 항상 주의깊게 보아야할 것은 '책임과 관련된 행동'이다. <인턴>의 벤은 행동거지만 반듯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지 알고 있다. 동기로 들어온 인턴 동료가 집에서 쫓겨날 판이라며 새집을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가만히 고민을 듣고만 있던 벤은 그가 출퇴근으로 몇 시간은 걸리는 먼 곳에 집을 구했다고 하자 도저히 안 되겠다며 집을 구할 때만이라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권한다.
벤은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도움을 주는 일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한 일은 도와주고,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른으로서 받는 대접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장점을 찾는데 더 집중한다. 사장 쥴스가 비서로서의 자기 업무를 칭찬하자 칭찬을 곧장 받지 않고 원래 비서였던 베키의 덕분이었다며 베키에게도 칭찬을 해주라고 권한다.
온갖 간섭과 참견은 다하면서도 문제 해결엔 도움을 주지 않고 아랫사람의 성과까지 가로채려 드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면, 벤은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한 사람이다. 멋진 매너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또한 조언을 주는 입장이 되려면 어떤 의무를 다해야하는지도 안다. 흠잡을 데 없는 이런 완벽한 어른을 실제로 보기는 당연히 굉장히 힘들다. 이건 정말이지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인간 모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벤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그건 최소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며, 적어도 행동에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3)의 주인공 프랭크를 잡으러 전국 일주를 하게 되는 FBI 요원 칼은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고 동료들에게 시시콜콜한 농담 한 번 던지지 않는 그야말로 매력과 담을 쌓은 인물이지만, 모두가 포기한 프랭크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싸워주고 사법거래를 통해 죄를 씻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
물론 처음에 프랭크는 칼을 믿지 않고 그를 골탕 먹이는데 재미 들린 듯 이리저리 농락하곤 했지만 유인하면 유인하는 대로, 전화를 걸면 전화를 거는 대로,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꼼수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당해주는(?) 칼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신뢰감을 얻는다. 비록 범죄자와 추격하는 형사의 관계였어도 칼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랭크 때문에 골탕도 먹고 직장에서 한심한 퇴물 취급도 받지만 칼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망가진 프랭크의 삶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의 평판까지 내건다. 멍청한 사람이라고 비아냥대다가도 어느 순간 프랭크가 진심으로 칼을 따르게 된 것은 책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차장님.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죠. 평소대로만 하면, 이대로만 하면 정직원이 되는 거죠?"
"안 될 거다. 데이터는 그래. 대학 4년, 어학연수 다녀온 사람도 많고, 그 사람들도 취직 못해서 고통받고 있어. 그들이 그 시간에 지불한 비용과 노력을 생각해 본다면, 취업 우선순위에 밀리는 게 당연한 걸 지도 몰라."
tvN 드라마 <미생>(2014)에서 계약직 만기가 다가오는 장그래에게 오상식 차장은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냐는 그의 질문에 단칼에 안 된다고 말한다. 나중에 오상식 차장에게 비슷한 과거가 있어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간절한 누군가에게 어떤 소망을 끊어낸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꼭 어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타인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거나 미움받을 만한 일을 꺼려한다. 그래서 대책이 없을 때도 좋은 말을 꺼내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위로를 건네지만, 진짜 어른은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일을 거절하고, 그 거절한 반대급부로 닥쳐올 원성이나 관계의 악화를 피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책임지지 않음을 책임짐'과 같은 것이다. HBO 드라마 <체르노빌>(2019)에서 땅을 파러온 광부들이 슈체르비나 장관에게 "일 끝나면 뭐라도 챙겨줍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모르겠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도 비슷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해두지만, 이건 꼭 책임져야 할 일을 피하려고 온갖 변명을 일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책임을 피하는 진짜 어른의 행동은 처음부터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고, 또한 책임이 발생할 만큼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상대가 난처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시작되지 않게 도와준다.
어떤 일이든 약속을 하고서 책임을 지는 어른도 참된 어른이지만, 미움받고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대책 없는 일을 벌이지 않는 것도 참된 어른의 모습 중 하나다. 자신이 책임져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그런 무리한 부탁을 왜 하냐고 역정을 내지도 않으며, 자신의 힘이 부족한 탓이라며 겸손을 갖춘다. 이 정도만 되어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지언정, 무리한 수를 두다가 일을 더 어그러뜨리는 지경까지 몰아붙지지는 않게 된다.
실로 가장 문제가 되는 최악의 어른은 어떤 사태에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사태가 가져오는 과실이나 명예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를 일으킨 총책임자 디아틀로프는 승진에 눈이 멀어 원전 소장과 부소장과 함께 안전장치를 해제한 극한의 실험을 준비하고서 영문도 모른 채 실험에 투입된 운전원들을 다그친다. 원전 운전사인 아키모프에게 계속해서 위험한 지시를 내리고 보다못한 아키모프가 지시를 서류로 남겨줄 것을 요청하지만 디아틀로프는 그가 건넨 펜과 종이를 내리치며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라며 협박한다. 혹시나 일이 잘못 되더라도 훗날 그가 법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장실에 가있었고, 난 모르는 일이다' 같은 핑계를 대기 위해서 말이다.
그나마도 자신의 이익만 채우면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최소한 존경이나 칭송은 바라지 않게 되지만, 그조차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에게 끊임없이 원인을 찾는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며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이 항상 좋은 사람이며 좋은 멘토라는 망상에 가까운 착각을 하고 있는 이 가짜 어른들은 당연히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잘못을 전가시키고, 위계나 권위로 상대를 억압하거나 자신 같이 훌륭한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상대에게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책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문제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어른이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저버린 채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거나 오래있다보면 결국 나 자신도 무기력해지거나 물들 수밖에 없다. 마치 <미생>에서 한석율이 성준식 대리를 보고서 "저 놈도 처음엔 안 그랬을 거 아냐"라고 한탄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가짜 어른들을 멀리 하는 건 당장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곧 어른이 될 때 타인에게 똑같은 가해자가 될 확률을 없애는 것과도 같다.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가짜 어른'이라도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로써 책임의 무게를 깨닫고 스스로 행하며 타인에게 배울 수 있으니까. 인생은 길고, 결국은 나도 어른으로 불릴 날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