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오월의 종
살다 보면 좋은 일은 쉽게 잊히고, 실수는 자꾸만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시기가 있다. 누구는 육아도 일도 잘 해내는데 왜 내 삶은 문제 투성일까? 종종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 안의 시선이 온통 바깥쪽을 향해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불행은 시작된다.
윤여정 배우의 어머니는 평생 '연기는 김혜자가 잘하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 김혜자처럼 연기하지 말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세상에 똑같은 배우가 또 필요하진 않으니까요. 나는 나다워야 해요'라고 하는 그녀의 인터뷰를 봤다.
그 누구도 아닌 나다워야 한다… 제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노년의 배우라도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의심, 미움 그리고 혼돈의 시간을 지낸 후에야 비로소 그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올 수 있었을 테고, 다시는 그런 혼란을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에서 나온 것일 테다.
속상해서 빵을 샀다는 유행어 속 엄마처럼, 오늘은 하드빵의 명가 오월의 종으로 향한다.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되면 그저 그림 속 빵 같은 비주얼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가보면 빵보다는 빵에 몰두하고 있는 제빵사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이런 진지함은 정웅 대표의 스타일인 듯싶다. 그는 남이 어떻게 빵을 먹냐 보다, 내가 어떤 빵을 만들고 싶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정웅 대표의 신념은 아마도 고객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보다는 업 자체의 본질에 대한 개인의 신념과 마음가짐을 늘 새롭게 다진다는 뜻일 테다. 그런 이유에서 남들이 주도하는 트렌드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새로 옮긴 가게 입구에 들어서니, 할리우드 핸드프린팅 거리처럼 정웅 대표의 손도장이 있다. 마치 이곳은 진짜 제대로 된 빵을 만드는 공간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새롭게 오픈한 매장은 더더욱 제빵 학교 같아졌고, 빵의 종류도 훨씬 더 다양해져 구경만 해도 재미가 있다. 오월의 종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바질 치즈 브레드와 긴 소시지를 품은 바게트가 인상적이었다.
오월의 종도 개업 초반에 문을 닫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흔한 빵집과는 너무도 다른 스타일의 빵이라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오월의 종 다움‘을 지켜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다워야 한다' 그건 자신이 그동안 애써 이뤄 놓은 것들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래야 결국 남들도 존중, 존경하게 되는 것.
정웅 대표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남들이 추구하는 것 말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해내고 싶은지" 답해보는 것. 그리고서 그 답을 이후로도 오래오래 지켜내는 것.
애쓴 것들은 사라라 지지 않으니까.
오늘도 좋은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