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폴 앤 폴리나
어느 날 출근길 SNS에서 본 여배우의 수상 소감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얼마든지 꺾여도 괜찮아요. 마음 하나 있으면 그 마음이 믿음이 되어서,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가 될 수 있도록 엔진이 되어줄 테니…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에요"
워킹맘이 된 뒤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꺾인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날들이 쌓여갈 때, 엄마로서도 회사원으로서도 무리하게 될 때, 잦은 야근으로 남편과 다투게 될 때, 그리고 앞으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될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중요한 건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이지.
연희동 주택가 어느 골목길에 많은 이들의 식탁을 책임지는 폴 앤 폴리나가 있다. 정성 들여 만든 빵은 사람들도 바로 알아채는 건지 작업대 한편 ‘예약' 팻말 아래 빵이 늘 가득하다. 수년 째 찾는 단골도 많다고 해서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진열대가 꽤 소소했다. 형형색색의 구움 과자나 케이크 메뉴도 없고, 요즘 유행하는 빵도 없었다.
바게트나 치아바타 같은 식사빵들이 공들여 만든 자태로 놓여있었다. 가장 유명한 치아바타 그리고 크루아상을 먹어보았다. 설탕, 버터를 넣지 않고 올리브 오일로 반죽했다는 치아바타는 기공이 많았고 (빵 단면의 구멍이 크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쫀득하고, 식감은 단단한데 또 부드러웠다. 특히 달지 않은 맛의 조화가 좋았다. 크루아상은 버터가 충분히 들어가 풍미가 좋은데 치아바타와 마찬가지로 전혀 단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느낀 폴 앤 폴리나의 빵들은 다른 재료들과 만났을 때 탄탄한 베이스가 되어줄 만한 훌륭란 균형 잡힌 빵인 것 같았다.
‘우리는 빵으로 인류의 식문화를 이롭게 한다'가 폴앤 폴리나의 미션도 인상적이었다. 종종 아기의 아침으로 빵과 요플레를 주는데, 좋은 재료로 만들어 속도 편안한 빵이라고 한다.
워킹맘은 외롭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수가 있었고, 아이를 처음 키울 때는 조리원 동기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워킹맘의 시작에는 아무도 없다.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가정이 없는 것처럼, 집에 오면 회사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언제나 스스로에게 너무 중요한 어느 한 부분을 늘 덮어둔 채 살아간다. 그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으로부터 날 구해내는 건 길 위에서 워킹맘들이다. 출근 전 함께 아이와 병원에 다녀오는, 빵집에 함께 빵을 고르는,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힘이 난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내는 워킹맘들을 보면서 속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출근길 풍경들은 넘어져 있는 나를 다시 한번 일으켜준다.
나도 역시 그저 이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이름 모를 어느 워킹맘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는 매달 발행하고 있는 이 글들이 그들에게 닿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그래서 지금 가는 길을 믿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소망해 본다.
오늘도 좋은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