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4일 차
“에취!”
맙소사! 엄마까지 감기에 걸렸다니.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세라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은 학교 가는 길 뿐인데. 오늘은 아빠랑 함께다. 기운이 쭉 빠지고 속이 갑갑하다.
“엄마는 왜 감기에 걸렸어?”
내 질문에 아빠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열심히 일해서 그렇지.”
열심히 일하는 데 감기에 걸렸다니. 세라 말처럼 바보가 아닌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멀쩡하지?
아니, 아니다.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바보란 건 말이 안 된다. 세라 말에 휘둘리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 생각보다 불안한 마음이 더 크게 와닿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콜록거렸기 때문이다. 기침하는 척을 해야 할까? 그 순간 자리에 앉아서 웃고 있던 세라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반에서 감기에 안 걸린 건 동식이랑 민아뿐이네.”
세라의 말에 동식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이상하게 몸을 흔들었다.
“모든 감기 바이러스를 잘근잘근. 쩝쩝. 나는 바이러스도 씹어서 소화시키는 튼튼한 몸이라고!”
그 말에 모두 "와하하하."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동식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였으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은 세라의 말을 믿지 않을까? 다들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어떻게든 감기에 걸려야 하는 걸까?
웃으며 교실을 뛰어다녀며 아이들을 웃기고 있는 동식이가 자꾸 눈에 띄었다. 그 애는 너무 바보 같았다. 왜 하필 우리 둘만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까. 차라리 좀 얌전한 아이랑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괜찮을 텐데. 동식이는 바보도 아니면서 왜 자꾸 바보처럼 구는 거야. 이러면 진짜 바보만 감기에 안 걸리는 것 같잖아.
바보 같은 말에 휩쓸리긴 싫지만 적어도 우리 반 애들은 세라의 말을 믿는 분위기다. 어쩔 수 없이 감기에 걸리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바보가 아니란 걸 알릴 수 있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감기 걸리기 작전을 시작했다.
손도 씻지 않았고, 일부러 공부할 때 배꼽이 보이도록 했다. 효과가 있는지 살살 배가 아파졌다. 이대로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았는데 갑자기 배가 따뜻해졌다. 검둥이가 내 배에 바싹 붙어 누웠기 때문이다. 꼭 손난로를 배에 붙인 것처럼 배가 따뜻했다.
노력해서 감기에 걸리기가 힘들다면 감기에 옮으면 된다.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아빠가 자라고 해도 버틸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다.
기운 없어 보이는 엄마는 평소보다 더 두꺼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곧 욕실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엄마가 물을 마시고 내려놓은 머그잔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마신 컵에 물을 따랐다. 그리고 엄마의 립스틱 자국 모양 그대로 입을 댔다.
생각보다 감기에 걸리는 일이 어려웠다. 엄마를 따라다녀도 감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 옆에 더 있고 싶었지만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지만 이대로 있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깜빡하고 잠이 들 뻔했는데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살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감기에 옮지 않으려고 아빠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아빠 옆에서 자던 검둥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보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검둥이에게 보내고 엄마가 있는 부모님 방을 살며시 열었다.
살금살금, 잠이 든 엄마의 품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최대한 닿지 않으면서도 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 엄마의 얼굴 밑에 조심조심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엄마의 숨을 삼켰다.
이렇게 하면 내일은 감기에 걸려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