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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Jun 13. 2017

편지를 읽고 울었다

Essay


얼마 전 나의 생일을 앞두고 그가 편지 한 통을 써줬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우리가 거쳐 왔던 여러 공간을 중심으로 추억을 차근차근 짚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함께 나눈 약속들을 되새겼다. 사랑이 은은하게 베인 점잖은 편지였다. 진심이 느껴졌고, 고마웠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마냥 들떴던 예전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전보다 덜 좋았다. 편지를 다시 읽어봤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엔 분명 사랑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2009년부터 그가 1년에 한두 통씩 써준 카드나 편지를 보관해둔 편지함이었다. 그날 받은 편지를 맨 위에 포개어 놓고 뚜껑을 닫으려다가, 안에 있던 편지를 다 꺼냈다. 최근 것부터 읽어 내려갔다. 과거로, 과거로 시간이 미끄러졌다. 세월을 거슬러 갈수록 편지의 내용은 귀엽고 발랄해졌다. 경박하고 주책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과거의 편지를 쓴 사람과 오늘의 편지를 쓴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졌다. 비로소 세월이 실감 났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닌, ‘그’가 보낸 8년의 시간을 생각하게 됐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고시 공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불가피했던 신입학과 편입, 2년간의 군 생활, 그리고 다시 공부하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는 소소하게 행복했으나, 그에게는 고된 시간이었다. 녹록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그동안 그는 앳된 소년 같았던 청년에서 아저씨 티가 나는 어른이 됐다. 자연스러운 변화인 걸 알면서도 속상했다.


내가 그의 편지를 받고 왠지 모를 낯섦을 느끼고, 좋지만은 않았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편지에는 한풀 꺾여버린 장난기, 메마른 감성, 점점 더 세게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녹아 있었다.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해도 종종 참치횟집에서 그와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참치를 먹을 때 그가 가장 신나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에는 내가 참치를 너무 많이 먹기는 한다. 그보다 더 잘 먹는다. 그렇지만, 첫 번째 이유는 정말로 그가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그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름대로 해볼 테지만,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다. 모든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에 자격이 있다면, 충분한 사람이니까.


2017년 6월


 책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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