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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Nov 24. 2016

순댓국과 먹는 즐거움

순댓국 예찬 그리고 소곱창 사랑


회사가 이전하기 전 건물 가까운 곳엔 내 출근의 기쁨이자 원동력인 순댓국집이 하나 있었다. 새로운 건물로 이사 와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먹거리에 대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많은 종류도 시큰둥하게 느껴질 만큼 순댓국에는 비할 게 못되었다.

      

전에 회사는 공단 내 위치했었고 식사를 해결하는 그 나름의 특징이 있었다. 다수의 제조업체들이 작지만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외부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 매점 형태의 식당도 존재했다. 그리고 공구상가 내 식당당연히  굳이 찾아가자면 다양한 음식을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짧은 점심시간을 핑계로 자주 이용하지는 못했다.      


은행과 기관이 모여 만들어진 우리 회사 건물에도 구내식당이 있긴 다. 그러나 충분한 식수가 확보되지 않아 점차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했고 갈수록 식단은 부실해졌으며 결국 저녁 식사 제공을 중단하더니 갑자기 업체가 교체되기도 하면서 늘 점심시간을 불안하게만 했다.      


그 사이 나의 허기를 채워주고 불만을 끓어오르지 않도록 지켜준 것이 바로 순댓국이었다. 그냥 순댓국이 아니라 내가 가는 바로 그 식당의 순댓국. 신기하게 먹을 때마다 맛있고 이상하게 먹을수록 맛있는 정말 기특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우선 보글보글 뚝배기에 담겨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겉은 맑지만 속에는 건더기와 특제 양념을 숨긴 본체가 나온다. “뜨거워요.”를 외치며 두 손으로 각자 자리에 하나씩 놓아주는 언니는 내가 오면 늘 청양고추 썬 것을 한 접시 더 준다. 추가로 부탁하기도 했으니 기억하는 것일 테지만 하루에 점심, 저녁 두끼를 해결하기도 하고 집에 포장해 가는 것도 부지기수며 회사 사람이 아닌 지인까지 끌고 오는 유난스레 자주 오는 손님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컸을 것이다.      


이젠 국물을 젓가락으로 살짝 휘저어 양념을 풀고 크게 썰어 담근 깍두기를 두 개 국물 밑에 깔아놓고 무채까지 한 젓가락 크게 집어넣는다. 그리고 청양 고추 한 접시를 털어 넣고 부추를 마저 올려 다시 한번 섞어 주면 기본 세팅이 끝난다. 밥은 먹는 동안 불어나기 때문에 반 공기만 한쪽에 말아두고 자, 이제 시작이다.     

 

숟가락은 왼손으로 잡고 고기를 건져 그 위에 살포시 놓는다. 새우젓을 딱 하나씩만 올리고 너무 짜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게 맛본다. 살코기로만 된 것, 기름기가 좀 더 있는 것, 꼬들꼬들한 것의 종류에 따라 청양고추에 된장을 찍어 같이 먹기도 하고 중간중간 양파로 입가심도 해준다.      


그러다 국물 속에 묻어두어 살짝 익은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물고, 또 하나 익혀둔 무채를 씹어본다. 아삭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은 중간의 식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이쯤 해서 밥을 한 숟가락 국물과 함께 떠먹고는 이번에는 국물에 넣어두지 않은 날것의 무채를 한 입 먹는다. 이땐 아삭하고 상큼한 맛이 입을 개운하게 해주어 다시 또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아, 맛있어!)     


다양한 사람들과 식당을 찾으면 먹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유난히도 부추를 많이 넣는 사람, 그냥 기본으로 깔끔하게 먹는 사람, 고기 건더기는 빼고 순대만 넣어달라는 사람,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먹는 사람. 그리고 고기를 처음부터 건져놓고 결국은 남겨 내가 더 먹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사람.(내가 제일로 반기는 유형, 남편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자주 함께 먹는 사람들과는 서로의 기호를 파악하고 있다. 순댓국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부터 잠시 정적이 흐르며 이것저것 넣느라 분주히 손만 바삐 움직이는 상황이 이어진다. 서로에게 익숙한 듯 치르는 이 의식 속에 단 한 명이라도 새로운 사람이 추가되면 우리의 모습은 설게 읽힌다. 눈만 바삐 움직이며 누구의 것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재밌다.      

사진출처 : 이미지속 블로그, 제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의 음식 사진인데 사진을 잘 찍어주셨네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사실 나는 순댓국보다 더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소곱창’이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봐도 나는 돼지, 소의 부속물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돌이켜보면 이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기도 다.


이유인즉슨 대부분 남자 상사들과 일을 하고 남자 직원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던 나는 그들이 속풀이 해장국을 찾고, 술안주로 선택하는 음식을 잘 먹어주는 몇 안 되는 여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러나 그들이 원해서 내가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겸사겸사 그들이 먹게 되는 상황은 내가 의도하지 않는 순간에도 꾸준히 좋은 작용을 했던 것 같다.


보이는 외모보다 털털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아서 좋다는 말, 칭찬인지 애매하지만 칭찬의 의미를 담은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그런 이미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순댓국과 성격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렇게 맛있으면 그만이지. 겨울이 와서 좋은 하나는 곱창을 먹기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순댓국을 한 그릇 먹은 저녁, 순댓국 예찬에 빠졌으니 이제 당분간은 곱창 앓이가 시작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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