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경복궁 안에서 발견한 의미

by 하람 Mar 04. 2025

궁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갑자기 타임리프 한 것처럼 과거로 뚝 떨어진 느낌. 

현실의 스트레스를 뚝 떼어내고 새로운 시공간으로 넘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멀리 여행가지 않아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궁을 참 많이 다녔더랬다.

심지어 생일에 혼자 경복궁에 간 적도 있다. 오전까지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 혼자 경복궁에 갔는데

매표해 주시던 분이 깜짝 놀라던 기억이 난다. 


고즈넉한 궁을 돌며 책에서 읽었던 의미 하나하나를 찾았다. 그냥 봤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

진짜 스윽 둘러보면 끝나는 궁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붕에 있는 귀여운 서유기부터 숨어있는 예쁜 굴뚝, 새가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는 그물과 삼지창까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내 눈에 확대된 것처럼 짠! 나타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이제 궁은 무언가 행사가 있을 때 사진을 찍거나 구경하러 가는 곳이 되었다.

경복궁에 발걸음을 안 한지는 무척 오래다. 그런데 이번에 하연님의 경복궁 투어를 다녀오며

그때 만났던 경복궁과 새로 알게 된 경복궁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경복궁은 의미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숨어있는 의미 찾기를 좋아하는데 그동안 몰랐던 경복궁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궁이 살아있는 것 같았고 그 안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근정전 바닥을 울퉁불퉁하게 한 것은 신하들이 뛰지 못하게 함이요 햇빛에 눈이 부시지 말라는 의미가 있었다. 눈으로 봤을 때는 알 수 없지만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지대 차이를 둬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했다. 화재에 취약한 건물이기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궁 곳곳에 담겨 있었다.

수(水)라는 글자 안에 용(龍)을 천 번 써서 근정전 위에 넣어놓고 드므를 만들어 화재를 예방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화재 악귀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가길 바라는 마음은 재치 있게도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초의 소방서 금화도감이 신설된 것도 세종 때라고 하는데 세종 시절 백성들이 왕이 미워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 또한 처음 알아서 놀라웠다. 세종의 동전 정책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니. 심지어 그 당시 세종은 경복궁에 없었고 임신 8개월이었던 소헌왕후가 

화재를 다 진압했다고 한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사랑도 기억에 남는다. 세종대왕이 사랑꾼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유일하게 함께 묻혀있는 부부라고 하는데 소헌왕후가 동쪽, 세종대왕이 서쪽에 묻혀있다. 해가 동쪽에서 뜨니

소헌왕후가 더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하지만 태종이 자신의 아버지 심온을 역모죄로 몰아 사사하고 어머니와 자매들은 천인이 되는걸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세종을 보며 소헌왕후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소헌왕후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왕비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세종 역시 화재 사건 이후 그녀를 신임했고 많은 국정을 함께 논의했다고 하니 그녀의 삶이 더 궁금해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미처 다 담지 못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옷 하나, 건물 기둥 하나에도 의미를 담았던 조선의 사람들. 정도전의 철학. 그 안에서 자신만의 정치를 펴간

왕의 모습. 역사에 서로 다르게 기록된 신하의 모습까지. 학교 다닐 때 조선의 역사를 가장 싫어했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조선 사람의 발자국 하나하나 다시 따라가며

그 안에서 배워야 할 모습과 반면교사 해야 할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지금 내가 내 삶에 하나하나 담아야 할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의 이전글 펑펑 울고 싶은 어느 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